고가 차량의 높은 수리비가 사고 상대방과 자동차보험 시장의 비용 부담을 키우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외 보험 연구진은 차량 가치가 1달러 증가할 때 다른 보험사가 부담하는 수리비가 약 0.10달러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교정하기 위한 최적 과세 수준을 차량 가치의 약 10%로 제시했다. 국내 자동차보험에 이러한 과세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요율 산출 원칙과 현행 손해배상제도, 보험사 간 비용 분담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19일 서울에서 ‘고가 차량 운행의 외부효과와 최적과세(Externality of Driving Luxury Vehicles and Optimal Taxation)’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고가 차량 운행이 자동차보험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보험연구원에서 '고가 차량 운행의 외부효과와 최적과세(Externality of Driving Luxury Vehicles and Optimal Taxation)'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보험연구원]◆ "차량 가치 1달러 오르면 사회적 비용 0.10달러 증가"…최적 과세 10%
발표에서는 고가 차량 소유자가 직접 부담하지 않는 비용이 다른 운전자와 보험시장에 전가되는 구조가 핵심 문제로 제시됐다.
가령 같은 사고라도 피해 차량이 20만달러짜리 고급차일 경우 수리비가 10만달러, 2만달러짜리 일반 차량일 경우 1만달러라면 가해 운전자가 부담해야 하는 손해 규모는 피해 차량의 가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연구진은 이처럼 차량 선택이 제3자의 보험금 부담을 증가시키는 현상을 고가 차량 운행의 '부정적 외부효과'로 정의했다. 이번 연구는 이재원 이코닉 파트너스(Econic Partners) 파트너, 손석준 도쿄대 교수, 송진택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가 공동으로 수행했다.
국내에서도 이 문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수입차는 국내 보험 가입 차량의 약 15%를 차지하지만 보험사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달한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시장 규모도 연간 4조달러를 넘어 약 5600조원에 이르는 만큼 작은 비율의 외부효과도 전체 시장에서는 상당한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손석준 도쿄대 교수는 "모델별 수리비 자료를 이용해 차량 가치와 보험금 지급액의 관계를 분석"하며 "분석 결과 차량 가치가 1달러 증가할 때 자동차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수리비 외부효과는 약 0.10달러로 추정됐다"라고 밝혔다.
손석준 도쿄대 교수가 고가 차량의 외부효과를 설명하며 차량 가치의 약 10%를 최적 과세 수준으로 제시했다. [사진=더밸류뉴스]손 교수는 "차량 가치 1달러 증가에 따른 수리비 증가분 0.1354, 연간 사고 확률 6.09%, 평균 차량 수명 12.1년을 적용하면 외부효과는 차량 가치의 약 9.97%로 계산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약 10%의 선형 과세가 고가 차량이 발생시키는 외부비용을 상당 부분 내부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차량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해 고가 차량의 높은 수리비로 다른 운전자와 보험시장에 전가되는 비용을 차량 소유자의 부담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최적 과세를 적용할 경우 사회적 후생은 자동차 가치의 약 0.73% 개선되며, 미국 자동차시장에 환산하면 연간 약 73억달러, 한화 약 10조원 규모의 후생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 캐나다 세제 개편하자 고가차 수요↓…"소비자 실제로 더 싼 차 선택"
연구진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세제 개편을 일종의 자연실험으로 활용해 과세가 소비자의 차량 선택을 실제로 변화시키는지도 분석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는 2016년 15만캐나다달러를 초과하는 고가 차량에 보험료를 추가 부과한 데 이어 2018년 고급차 판매세를 개편했다.
2018년 이후 차량 가격이 12만5000캐나다달러를 넘으면 판매세율이 15%, 15만캐나다달러를 넘으면 20%로 높아졌다. 보험료까지 포함한 소비자의 실질적인 추가 부담은 구간별로 10%, 15%, 30% 수준으로 확대됐다.
연구진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브리티시컬럼비아와 퀘벡에서 거래된 8만캐나다달러 이상 고가 차량 2만6867건의 거래 데이터를 분석했다.
단순히 세제 개편 전후만 비교하면 소득이나 경기 등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퀘벡을 대조군으로 활용해 세제 개편의 효과를 분리했다.
분석 결과 세제가 개편된 이후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낮은 가격대의 차량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과세 부담이 크게 높아진 12만5000~15만캐나다달러 구간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량으로 수요가 이동했다. 고가 차량에 대한 과세가 단순한 세수 확보를 넘어 실제 소비자의 선택을 바꾸고 전체 수리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가격 변화에 대한 차량 가치의 탄력성을 약 1.3으로 추정했다. 세금이 높아지자 판매업체도 가격을 일부 조정하는 등 공급 측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수요·공급 반응을 함께 고려해 사회적으로 적절한 과세 수준을 산정한 결과 약 10%가 도출됐다.
◆ "10% 세금이 보험료 10% 의미하진 않아"…국내 적용에는 신중론
이어진 토론에서는 연구 결과를 국내 자동차보험 제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영훈 보험개발원 팀장은 고가 차량 증가로 일반 차량 운전자와 자동차보험 시장에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곧바로 고가 차량의 대물배상 보험료 할증으로 연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보험개발원 팀장이 고가 차량의 외부효과를 보험료 할증으로 직접 연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더밸류뉴스]김 팀장은 "보험은 조세와 달리 가입자의 위험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해야 하는 만큼 차량이 비싸다는 사실만으로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고가 차량 특별요율과 고가수리비 차량 특별요율, 대물배상 사고 별도 점수제 등을 통해 보험료 형평성을 개선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물배상은 사고를 낸 차량과 보험금을 지급받는 상대 차량이 달라 한 보험사가 고가 차량 계약자에게 보험료를 더 받아도 실제 높은 수리비를 부담하는 다른 보험사에 비용이 이전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수리비 지급 관행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잉수리와 허위견적, 부품가격 부풀리기 등 고액 수리비를 만드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 보험료만 높이는 방식으로는 형평성과 외부효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자료를 연구진의 산식에 대입해 추산한 외부효과가 약 0.1% 수준으로 연구진의 10% 추정치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며 "이에 따라 국내 사고·수리비 데이터를 활용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세금·보험료 효과 달라"…자기부담금·노폴트 등 대안도 제시
천지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금과 보험료가 소비자의 행동에 미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천지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세금과 보험료가 소비자의 차량 선택에 미치는 효과를 구분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더밸류뉴스]천 연구위원은 "차량 구입 단계에서 부과되는 세금은 소비자의 차종 선택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만 보험료는 차량 구입 이후 보유·유지비에 영향을 주는 만큼 동일한 외부효과 교정 수단으로 볼 수 있는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소정 서울대학교 교수는 "고가 차량의 외부효과가 국내에서 이미 일반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박소정 서울대학교 교수는 고가 차량의 수리비 증가가 일반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지는 외부효과를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더밸류뉴스]박 교수는 "과거 지역별 수입차 증가와 대물사고 손해액을 분석한 연구에서 수입차 증가로 일반 운전자의 대물보험료 부담이 약 5%, 1인당 약 7000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며 "고가 차량 소비에 따른 편익은 소유자가 누리는 반면 사고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은 다른 운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부정적 외부효과를 정책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브리티시컬럼비아가 2021년 자동차보험을 '노폴트(No-fault)' 방식으로 전환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고 과실과 관계없이 자신의 차량 수리비를 자신의 보험에서 부담하는 구조라면 고가 차량의 높은 수리비를 해당 차량의 보험료에 반영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는 설명이다.
이항석 성균관대 교수는 "연구의 초점을 보험료 차등보다 '최적 과세'에 두는 것이 연구 결과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항석 성균관대 교수가 고가 차량의 외부효과에 대한 논의를 보험료 차등보다 최적 과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더밸류뉴스]이 교수는 "브리티시컬럼비아와 퀘벡은 판매세와 자동차보험 구조가 서로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만큼 각 지역의 세제와 공적·민간 보험체계를 정밀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번 세미나는 고가 차량의 높은 수리비가 단순히 차량 소유자의 비용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운전자와 보험시장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수치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 산출된 외부효과와 최적 과세율을 국내 보험료 체계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국내 사고·수리비 데이터를 토대로 외부효과의 크기를 다시 측정하고, 조세와 보험료, 자기부담금 등 정책수단별 효과와 형평성을 함께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