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호 경동나비엔 대표이사 회장이 26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키며 창사 최대 실적을 다시 썼다. 그가 경영 전면에 나선 2000년만 해도 경동보일러는 내수와 겨울 성수기에 기대는 난방기기 회사였다. 2025년에는 매출 1조5000억원과 해외 매출 1조원을 동시에 넘어섰고, 2026년 1분기 영업이익률은 15.0%까지 높아졌다. 보일러를 북미에 수출하는 데서 나아가 냉난방공조(HVAC)·주방가전·스마트홈을 묶는 생활환경 기업으로 바꾸려는 승부도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성공의 기준은 외형이 아니다. 장남 손흥락 부회장과의 각자대표 체제가 독립된 경영 성과와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고, 새로 사들인 사업이 현금을 벌어야 2세의 성공이 3세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우리집 공기는 나비엔이니까 [이미지=경동나비엔]
◇ 손연호 회장은…
△1951년 부산 출생(75) △중동고 졸업 △동아대 공업경영학 학사 △경동기계 입사(1979) △삼손 대표이사 사장(1982) △경동보일러 비상근이사(1998) △경동보일러 대표이사 부회장(1999) △경동나비엔 대표이사 회장(2000~현재)
◆ 매출 1.5조·상반기 영업익 1481억…외형 성장에 자금 소요도 확대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1조5022억원으로 전년보다 11% 늘었다. 영업이익은 1434억원으로 8.1% 증가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다만 영업이익률은 2024년 9.8%에서 9.5%로 0.3%p 낮아졌다. 매출원가가 16.2% 늘어 매출 증가율을 웃돈 결과다. 당기순이익은 1243억원에서 897억원으로 27.9% 감소했다. 법인세 비용이 284억원에서 609억원으로 두 배 넘게 늘고 금융비용도 312억원에서 402억원으로 증가한 영향이다.
경동나비엔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액 8135억원, 영업이익 1481억원을 기록하며 실적 호조를 이어갔다. 앞서 2분기 매출액은 3882억원, 영업이익은 84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지난해 2분기 관세 본격화 이전의 판매 증가로 인한 기저 효과로 소폭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북미 등 해외 시장의 성과와 관세 환급 영향으로 전년동기대비 64.6% 늘었다.
현금흐름에는 투자기의 부담이 드러난다. 지난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712억원으로 전년보다 186억원 늘었지만 투자활동 현금유출은 1417억원이었다. 총차입금은 2039억원에서 3424억원으로 1385억원 증가했고 순차입금비율은 11.5%에서 24.9%로 높아졌다. 손 회장이 추진한 평택 에코허브 증설과 사업 다각화가 매출을 키우는 동안 자금 소요도 함께 커진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손흥락·장희철 대표가 합류했으므로 최근 실적을 손 회장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의 성과는 장기 전략, 새 대표들의 평가는 투자 회수와 실행력으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
◆ 해외 매출 첫 1조…북미 HVAC·히트펌프 공략 속도
경동나비엔의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은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다. 지난해 해외 매출액은 1조438억원으로 전체의 69.5%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준 북미 시장 매출은 505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62%를 차지하며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2006년 사명을 경동나비엔으로 바꾸고 2008년 북미법인을 설립해 콘덴싱 온수기와 보일러를 주력 제품으로 육성한 글로벌 체질 개선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미국 판매법인(Navien Inc.)의 지난해 매출액은 7932억원으로 13.6% 늘었고 순손익은 흑자 전환(176억원)했다. 반면 중국, 영국, 멕시코 법인은 적자를 기록해 북미 시장 편중 완화 및 글로벌 포트폴리오 다변화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재 경동나비엔은 북미 시장에서 콘덴싱 온수기와 보일러 경쟁력을 바탕으로 HVAC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인버터 압축기를 적용한 고효율 히트펌프를 출시했고 이를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와 연계해 최적화된 통합 냉난방 솔루션을 제공 중이다. 히트펌프와 연계되는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의 올해 월평균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2.5배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아울러 히트펌프 온수기(HPWH)를 선보이는 등 전기화 기반 제품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 나비엔매직·코맥스 인수로 ‘생활환경 파트너’ 체질 전환
경동나비엔은 주방가전과 스마트홈, 생활공기솔루션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쾌적한 생활환경 파트너’라는 기업 비전을 실현시키고 있다.
실내 공기질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환기와 공기청정, 제습 기능을 결합한 제습환기청정기와 욕실 전용 솔루션인 ‘나비엔 바스케어’를 선보였다. 특히 SK매직의 가스·전기레인지, 오븐 사업을 인수해 출범한 ‘나비엔 매직’을 통해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나비엔 매직의 ‘3D 에어후드’와 제습환기청정기를 연동한 통합 솔루션은 요리매연 배출과 실내 공기질 관리를 동시에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으며, 환기청정기 제품군의 2025년 B2C 판매량은 전년 대비 38.2% 증가했다. 다만 나비엔매직의 첫해 매출(609억원)이 초기 인수 당시 외부평가기관의 전망치(971억원)에는 미치지 못해 시너지 극대화를 통한 수익성 검증이 요구된다.
스마트홈 부문에서는 코맥스 지분 80.77%(약 320억원)를 인수하며 플랫폼 역량을 강화했다. 코맥스가 보유한 월패드, 도어락, 홈 네트워크 기술을 난방, 온수, 환기청정, 주방기기와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통합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인수 직후 코맥스가 1분기 영업이익 32억원으로 흑자 전환한 점은 긍정적이나, 주식 거래 재개와 지속적인 영업현금흐름 창출을 통한 완전한 정상화가 과제로 남아있다.
경동나비엔 설치기사가 공기열 보일러 외장 케이스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경동나비엔]
국내 시장에서는 최근 공기열 보일러를 출시하며 히트펌프 시장 확대에 본격 나섰다. 제주에 ‘나비엔 난방 전기화 센터’를 개소하고 실증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평택공장에서 공기열 보일러 양산을 시작하며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보일러·온수기 생산 능력을 연간 200만대에서 439만대로 확대하는 평택 에코허브 증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마트공장 전환을 통한 원가 및 물류비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 26년 '기술 장인'과 아들의 동거…승계보다 먼저 필요한 견제
나비엔 환기청정기 핵심기술 [이미지=경동나비엔]
손 회장은 1951년 7월 부산에서 경동그룹 창업주 고 손도익 회장의 세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동고와 동아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경동기계에 입사했다. 1982년 삼손을 설립해 대표를 맡았고, 1998년 경동보일러 비상근이사와 1999년 부회장을 거쳐 2000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언론 노출은 많지 않지만 기술과 품질에는 오래 투자하는 '은둔의 장인'형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시장이 외면하던 콘덴싱 기술을 북미의 에너지효율 수요와 연결한 선택은 그의 긴 호흡을 보여준다.
2025년 3월부터는 장남 손흥락 부회장, 전문경영인 장희철 부사장과 3인 각자대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손 회장은 경영 전반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손 부회장은 영업·마케팅과 생산·품질, 나비엔매직·생활환경사업을 총괄한다. 소유구조는 손 회장→경동원→경동나비엔으로 이어진다. 손 회장은 경동나비엔 지분 0.89%와 경동원 지분 27.45%를 보유하고, 경동원은 경동나비엔 지분 56.72%를 쥐고 있다. 아들이 대표가 됐어도 최종 인사·투자·이사회 권한의 중심에는 여전히 손 회장이 있는 구조다.
손연호號의 다음 성적표는 '누가 후계자인가'보다 '후계자가 무엇을 책임지는가'에 달려 있다. 나비엔매직·코맥스·HVAC의 사업별 매출과 이익, 인수 후 투자수익률, 계열사 거래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사회가 오너 일가의 결정을 실질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26년간 만든 글로벌 제조 경쟁력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 경쟁력이 창업가문 밖의 주주와 다음 세대에도 지속되는 시스템으로 바뀔 때 손 회장의 승계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