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장기 운용 기능을 축소하고 국내 투자에 특화한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하면서 국내 자산운용사가 상장한 미국주식형 ETF(상장지수펀드)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 ISA에서는 국내 상장 미국지수 ETF에 계속 투자할 수 있지만, 더 큰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생산적금융 ISA에서는 해당 상품이 제외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안철수 “무지성 국장 강요”…일반 ISA의 장기투자 기능 축소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ISA에 너프 먹인 이재명 정부, 무지성 국장만 하라는 것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정부의 2026년 세제개편안을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사진=안철수 인스타그램]
안 의원은 “2천만원 한도 이월을 폐지하고 계약 기간 또한 최대 5년으로 줄였다”며 “생산적금융 ISA는 국내 투자로만 한정해 해외지수 ETF는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KODEX 나스닥100, TIGER S&P500 등은 새 ISA에 담지 못한다”며 “전 국민을 ‘무지성 국장’으로 떠미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일반 ISA의 최초 의무계약기간은 3년으로 유지되지만, 이후 연장할 수 있는 총계약기간은 최대 5년으로 제한된다. 현재는 가입하거나 계약을 연장할 때 최대 계약기간에 별도 제한이 없어 사실상 장기 운용이 가능하다.
납입한도 계산 방식도 바뀐다. 현행 제도에서는 연간 2000만원 가운데 사용하지 않은 금액을 다음 연도로 이월할 수 있다. 가입 경과연수에 따라 누적 납입 가능액이 늘어나는 구조다. 개정안은 이를 매년 2000만원으로 고정해 미사용 한도를 다음 해로 넘길 수 없도록 했다. 총납입한도는 1억원으로 유지된다.
계약기간 개편은 2027년 1월1일 이후 일반 ISA에 새로 가입하거나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납입한도 개편은 같은 날 이후 납입분부터 적용된다. 기존 계좌의 계약기간을 즉시 5년으로 단축하거나 보유 자산을 강제로 매각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기존 가입자도 2027년 이후 계약 연장과 추가 납입 과정에서 개정된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 전액 비과세 '생산적금융 ISA'…혜택만큼 좁아진 투자 대상
정부는 일반 ISA 정비와 함께 국내 자본시장 투자에 혜택을 집중한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한다.
생산적금융 ISA에서는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배당소득을 전액 비과세한다. 연간 납입한도는 2000만원, 총납입한도는 2억원이다. 최초 계약기간은 3년이며 총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34세 이하 청년 가운데 총급여가 7500만원 이하인 가입자는 납입금의 10%를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일반 ISA가 일반형 200만원, 서민·농어민형 400만원까지만 이자·배당소득을 비과세하고 초과분에 9% 세율을 적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세제 혜택이 크게 강화된 셈이다.
대신 투자 대상은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으로 제한된다. 정부는 개정 이유로 ‘국민 자산 형성 및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 지원’을 들었다. 생산적금융 ISA는 2027년 1월1일 이후 신규 가입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산운용사가 한국거래소에 상장한 미국주식형 ETF는 생산적금융 ISA 투자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돼 원화로 거래되더라도 실제 운용 자산이 미국 주식인 만큼 ‘국내 주식형 펀드’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500’과 미국나스닥100 계열 상품,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S&P500’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기존 자금 강제 이탈'보다 '신규 자금 유입 둔화' 우려
정부안이 시행되더라도 일반 ISA에서 국내 상장 미국주식형 ETF를 거래하는 것은 계속 가능하다. 세제개편안도 일반 ISA의 투자 대상을 예·적금과 국내주식, 펀드 등으로 유지했다.
문제는 일반 ISA와 생산적금융 ISA 사이에 세제 혜택과 운용기간 격차가 커졌다는 점이다. 미국지수 ETF에 투자하려는 가입자는 비과세 한도가 제한되고 최대 계약기간도 5년에 그치는 일반 ISA를 이용해야 한다. 반대로 이자·배당소득 전액 비과세와 최대 10년 운용 혜택을 받으려면 국내 투자 상품 중심의 생산적금융 ISA를 선택해야 한다.
정부가 미국주식형 ETF를 직접 규제하거나 기존 투자자의 매도를 강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제 혜택의 무게중심을 국내 투자 전용 계좌로 옮기면서 국내 운용사의 해외주식형 ETF가 ISA 신규 납입금과 만기 자금의 재투자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S&P500과 나스닥100 등 해외지수 ETF를 장기 적립식 상품으로 활용해 온 가입자에게 계약기간 제한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기간 유지할수록 복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수 투자 상품의 특성과 일반 ISA의 최대 5년 운용 제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이미지=안철수 국회의원 페이스북]
안 의원은 일본의 신(新)NISA와 비교하며 국내 개편안의 방향성도 비판했다. 그는 “일본은 수혜 기한을 평생으로 늘리고 비과세 및 투자 한도를 대폭 강화했다”며 “별도 트랙을 허용해 미국 ETF와 해외 종목 직접 투자까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생산적금융 ISA를 통해 국내 증시로 장기 투자자금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는 분명하다. 다만 일반 ISA의 장기 운용 기능을 줄이는 동시에 더 강한 세제 혜택을 국내 투자에만 집중하면서 투자자의 선택권과 국내 운용사의 해외투자 상품 경쟁력을 함께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현재 세제개편안은 정부안 단계로 향후 국회 논의와 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생산적금융 ISA의 구체적인 편입 상품과 국내 주식형 펀드의 범위도 후속 법령과 금융당국의 세부 기준을 통해 확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