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업계가 저출산 심화와 우유 소비 감소라는 위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매일유업도 우유 회사라는 틀을 깨고 성인과 고령층까지 아우르는 ‘종합 식품 회사’로 탈바꿈했다. 김선희 부회장의 주도 아래 식물성 음료, 성인 영양식, 케어푸드 등 신사업을 육성하며 실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 아이들이 건강을 책임지는 우유 회사로 출발한 매일유업은 이제 전 연령을 아우르는 영양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났다.
◆ 김선희 부회장 ‘우유 회사’에서 ‘종합 식품 기업’으로 전환
매일유업 김선희 부회장. [사진=매일유업]
매일유업의 체질 개선은 2014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선희 부회장의 주도 하에 이뤄지고 있다. 경영이 어려웠던 시절에 대표로 취임했기에 회사를 다시 정상궤도로 돌려 놓는 것이 그녀의 과제였다. 이를 위해 영유아 중심이었던 우유 사업에서 성인과 고령층까지 아우르는 멀티 브랜드를 구축했다.
김 부회장의 대표적인 성과는 식물성 음료와 단백질 음료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식물성 음료로는 2015년 출시한 아몬드브리즈, 2021년 출시한 어메이징 오트가 있다. 아몬드브리즈는 글로벌 아몬드 전문기업 블루다이아몬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원재료를 받아 매일유업이 생산하는 방식으로 유통하고 있다. 어메이징 오트는 100% 핀란드산 귀리를 사용한 자체 브랜로 지금까지도 귀리음료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2024년 시장 점유율 73.2%). 두 브랜드 모두 건강식을 찾는 젊은 층의 수요에 힘입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단백질 음료로는 2018년 내놓은 ‘셀렉스’가 있다. 초기에 시니어 근육량 감소 방지를 위해 출시했으나 2030세대와 직장인들도 찾기 시작하며 그동안 헬스 보충제로 여겨지던 단백질 음료를 일상적인 건강식품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누적 매출액 5000억원을 돌파했다.
두 제품을 통해 성공을 거둔 매일유업은 이제 케어푸드 사업에도 도전했다. 국내 고령 인구가 증가하며 환자식·고령친화식품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메디웰은 현재 1000개 이상의 병원과 전문기관에 공급되고 있다. 추후 B2B(기업간 거래) 시장을 넘어 일반 소비자 대상 제품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 숫자로 증명된 ‘비우유’ 전략…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김 부회장의 다각화 전략은 실제 경영 성과로도 이어지며 매일유업의 중장기적 도약을 이끌 성장엔진이 됐다.
매일유업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올해 1분기 연결 매출액 4688억원, 영업이익 18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2.4%, 44.6% 증가했다. 저출산과 흰 우유 소비 정체가 심해지고 있음에도 거둔 성적표라는 점이 놀랍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2.9㎏으로 전년대비 9.5% 감소했다.
이 같은 위기에도 깜짝 실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백질 및 식물성 음료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 덕이다. 흰 우유는 일상적으로 많이 구입하는 물품이다 보니 소비자들이 가격 변동에 예민한 편인데 최근 국내 원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며 유업계는 마진을 확보하기 위해 우유 가격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낙농가로부터 사전에 협의한 원유 할당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구조여서 수요가 줄어도 공급을 축소하기 어렵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여러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국산 우유는 전 세계에서 비싼 편에 속한다"고 밝혔다.
반면 단백질 및 식물성 음료는 건강을 위한 '기능성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가격이 높아도 구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저출산에 따른 저연령 인구 감소로 발생한 흰 우유 매출액의 공백을 성인 타깃의 고수익 제품군이 메우며 매일유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 환아 살리던 ‘특수분유’ 초고령사회 ‘건강식 기술’로 진화
사실 매일유업에게 비우유 분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 아니다. 이미 1999년부터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를 생산하며 건강식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를 위한 특수 유아식 8종 12개 제품. [사진=매일유업]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은 단백질, 지방, 아미노산 등 필수 영양소를 분해하는 능력이 없어 모유, 고기, 쌀밥, 빵 등 일반적인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병이다. 이로 인해 반드시 전용 분유를 먹어야 하지만 신생아 5만 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보니 수요와 생산량이 매우 적다. 수익성이 별로 없는 사업임에도 매일유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특수분유 생산을 지속하고 있다.
매일유업이 이런 비효율을 감수하면서도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야 한다”는 고(故) 김복용 선대 회장의 기업 철학 때문이다. 이 뜻을 지키기 위해 매일유업은 매년 두 번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설비 구석구석을 세척한 뒤 특수분유 생산에 돌입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기술력은 현재 고령층과 성인을 위한 영양식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소화 능력이 떨어지거나 특정 영양소를 흡수할 수 없는 고령자들을 위한 '케어푸드'나 '환자식', 흡수율을 높인 식물성·단백질 음료는 특수분유와 원리가 비슷하다. 환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술이 이제는 성인과 노년층의 건강을 지키는 무기로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