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복제약(제네릭)의 건강보험 약가를 기존보다 최대 16% 인하하는 전면 개편안을 최종 의결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끝나면 누구나 똑같이 만들 수 있는 복제약을 오리지널 가격의 53.55%를 받고 팔 수 있었으나, 정부는 이를 45%로 낮춘다고 결정했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이 고령화로 인해 빠르게 고갈되는 것을 막고, 아낀 돈을 혁신 신약에 투자하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실손의약품비 등을 보장하는 민간 보험사들에게 지급 보험금을 줄여주는 수익 개선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고가의 신약 청구가 빨라지는 새로운 리스크 관리 과제를 함께 던져주고 있다.
정부의 복제약가 인하 정책으로 민간 보험사의 지급 보험금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생성]
◆ 복제약값 하락이 부른 '지출 다이어트'...보험사 이익 증가로 이어져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민간 보험사들은 매년 지출하던 보험금을 아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실손보험과 같은 보장성 보험은 환자가 실제로 지불한 약값을 보험사가 대신 내주는 구조인데, 지난 2024년 기준 외래 진료비 내 약제비 비중은 25.2%로 높은 수치다.
'16% 인하'라는 수치는 기존 복제약 가격 대비 변동된 실질적인 하락 폭을 의미한다. 가장 많이 처방되는 복제약값이 종전보다 저렴해지면 보험사의 현금 흐름에는 즉각적인 보탬이 된다. 특히 지난해 공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형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82.6%), 한화생명(85.7%), 교보생명(76.5%)은 전체 보험 중 질병과 사고를 보장하는 '보장성 보험' 비중이 압도적이다.
보장성 보험 비중이 높을수록 약값 하락에 따른 보험금 지급 감소 효과가 크게 나타나므로, 이번 정책은 보험사들의 수익성을 개선하는 호재가 된다. 또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지난 2012년 이전에 등록된 오래된 약들부터 순차적으로 가격을 인하해, 2036년까지 모든 약값을 45% 수준으로 맞출 계획이다.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가 전체 평균의 2.5배인 576만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만성질환에 많이 쓰이는 복제약값의 단계적 인하는 보험사 입장에서 향후 10년 이상 안정적인 지출 구조를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다.
제약사들이 5%대 낮은 영업이익률을 견디지 못하고 비상경영에 돌입하는 고통을 겪는 사이, 민간 보험사들은 연간 25조원 규모의 약제비 시장에서 강력한 '지출 다이어트' 효과를 누리게 된 셈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 2일 긴급 이사장단회의를 열어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한 향후 대응 계획을 논의했다. [사진=한국제약바이오협회]
◆ 신약 등재 속도전과 제약사 연구개발 위축...고액 청구 리스크는 숙제
그러나 보험사 입장에서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복제약값을 깎아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고가의 혁신 신약들이 더 빨리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깔아주기로 했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심사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 경제성 평가 기준(ICER)을 완화해 비싼 약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쉽게 만들 예정이다. 예전에는 너무 비싸서 처방되지 않던 수억원대 약들이 급여권으로 빠르게 진입하게 되면, 보험사가 한 번에 지급해야 할 보험금 액수는 급격하게 커질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국내 제약사들이 이번 약가 인하로 인해 신약 개발(R&D)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저렴하면서 질 좋은 신약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가격 결정권이 없는 비싼 외국산 신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고액 청구' 건수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보험사는 복제약값에서 아낀 잔돈을 소수의 고가 신약 보험금으로 한꺼번에 쏟아부어야 할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보험사들에게는 낮아진 약값에 안주하기보다, 신속하게 등재될 고가 신약의 청구 리스크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능력이 생존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