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에 극적인 전쟁 완화의 기류가 감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이란의 해협 개방 동의를 조건으로 2주간의 공격 중단을 발표하며, 폐쇄 위기에 몰렸던 글로벌 물류망은 일단 파국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이 짧은 휴전이 가져온 안도감은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재보험 시장의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이 해결되지 않는 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언제든 한국 경제의 안전망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가 국내 경제에 남긴 상처는 깊다. 보험연구원(KIRI)에 따르면 전쟁 직전 선박 가액의 0.125%였던 전쟁위험보험료는 한때 5% 이상으로 40배 폭등했으며, 탱커선 한 척의 편도 항해료만 약 70억원에 달하는 등 한국 기업들은 고사 위기에 몰렸다.
이에 정부가 26조2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며 민생 구제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국란(國亂)의 일각에서, 국내 유일의 전업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 원종규)이 독점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어 ‘나 홀로 잔치’라는 눈총을 맞고 있다.
이란전쟁으로 인한 중동 지역별 해상 전쟁위험보험료 변동 현황. [이미지=더밸류뉴스]
◆ 경쟁자는 막고, 위기엔 문 닫는 ‘철옹성 독점’
국내 보험사가 수출 기업의 위험을 인수하면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은 재보험사로 분산돼야 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 74.5%를 장악한 코리안리는 이 위험을 나누는 대신 철저한 선별로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이미 지난 2011년 의결서에서 "코리안리가 국내 재보험 시장의 수요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담보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명시했다. 이처럼 담보력이 부족함에도, 코리안리는 해외 재보험사로 위험을 다시 넘기는 '재출재' 구조를 유지하며 국내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금융당국은 신규 진입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2020년 재보험 허가 최저자본금 요건을 3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낮췄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후발주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코리안리가 직접 개입했다는 법적 판단도 내려진 바 있다. 지난 2018년 12월 공정위는 코리안리가 타 재보험사와의 항공보험 거래를 중단하도록 손해보험사에 압력을 가한 행위를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규정했다. 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78억6500만원을 부과했다.
코리안리는 해당 과징금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8년째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진행된 변론기일에서 코리안리 측 변호인은“공정위 측이 잘못 산정된 관련 매출액을 분모로 활용해 과징금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며 매출액 추정 공식의 합리성을 지적했다.
공정위 측 변호인은 “관련 매출액 산정 과정에서 어떤 부분의 합리성이 떨어지는지 원고 측 자료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며 “공정위는 법령과 금융감독원 통계 방식에 따라 관련 매출액을 산정했다”고 반박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신축 중인 코리안리의 신사옥 투시도. [사진=코리안리]
◆ 위기엔 ‘선별 인수’, 장부엔 ‘최대 실적’… 상생금융 외면한 '마이웨이'
코리안리의 경영 전략은 지난해 공개된 IR 자료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수익 계약 축소 △실적 불량 계약 인수 중단 △우량물건 수재 증대로 수익 극대화 추진 등이 핵심이다. 위험한 것은 거르고 수익이 되는 것만 골라 받는 ‘선별 인수’ 전략이다. 그 결과 관세파동과 각종 대형 재난이 겹친 2025년에도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10.4% 성장한 3155억원을 기록했다.
확보된 수익의 행선지는 뚜렷하다. 총공사비 약 3989억원 규모의 신사옥 신축이 본격화됐고, 경영진은 업계 최고 수준의 보수를 챙기고 있다. 원종규 사장은 지난해 급여 11억8108만원과 상여 11억4106만원을 더해 총 23억2215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원종익 회장 역시 9억4229만원을 받았다.
특히 이들은 명절과 창립기념일 명목으로 기본급의 450%에 달하는 상여금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코리안리의 사훈인 ‘사회적 가치 실현’과 ESG 보고서를 발간하며 외치던 '상생 협력'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행보다.
원종규(왼쪽) 코리안리 사장, 원종익 코리안리 회장. [사진=코리안리]반면 영국의 글로벌 보험·재보험 시장인 '로이즈(Lloyd’s)'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재보험사인 아스코트(Ascot) 및 마쉬(Marsh)와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을 돕기 위해 최대 5000만 달러 규모의 전용 재보험 시설을 구축했다. 이를 로이즈의 모든 브로커에게 개방하며 위기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과 '공급망 안정'을 위한 재보험사 본연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바 있다.
한국은 딴판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생금융’ 기조가 독점적 성벽을 구축한 재보험 기업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재보험 시장의 독점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 ‘위험의 병목현상’을 야기한다. 재보험 시장이 좁으면 원수 보험사도 위험을 소화할 수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수출 기업들에게 전가된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코리안리 관계자는 “재보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제도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주지만 그 외 별다른 압박은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법규 준수만 하면 되지 이윤 추구 행위가 무슨 문제인가라는 입장이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도 “특정 기업의 행보에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란전쟁으로 한국 기업들의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공격 유예로 잠시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나, 수출 안전망에 대한 근본적 구조 개선 없이는 언제 다시 경제가 휘청거릴지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진억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란 전쟁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보험산업의 일상적 위험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국내 보험회사들은 재보험회사 다변화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란전쟁 발 글로벌 리스크가 한국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요즘, 코리안리가 공적 책임에 부응하는 변화를 보여줄지 아니면 여전히 독점적 지위에 안주하며 사익만을 추구할지, 정부 당국의 엄중한 감시와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