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이 36년간 유지해 온 패키지형 소프트웨어 판매 구조에서 벗어나 '구독형 에이전틱 운영체제(OS)' 기업으로 사업 모델을 전면 개편한다. 막대한 자본 지출(CAPEX)이 요구되는 거대언어모델(LLM) 자체 개발 대신, 타사 모델을 얹어 쓰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오픈 코어' 전략을 통해 투자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30% 안팎의 고수익 구조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 1분기 AI 매출 비중 11% 돌파…업셀링 기반 '반복 매출(ARR)' 구조 확립
한컴은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 1753억원, 영업이익 509억원을 기록하며 약 29%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특히 지난해 전체 매출 증가분 162억원의 과반인 54.6%을 AI 부문에서 발생시키며 글로벌 에이전틱 OS 기업 전환의 재무적 기반을 입증했다.
한글과컴퓨터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이러한 성장세는 올해 들어 더욱 가속화되는 추세다. 올해 1분기 별도 매출 465억원 중 AI 관련 매출이 52억원으로 전체의 11.21%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당시 AI 매출 비중이 0.04%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구조적인 턴어라운드를 이뤄낸 셈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AI 매출은 89억1300만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 실적이 당초 계획 대비 월평균 200% 이상을 상회함에 따라 지난해 연간 AI 매출 총액은 올해 상반기 중 조기 초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연수 한컴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한컴의 미래 성장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김연수 한컴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한컴은 준비 중인 AI 회사가 아니라 이미 AI로 돈을 버는 회사"라며 "2022~2023년 기술 내재화(1단계), 2024년 AI 솔루션 상용화(2단계), 2025년 매출 본격 가시화(3단계)를 거쳐 현재 2026년은 'AI 드리븐 성장 단계(4단계)'에 완전히 진입했다"고 발언했다.
이처럼 AI 매출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굳건하게 구축된 20만 B2B·B2G 충성 고객층이 자리하고 있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 신규 고객(CAC)을 유치하는 대신, 중앙부처(1만4000개사), 시도 교육청(약 4만개사), 금융·보안 기업(약 1500개사) 등 기존에 락인(Lock-in)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업셀링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현재 기존 오피스 라이선스 계약의 70~80%가 매년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연간 구독 모델로 전환을 마쳤으며, 지난해 기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이용 기업의 54%가 계약 갱신 시 AI 패키지를 함께 선택하며 단위 고객당 매출(ARPU)이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 '데이터 주권' 요구하는 14조 시장…'오픈 코어'로 1.1조 글로벌 규제 틈새 공략
국내에서 증명한 '저비용·고효율' 수익화 로직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한컴의 최종 타깃은 빅테크의 클라우드를 직접 도입하기 어려운 공공, 국방, 금융 등 고도의 데이터 주권이 요구되는 '소버린 에이전틱 OS' 영역이다. 한컴은 2030년 해당 글로벌 유효시장(SAM) 규모가 약 70억~100억달러(약10조~1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거대한 틈새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꺼내든 무기가 바로 기술을 무료와 유료로 나누는 '오픈 코어(Open Core)' 전략이다. 우선, 비정형 문서를 AI가 읽을 수 있도록 변환하는 핵심 기술 '오픈 데이터 로더(ODL)'를 무상으로 개방해 초기 마케팅 비용 없이 글로벌 생태계 표준을 장악한다. 대신 핵심 노하우가 집약된 기술은 유료 부가 기능(Add-on)으로 분리해 판매한다. 무료 엔진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유료 솔루션으로 수익을 거두는 레드햇(Red Hat)이나 엘라스틱(Elastic)의 성공 공식을 따르는 것이다.
한컴이 ODL(오픈 데이터 로더) 핵심 엔진 무료 개방을 통한 생태계 선점 및 특화 기능(PDF 애드온) 유료 구독 중심의 수익화 비즈니스 모델 구조를 선보인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이러한 '유료 애드온' 전략이 정조준한 첫 번째 타깃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법적 의무화가 시행 중인 'PDF 접근성(장애인 문서 이용 권리 보장)' 시장이다. 현재 연평균 13.2% 성장해 약 8억2600만달러(한화 약 1조1600억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들이 무료 ODL 엔진을 도입하게 만든 뒤, 까다로운 접근성 규제 준수에 필수적인 문서 변환 및 검증 기능은 한컴의 유료 솔루션으로 결제하게 만드는 시나리오다. 한컴은 이 접근성 기능 단일 항목만으로도 최소 175억원에서 최대 600억원의 신규 유효 시장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데이터 주권 인프라 수요의 34.2%를 차지하는 유럽 지역에서의 상용화도 속도를 낸다. 한컴은 현재 유럽 현지 IT 컨설팅 파트너 및 시스템 통합(SI) 기업 3곳과 업무협약(MOU) 및 세부 계약을 추진하며 해외 매출 가시화를 앞두고 있다.
한컴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기존 2~3년 주기의 패키지형 한컴오피스 신버전 출시 정책을 중단하고, 실시간 AI 기술 업데이트 체제로 서비스를 전면 전환한다. 전사 개발 인력의 30%가 직속 투입된 신규 '에이전틱 OS'는 오는 6월 베타 버전을 공개하고 하반기 고객 환경 검증(PoC)을 거쳐 내년 상반기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