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고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거센 비판을 받았던 쿠팡이 해롤드 로저스 임시대표의 행보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사태 직후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으며 위기론이 대두됐으나 로저스 대표가 직접 팔 걷고 나서며 여론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무너진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술 투자를 통해 글로벌 테크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위기를 양분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려는 쿠팡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러스트=홍순화 기자]
◇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1977년 미국 출생(48) △미국 브리검영대 영문학(학사)∙하버드 로스쿨 법학(박사)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항소법원 판사 재판연구원(2005~2006) △Sidley Austin LLP 변호사(2006~2016) △밀리콤 부사장 겸 최고 윤리·컴플라이언스 책임자(2016~2020) △쿠팡 경영관리 및 법무 총괄 부사장(2020~2021) △쿠팡 법무총괄 및 최고행정책임자(2021~현재) △쿠팡 한국법인 대표이사(2025~현재)
◆ ‘개인정보 유출’ 홍역 치른 쿠팡... 로저스 대표 ‘현장 경영’으로 정면 승부
지난해 11월 29일 대규모 쿠팡 이용자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고객 계정 약 3370만개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불매 운동의 조짐까지 보이며 쿠팡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쿠팡 매출액, 영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다행히 실적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유출 사태 이전에 1700만명이던 일간 활성 이용자(DAU)가 사태 직후인 지난해 11월 1400만명대까지 감소했으나 다음달인 12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하며 올해 1월 논란 이전 수치인 1529만명대를 회복했다. 지난달 기준 DAU는 1600만명대로 올랐다. 지난해 실적도 매출액 45조4555억원, 영업이익 2조2883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18.7%, 40.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유통업계 최초로 2조원을 돌파했다.
다만 쿠팡의 이미지에는 큰 오점을 남겼다. 쿠팡은 이전에도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반발은 가장 규모가 컸고 로저스 대표에게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재건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로저스 대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면 승부’에 나섰다. 본인이 직접 현장에 방문해 직원들의 고충을 경험함으로써 상생경영을 이어가는 것이다.
◆ 새벽배송 직접 뛰어 이미지 쇄신... 지방 공장 및 농가 상생도 돕는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가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새벽배송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쿠팡]
로저스 대표는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새벽배송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지난달 19일 오후 8시 30분부터 20일 오전 6시 30분까지 경기 성남 일대에서 새벽배송 업무를 수행했다.
새벽배송 후에는 인근 24시간 콩나물국밥집에서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송을 함께한 쿠팡친구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6500원짜리 국밥을 먹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이 공개되며 과거 청문회 당시 경직된 이미지에서 탈피해 '친근하고 소통하는 경영자'라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 쇼맨십을 넘어 '쿠팡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얼룩진 쿠팡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여론을 환기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로저스 대표는 새벽배송 이후에도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지난 8일 쿠팡 협력사인 충북 청주의 한 곡류 가공업체를 방문해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충청권 중소 협력업체 5개사 대표와 공급 안정, 원가 부담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외에도 쿠팡은 제주산 한라봉 등 국산 만감류 20톤을 매입하고 인구감소지역을 중심으로 딸기 3000톤을 사들이며 판로 확보가 어려운 지방 농가를 돕고 있다.
◆ '기술 투자'로 장기 성장 동력 마련... 로저스 대표가 그리는 '뉴 쿠팡'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이사. [사진=쿠팡]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 로저스 대표의 시선은 이제 쿠팡의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마포 글로벌 이코노미 행사에 참석해 콘토로로보틱스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는 행사에서 "2023년 이후 AI 기술 스타트업에 총 8400만달러를 투자했고 이 중 가장 흥미로운 투자처는 콘토로"라고 전했다.
콘토로는 창고에서 물품을 포장하고 운반하는 작업을 돕는다. 이들이 사용하는 로봇은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상자를 처리할 수 있는 그립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 하역 작업 성공률이 99%에 달한다. 윤영목 대표가 창업하고 현재 35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계속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다.
쿠팡이 AI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독자적인 유통체인을 구축한 이커머스 기업이기 때문이다. 로저스 대표는 처음 한국에 진출했을 때 시장 환경 때문에 라스트마일 물류 시스템을 직접 구축해야 했지만 그 덕분에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쿠팡은 유통기업인 동시에 동영상 스트리밍, 핀테크,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방대한 유통망과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쿠팡에겐 AI 기반 물류 혁신이 곧 경쟁력이라고 볼 수 있다.
로저스 대표는 정보 유출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현장 경영’으로 신뢰의 씨앗을 뿌리고 ‘기술 투자’로 그 싹을 틔우고 있다. 이미지 타격의 진통은 아직 남아있으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그의 리더십 아래 쿠팡은 단순 쇼핑 플랫폼을 넘어 거대 기술 기업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로저스 대표가 그려 나갈 '뉴 쿠팡'이 고객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