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쏜 화살이 한국 경제의 심장을 겨눴지만, 여의도는 '거버넌스 혁신'이라는 가장 단단한 방패를 꺼내 들었다."
2025년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과 1400원대를 상회하는 고환율의 대외적 불확실성 속, 시장의 질적 성숙과 구조적 재편을 동시에 경험한 해였다. 외부의 압박은 역설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제도적 개선의 기폭제가 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코스피(KOSPI) 4000 돌파'라는 새로운 고지를 밟았다. AI 산업의 실질적 수익화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강도 높은 정리가 병행되며 새로운 질서를 세운 2025년, 더밸류뉴스가 자본시장을 뒤흔든 8대 이슈를 선정했다.
◆ 트럼프 2.0 ‘관세 폭격’에 상처뿐인 한미 협상…1480원 ‘슈퍼 달러’의 습격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단행된 미국의 보편적 관세 부과는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20% 고율 관세 예고와 미 연준(Fed)의 금리 인하 중단 우려가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1480원 선을 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 후 관세부가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미지=PIXABAY]
이후 5월부터 시작된 한미 관세 협상이 8월 극적으로 타결되며 세율이 15% 선으로 조정돼 불확실성은 일부 해소됐다. 다만 그 대가로 한국 정부와 기업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과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라는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특히 현대차, 삼성전자 등 주요 수출 기업들은 관세 장벽 대응을 위해 미 현지 생산 비중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이는 국내 제조 생태계의 공동화 우려와 환율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를 동시에 남겼다.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를 위한 매각 조치는 시중 유동성 위축과 채권 금리 상승이라는 부수적인 충격을 낳기도 했다.
◆ '코스피 4000 돌파'의 명과 암…‘공포’를 이기고 45년 만에 밟은 미답의 고지
연초의 관세 및 고환율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하반기 들어 상승세를 보이며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했다. 지난 10월 27일 종가 기준 4000선 안착에 이어 11월 초 4200선 마저 넘어서며 시장의 기대감을 높였다.
2025년 12월 29일 8시 27분 기준 코스피 지수. [자료=네이버페이증권]
이번 랠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 주도권을 쥔 반도체 대형주들의 실적 호조와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입이 주요 동력이 됐다.
개인 투자자들도 무분별한 테마주 투자를 지양하고 우량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으나, 이는 지수 상승이 특정 우량주에 편중되는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본시장 개설 45년 만에 한국 증시가 '박스피'를 뚫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 상법 개정안 통과와 거버넌스 갈등…‘주주 비례적 이익 보호’의 양면성
이사회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 전체'로 확대한 상법 개정안이 지난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기업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과거 대주주 위주의 의사결정으로 소액 주주 가치가 훼손되던 관행에 법적 제동이 걸린 것이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법안 시행 이후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 적극적인 주주 환원책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내걸기 시작했다. 특히 저평가된 지주사와 우선주들이 재평가받으며 외국인 장기 투자 자금이 유입되는 기폭제가 됐다.
지배구조 개선으로 시장의 투명성은 강화됐고 개미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이사회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다만 경영권 침해 우려와 기업의 투자 위축 가능성에 대한 재계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상존하며 이해관계자 간 새로운 균형점 찾기가 과제로 남았다.
◆ AI 거품론 잠재운 실적화…금융 생태계 뒤흔든 기술의 역습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던 AI 산업이 마침내 기업의 통장 잔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서비스 수익 모델 안착으로 시장의 거품론은 잦아들었으며, 국내에서는 핀테크와 전통 금융의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됐다.
AI 산업이 거품론을 잠재우고 실적으로 가치를 증명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대형 은행들은 전국 영업점에 단순 응대를 넘어 대출 상담과 자산관리 전략까지 제시하는 AI 뱅커를 전면 배치했다. 또 초개인화된 로보어드바이저가 고객의 실시간 소비 패턴과 자산 현황을 초단위로 분석해 포트폴리오를 자동 조정하는 서비스가 보편화됐다.
이제 AI는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금융사의 비용 절감과 수익 구조 재편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며 기술 경쟁력에 따른 금융사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 비트코인 제도권 안착과 STO 법제화…‘조각 투자’ 대중화 시대 개막
비트코인이 주요국 중앙은행 및 대형 기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에 정식 편입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코인은 이제 단순한 투기 수단을 넘어 '디지털 금'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며 자산 배분 전략의 필수 요소로 안착했다.
2025년 12월 29일 8시 27분 기준 비트코인 시세. [자료=네이버페이증권]
동시에 국내에서는 토큰증권(STO)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자산 유동화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수천억원대의 대형 빌딩, 선박, 미술품 등 고가의 실물 자산을 디지털 조각으로 쪼개 실시간으로 거래하는 시장이 열린 것이다.
이는 과거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이었던 투자 기회를 대중에게 확대하는 '투자의 민주화'를 이끌었으나, 자산 가치 평가의 불투명성과 투자자 보호 체계 미비 등 신흥 시장이 해결해야 할 리스크 관리 과제도 동시에 부각됐다.
◆ 부동산 PF ‘옥석 가리기’ 완료…고통의 터널 끝에 찾은 연착륙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미지=PIXABAY]
수년간 금융 시스템의 잠재적 위험으로 지목됐던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부의 엄격한 사업성 평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부실 규모가 큰 사업장은 경·공매를 통해 정리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저축은행과 중소 시행사들이 충당금 적립으로 인한 적자 전환과 연쇄 진통을 겪었으나 자금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와 1군 시행사 위주로 시장 지배력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만 부실 정리를 통해 금융권의 잠재적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되며 부동산 시장은 투기 중심에서 사업성 위주의 건전한 투자처로 전환되는 연착륙의 기틀을 마련했다.
◆ 화학·철강 ‘K-구조조정’ 잔혹사…범용 중심에서 ‘스페셜티’로 체질 개선
석유화학 및 철강 업계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미지=PIXABAY]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와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위기를 맞은 석유화학 및 철강 업계는 생존을 위한 유례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주요 기업들은 수익성이 낮은 범용 제품 라인을 폐쇄하거나 해외 법인을 매각하는 등 군살 빼기에 나섰다.
그 빈자리에는 이차전지 소재, 탄소 포집 기술(CCUS), 친환경 고부가 제품 등 미래 먹거리에 집중하는 포트폴리오가 채워졌다. 이 과정에서 수조 원대 규모의 사업부 분할과 인수합병(M&A)이 잇따랐다. 이는 대한민국 제조 산업이 양적 팽창 위주의 과거 모델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기술 중심의 산업 구조로 재편되는 필수적인 성장통으로 평가된다.
◆ ‘원금 보장+연 8%’ IMA의 등장…증권업으로의 ‘머니무브’ 가속화
금융감독원이 지난 17일 증권사 종합투자계좌(IMA)의 설명서·약관 등 판매 서류를 구체화하며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했다. [사진=금융감독원]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종합투자계좌(IMA)를 출시하며 금융권 자금 흐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원금 보장 성격과 시중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세운 IMA 상품이 등장하자 은행권 예금에 잠자던 유동성이 증권사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뚜렷해졌다.
증권사들은 IMA를 통해 확보한 자본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대출, 인수금융 등 기업 금융 분야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핵심 공급원으로 부상했다. 이는 증권사가 단순 주식 중개인을 넘어 기업과 개인의 자산을 통합 관리하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은행권과의 수신 경쟁 심화에 따른 조달 비용 상승 등 금융 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