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랩이 기존 보안 제품에 인공지능(AI) 기능을 더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제품·데이터·보안 운영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한다. 30여종의 보안 제품·서비스와 30년 이상 축적한 위협 인텔리전스(TI)를 하나로 연결하고, 에이전틱 AI와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사업 구조까지 바꾼다는 전략이다.
안랩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안랩 AI 비전 선포 기자간담회’에서 ‘안랩 AI 플러스(AhnLab AI PLUS)’를 중심으로 한 AI-네이티브 보안 전략과 중장기 성장 계획을 공개했다. 엔드포인트·네트워크·클라우드 등에서 발생하는 보안 데이터를 연결하고 AI가 위협을 인지·추론해 대응까지 이어가는 구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강석균 안랩 대표는 “AI가 사이버보안의 게임 룰과 보안산업의 경쟁 질서를 바꾸고 있다”며 “책임 있는 혁신을 바탕으로 고객이 AI 시대의 보안 문제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상기되는 AI-네이티브 보안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제품에 AI 얹는 단계 넘어…보안 체계 '전체' 다시 설계
강석균 안랩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안랩 AI 비전 선포 기자간담회’에서 AI-네이티브 보안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안랩의 이번 전략은 기존 ‘AI 파워드(AI-Powered)’ 방식에서 ‘AI 네이티브(AI-Native)’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지는 탐지·분석·자동화 등 개별 보안 제품의 기능에 AI를 적용했다면 앞으로는 제품과 서비스, 보안 운영 자체를 AI 중심으로 설계한다.
전환의 중심에는 ‘안랩 AI 플러스’가 있다. 보안 데이터와 판단, 운영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브랜드이자 플랫폼·아키텍처다. 각 제품과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보안 신호를 개별적으로 보는 대신 서로 연결해 하나의 공격 맥락으로 분석하고 중요도와 대응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구조다.
안랩이 이 같은 전환에 나선 배경에는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의 속도와 규모 확대가 있다. 회사 발표자료에 따르면 평균 공격 확산 속도는 전년 대비 65% 증가했고 AI 기반 공격 활동은 89% 늘었다. AI가 주도한 공격 캠페인에서는 전체 공격 작업의 80~90%를 AI가 수행한 사례도 제시됐다.
반면 기업의 보안 운영은 여전히 사람이 여러 제품에서 발생한 경보와 이벤트를 직접 확인하고 조사·판단하는 비중이 높다. 클라우드와 SaaS, AI 활용 확대에 따라 보호 대상과 공격 표면은 넓어지고 분석해야 할 데이터도 증가하지만 보안 인력과 시간은 같은 속도로 늘어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사업 구조도 SaaS와 구독형 중심으로 바꾼다. 안랩은 제품과 서비스를 ‘안랩 AI 플러스 엔드포인트(Endpoint)’와 ‘안랩 AI 플러스 섹옵스(SecOps)’ 두 축으로 재구성한다.
엔드포인트는 EPP(엔드포인트 보호 플랫폼)와 EDR(엔드포인트 탐지·대응)을 SaaS 기반으로 통합하고 보호 대상을 기존 PC에서 서버·가상환경·컨테이너·모바일까지 확대한다. 섹옵스는 XDR(확장형 탐지·대응), MDR(관리형 탐지·대응), AI SOC(AI 기반 보안관제센터) 등을 연결해 탐지부터 분석·조사·대응까지 하나의 운영 흐름으로 만든다.
◆ 공격 AI가 길 찾으면 방어 AI는 흔적 추적…‘추론의 경쟁’
안랩이 AI 네이티브 보안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은 ‘에이전틱 AI’다. 단순히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답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주어진 목표에 맞춰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상황을 판단한 뒤 다음 작업을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다.
김창희 안랩 제품기획본부장이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안랩 AI 비전 선포 기자간담회’에서 ‘안랩 AI 플러스’ 플랫폼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김창희 안랩 제품기획본부장은 “AI는 고객 환경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여러 신호의 연관성을 찾아 공격의 맥락을 이해한 뒤 어떤 공격부터 처리해야 하는지 중요도를 판단해야 한다”며 “판단 결과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이 정한 정책이나 승인 범위 내에서 실제 대응 수행까지 연결돼야 한다”라고 전했다.
안랩은 이를 ‘센스(Sense)-리즌(Reason)-액트(Act)’ 방식으로 구성한다. AI가 수많은 보안 신호 가운데 의미 있는 위협을 찾아내고 공격의 흐름과 영향을 추론한 뒤 상황에 맞는 대응 방안을 계획·실행한다.
공격자 관점에서는 AI가 실행 결과에 따라 다음 공격 방법을 스스로 결정한다. 취약점을 식별한 뒤 이를 악용하고 침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 방법이 실패하면 다른 경로를 탐색하는 식이다. 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기존 자동화와 달리 상황에 따라 다음 행동을 바꾼다는 점이 특징이다.
방어 AI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공격 흔적을 발견하면 조사 가설을 세우고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아 추가 조사를 이어간다. 서로 다른 보안 제품에 흩어진 이벤트를 연결해 공격자가 어떤 경로로 침투하고 권한을 확보했는지 하나의 흐름으로 재구성한 뒤 대응 방안까지 제시한다.
안랩은 이를 공격 AI와 방어 AI 간 ‘추론의 경쟁’으로 보고 있다. 공격 AI가 다음 공격 지점을 스스로 탐색한다면 방어 AI는 다음 조사 대상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공격 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현재 안랩은 2.5페타바이트(PB) 이상의 보안 데이터와 13종의 보안 특화 AI 모델, 60개의 보안 업무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매월 1억9000만건 이상의 보안 객체와 500억개 이상의 토큰을 처리하고 있으며 AI SOC 일부 업무에서는 평균 이벤트 처리 시간을 기존 5분에서 2분으로 약 60% 단축했다.
AI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만큼 통제 장치도 함께 적용한다. AI의 판단과 행동 이력을 기록하는 ‘감사·추적’, 사용할 수 있는 도구와 데이터 범위를 제한하는 ‘권한 통제’, 위험 행동을 막는 ‘정책·보호’, 주요 조치에 사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승인’ 등이다. 안랩은 이를 ‘통제된 자율성(Controlled Autonomy)’이라고 설명했다.
◆ SaaS·글로벌로 성장축 전환…2035년 매출 '1조' 목표
안랩은 AI 전환을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사업 구조 변화로 연결한다. 기존 제품 판매와 라이선스 중심 사업에서 고객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갱신·확장하는 SaaS·구독형 사업으로 전환해 반복 매출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안랩 AI 비전 선포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안랩 AI 플러스’ 체험존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성장 전략은 ‘AI 네이티브·플랫폼·SaaS·글로벌’ 네 축으로 구성됐다. 개별 제품 기능을 판매하는 방식에서 여러 제품과 데이터를 연결한 플랫폼으로 고객 문제를 해결하고, 국내 중심 사업 구조도 해외 시장으로 넓힌다. 안랩 AI 플러스는 보안 데이터와 AI 기반 의사결정, 보안 운영을 하나의 연결 구조로 묶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위해 향후 3년간 AI 분야에 총 1000억원을 투자한다. AI 컴퓨팅과 데이터·플랫폼 등 인프라를 강화하고 AI 기술과 전문 인재, 연구개발(R&D) 역량 확보에 투자를 집중한다.
글로벌 사업 확대에도 속도를 낸다. 국내에서 축적한 기술과 보안 운영 경험을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와 글로벌 파트너 생태계를 통해 해외 시장으로 확장한다. 전략적 인수합병(M&A)과 AI 기술기업·스타트업과의 공동 연구 및 투자도 추진할 계획이다.
안랩은 이를 바탕으로 오는 2035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글로벌 매출 비중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강 대표는 “안랩 AI 플러스가 안랩의 넥스트 챕터(Next Chapter)”라며 “AI 기반 제품과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SaaS와 글로벌 사업 확대로 연결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