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보험 시장의 74.5%를 점유하고 있는 코리안리재보험(대표이사 원종규)이 실적 정체 국면에서도 오너 일가의 보수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며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지배구조 선진화 기조를 내세우고 있으나, 코리안리는 오히려 내부 규정에 상충하는 임기 연장과 자사주 소각을 통한 지분율 확대 등 오너 경영진의 실리에 치중하는 '마이 웨이'를 가고 있다.
원종규(왼쪽) 코리안리 사장, 원종익 코리안리 회장. [사진=코리안리]
◆ CEO 연봉 최상위권, 퇴직연금 활용한 ‘고액 상여’
코리안리의 제64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보험수익은 6조5761억원으로 전년 대비 3.3% 감소했고, 수취보험료는 8조800억원으로 전년(2024년) 대비 4.1% 감소하며 외형 성장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경영진의 보수 수준은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원종규 사장은 지난해 급여 11억8108만원과 상여 11억4106만원 등 총 23억2215만원을 수령했다. 이는 2024년 보수 총액인 21억1324만원과 비교해 약 10% 가량 상승한 수치다. 원종익 회장 또한 9억4229만원의 보수를 챙겼으며, 이들은 명절 및 창립기념일 상여로만 기본급의 450%를 수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보수 공시의 산정 방식이다. 원 사장과 원 회장은 성과보수 이연지급분(2021~2023년도분 20%, 2024년도분 40%)을 급여로 수령하는 대신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 계좌로 직접 납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025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임원의 누적 이연보수액은 지난 2024년 72.3억원에서 2025년 93.9억원으로 1년 사이 약 30% 증가했다. 이 금액은 근로소득 지급명세서상 보수 총액 산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고액 보수 논란을 피하는 ‘착시 효과’를 준다.
◆ 폐쇄적 이사회, ‘3% 룰’ 무력화와 이사직 세습
오너 경영진의 마이웨이는 그 뿐 아니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금융당국의 권고와 달리, 코리안리는 오히려 폐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변경했다.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의 누적 임기를 기존 5년에서 6년으로 확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인적 쇄신을 위해 임기를 줄이는 업계의 일반 추세와 배치되는 행보다. 특히 내부 지배구조 규범상 연임 임기를 1년 이내로 권장하고 있음에도, 이번에 재선임된 이사들에게는 2년 임기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보가 오는 7월 시행되는 ‘3% 룰(최대주주 의결권 제한)’에 대한 방어책이라고 분석한다. 우호적인 이사들의 임기를 연장해 경영권 방어력을 높이고, 외부 주주의 견제를 차단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원혁희 선대 회장 시절부터 26년간 자리를 지킨 이필규 이사의 직위와 지분이 자녀에게 승계되는 안건까지 통과되며, 이사회가 오너 일가와 우호 세력 중심의 폐쇄적 네트워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는 독립적인 감시 기능을 마비시키고 지배구조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 있다.
코리안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주식소유 현황. [이미지=더밸류뉴스]
◆ 2454억 자사주 소각, 오너가의 공짜 '지배력 강화'
또 코리안리는 지난달 약 2454억원 규모의 자사주 전량을 소각했다. 사측에서는 이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으나, 증시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가 사재 출연 없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지적한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총수를 줄여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자동으로 높이는 효과를 낸다. 이를 통해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도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22.5%대까지 수직 상승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기주식 소각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주주에게 환원되어야 하는 배당가능이익(회삿돈)으로 취득한 자사주는 특정 주주만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취득 재원이 주주 전체의 자산인 만큼, 그 혜택이 대주주의 지배구조 방어라는 특정 목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역시 '한국 기업의 자사주 처분 및 소각에 관한 실증 연구' 논문에서 자사주 소각이 전체 주식 수를 줄이며, 대주주의 지배력을 비용 없이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논증했다. 자사주 소각이 주가에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대주주가 주주 공동의 자산을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공짜로 키우는 '주주 평등의 원칙' 위배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문제점 지적에 대해 코리안리 측은 “자사주 소각은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일 뿐, 오너 일가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결국 핵심은 수익의 방향성이다. 자사주 소각이 진정으로 주주의 권익 향상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주주환원이라는 명분 뒤에서 오너 경영진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전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냉철한 감시가 필요하다. 금융당국의 엄중한 실태 파악과 시장의 견제가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