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G손해보험(예별손해보험) 매각 예비입찰에 하나금융지주, 한국투자금융지주, JC플라워 등 3개사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며 보험 인수 시장이 반전의 국면을 맞았다. 네 차례 유찰 끝에 찾아온 이번 흥행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내건 약 대규모 자금 지원과 인적 구조조정이라는 인센티브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당국이 몽둥이 대신 내민 당근에 시장이 응답했을 뿐"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있다. 새로운 보험회계제도(IFRS17) 도입과 금리 하락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 인위적인 ‘워싱(Washing)’을 통한 매각이 부실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다 또 다른 ‘폭탄 돌리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 IFRS17과 금리의 역설…2.8조 쏟아부은 ‘공적자금 잔혹사’
MG손보를 비롯한 중소형 보험사들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IFRS17 도입과 금융당국의 제도 개편에 있다. 과거 원가 기준이던 보험 부채가 시가로 평가되며, 5~7%대 고금리 확정형 상품들이 금리 하락기와 맞물려 거대한 부채 덩어리로 돌변했다. 자산운용 수익률은 뒷걸음질 치는데 지급 이자는 요지부동인 ‘이차역마진’의 늪은 금융감독원의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과 ‘할인율 산정 기준 강화’라는 규제 하중까지 더해지며 더욱 깊어졌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 본사 전경. [사진=예금보험공사]
예보가 가교보험사인 예별손보를 세워 자산·부채 이전(P&A) 방식을 택한 것은 회계적 부실과 법적 소송 리스크를 분리해 매물로서 상품성을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당국이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험한 일을 자처하고 역대급 지원금을 약속하며 이른바 ‘성형수술’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부실 정리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본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998~2019년 예보가 부실 보험사 계약이전과 관련해 지원한 공적자금은 총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998년 국제·BYC·태양·고려생명이 삼성·교보·흥국·제일생명에 인수될 당시에도 9247억원의 자금이 선제적으로 지원됐다.
이번 인수에서 금융권이 예측하는 예보의 지원금은 8000억원에 달한다. 이 막대한 비용 역시 금융기관들이 매년 납부하는 예금보험료에서 기인하며, 이는 대출 금리 인상이나 보험료 상승 등으로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간접세’ 성격을 띤다.
결국 본질적인 구조를 교체하지 않은 채 외관만 닦아 파는 현재의 방식은, 전체 보험업계의 건전성을 저해하고 국민의 부담만 가중할 우려가 크다.
◆ 금융지주의 전략적 선택과 ‘시스템 수술’의 필요성
대형 금융그룹들이 '독이 든 성배'로 불리던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비은행 부문 강화가 절실한 지주사들로서는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금이 IFRS17 하에서 인수자가 짊어져야 할 자본 확충 부담을 상쇄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MG손해보험 인수에 나섰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자금을 조달하는 안정적인 ‘캐시카우(Cash Cow)’로 보험사를 인수해, 그룹의 강점인 증권·자산운용사의 운용 역량과 결합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시너지 모델을 추진할 수 있다. 은행 의존도가 높은 하나금융지주 역시 손해보험 계열사의 체급을 키워 종합금융그룹으로서 포트폴리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다만,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의 정리 시스템이 시장 자율 기능만으로는 작동하기 어려울 만큼 부실의 깊이가 깊다는 점을 방증한다. 과거 20여년간 퇴출된 20개 생보사 사례를 보면, 대다수가 ‘전부 계약이전’ 방식을 택하며 부실 책임을 공공이 떠안았다. 일부 계약이전 사례조차 대주주의 책임을 묻기 위한 극소수 계약 제외에 그쳤을 뿐이다. 아무리 자본을 수혈해도 보험 계약에 내재된 약정 이율 자체를 조정할 수 없는 현행법의 한계는 여전히 잠재적 리스크로 남는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부실 보험회사 연구보고서에서 “보험회사가 가까운 미래에 대규모로 부실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금융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유사시 보험회사가 무너지면 이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미리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미래지향적 제도 개편…‘당근’ 넘어 실질적 대안으로
시스템 개선의 중요성은 최근 취임한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행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 핵심 과제로 '선제적 위기대응 역량 강화'와 '미래지향적 예금보험제도 개편'을 내세웠다.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지난 7일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예금보험공사]
특히 부실정리제도의 정비와 함께 '업권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예금보험체계 구축'을 강조한 점은 당국도 현 보험업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보는 이번달 말까지 예비인수자를 선정하고 약 5주간의 실사 기회를 부여한 뒤, 3월 말까지 본입찰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MG손보 사태는 행정 편의주의적 정리 방식이 변화된 회계 기준과 거시경제 환경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당국이 공언한 '미래지향적 개편'이 단순히 일시적인 자금 지원이나 인력 청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임 예보 사장의 취임은 기존의 관행적 정리 방식에서 벗어나 부실 보험사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 방안을 강구할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노출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고, 격변하는 금융 환경에서 보험업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뚜렷한 입법적·제도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 보험 산업은 또다시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고도 부실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조정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당국의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