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올까? 예술 계통 종사자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떠올린 이들은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힘이 '자유로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창의력은 오히려 규칙적이고 안정된 삶을 살아갈 때 폭발적으로 발휘된다. 변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뇌에게 '쉴 틈'을 제공하고, 충분한 여유를 얻은 뇌는 에너지를 축적해 창의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발산해 낸다.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의 가치가 실은 하나의 점으로 맞닿아 있다.
창의력과 규칙적인 삶의 관계는 다른 데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 가령, 성공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일확천금을 얻어 하룻밤 사이 부자가 된 자와 꾸준히, 성실하게 준비해 차곡차곡 자산을 축적한 자는 한 축의 양끝에 서 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둘의 삶은 꽤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전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탱자탱자 놀다 친구의 권유를 받아 비트코인에 심심풀이로 10만 원어치 정도 넣었고, 그 후 말도 안 되는 상승세를 겪어 시쳇말로 '떡상'에 성공한 희귀 케이스만 아니라면 말이다. 남들 눈에는 그저 '드라마틱해' 보이는 타인의 성공담들은 사실 꾸준한 준비와 무수한 시도, 그리고 뼈아픈 실패들로 다져진 토대 위에 피어난 떡잎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에는 특히 조심한다. '너도 성공할 수 있어!' 속삭이는 듯한 몇몇 책들의 유혹에 나는 너무나도 넘어가기 쉬운 부류의 사람이다. 긴장을 놓고 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보면, 어느새 타인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노력 없이 엿보는 것만으로 나 역시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버리고 만다. 그러한 믿음은 실체 없는 허상이고, 허상으로 다진 토대에는 씨앗이 뿌리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이성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는 압박과 부담, 긴장도를 팽팽하게 유지한 채로 책을 읽으려니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서들과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는 '필요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필요에 의해서라도) 경제경영서 한두 권은 더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그러나 생각은 잠시에 그칠 뿐, 다시 편식에 가까운 독서 취미를 이어 나갈 뿐이다. 그렇게 한 구석 교양의 보따리가 두툼해지는 사이, 다른 한 구석 '경제'에 대한 지식과 판단력과 준비성은 빈약해진 내가 남는다.
'드디어 만나는 경제학 수업' 미셸 케이건·앨프리드 밀 지음, 김선영 옮김, 현대지성. [이미지=알라딘]
이 책은 나와 같은 이유로 어느새 읽기 좋은 가벼운 교양서와 소설책으로만 독서 취향을 좁혀버리고 만 장서가들에게, 특히 단순히 취향만 좁아진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직격하는 고민과 죄책감(!)이 생겨버린 이들에게 추천한다. '소설은 재미있어. 에세이도. 과학책도, 수학책도 가벼운 교양서 정도는 술술 읽지. 그런데 경제는 어려워!' 마음속으로 나와 같은 비명을 지른 사람이 한둘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를 다루는 편집자들의 평균 월급이 내 것보다 높을 리 없으니까(?).
우스개로 시작했지만, 추천하는 말까지 전부 농담인 것은 아니다. 책은 독자가 '경제 문해력'을 기를 수 있도록, 경제 현상을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초 지식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얼마나 차근차근이냐 하면, 이 책보다 경제학의 전반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은 없다고 감히 확신한다. '보이지 않는 손' 같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썩 잘 알고 있지는 않은 개념부터 요즘 이슈로 자주 언급되는 비트코인까지, 경제 활동을 주체적으로 해 나가는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국제 정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휙휙 급변하고, 경제 이슈는 하루에도 두세 개씩 연달아 터지는 요즘이다. 경제불황이니, 제2의 IMF니 하는 이름만 들어도 두려운 이야기들까지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지만, 부끄럽게도 경제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상태라 비판적으로 읽고 자율적으로 수용해 판단하는 것이 버거웠다. 그러다 책의 제목처럼, '드디어' 내게 필요한 정보를 쏙쏙 큐레이션 해 놓은 알짜배기 교과서를 만나게 되었다.
월급을 받아 저축하거나 투자를 해야 할 때도, 창업을 할 때도, 그뿐 아니라 '돈'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선택들에도 경제학의 기초 이론은 꼭 필요하다. 단순히 돈이 들고 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수한 선택지 중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판단해 고르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여행을 택하면 발생하는 비용은 얼마일까요? (중략) 이게 다가 아닙니다. 여행을 떠남으로써 출근하면서 벌 수 있었던 며칠의 급여까지 포기한 셈이니까요."
그냥 읽어도 술술 넘어가는 쉬운 예시로 '기회 비용'의 정의부터 배운 우리는 책의 말미에선 연방준비제도가 물가상승률에 대비하는 방법과 소득 재분배의 원리, 기후거래소와 탄소배출권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어렵고 낯선 경제학에 한 걸음 다가가, "삶의 무기가 되는" 진짜 토대를 만들어 보자.
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