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
생각해 보면, 나는 스스로 경제권을 쥐게 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내면의 ‘욕구’와 싸워 왔다. 충동구매나 비합리적 소비는 때로 이를 부추기는 ‘밈’과 결합해 죄책감 없이 내게 파고들기도 하고, 훌륭하게 제압되어 뿌듯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 두 가지 나쁜 버릇은 나뿐만 아니라 경제권을 이제 막 쥐게 된 성인들, 사회초년생이나 주니어 연차 직장인들 사이에서 늘 화제였는데, 그래서인지 비슷한 연차의 직장인들 모임이 생기면 거의 매번 ‘돈 관리’에 대해 입 모아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들 각자 썩 훌륭한 어른으로(!) 의젓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충동구매와 비합리적 소비라는 두 가지 작은 악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어 본 경험이 많았다는 점이다.
월급 직후에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주식이나 코인을 충동 구매한 경험도 다수인데다, 계획 소비를 하지 못해 월급 직전 돈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쫄쫄 굶기도 하고, 절약을 잘하다가도 갑자기 큰 비용이 드는 사치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귀찮아서, 바빠서,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합리적이지 않은 구매를 한 적도 다수다. 아마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경우까지 전부 모으면 더 많아질 것이다.
문득 이렇게 휘둘리고, 일희일비하며 지낸 시간을 단순 추산해 보면, 조금 오싹해진다. 생각보다 내 하루 24시간 중 꽤 많은 순간들을 충동구매와 비합리적 소비에 휘둘리거나, 이를 안간힘을 써 막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소비를 위한 로봇’이 된 것 같다.
문제를 인지하고 나면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생각보다 이 두 가지 작은 악마들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 이 문제에 있어 단순히 생활비 몇 푼 더 쓰고 말고의 문제에서 끝이 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자율이 터무니없는 고리대금으로 거액의 빚을 지거나, 당연히 챙겨 받아야 할 정부 지원금을 놓쳐 적게는 몇십만 원에서 많게는 몇백만 원 가치의 손해를 보는 이들도 많다.
나 역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당연하게 받아야 할 청년 지원 정책 중 하나를 제대로 챙겨 신청하지 않아 놓치고는, 내 게으름과 산만함을 탓했던 적이 있다. 다수는 위와 비슷한 경험을 한 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탓할 것이다. 혹은 비슷한 실수로 자책하고 있는 사람을 봐도, 핀잔 섞어 ‘그러게 잘 좀 신경 쓰지’ 생각하는 것 말고는, 달리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저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해, 세상에 ‘결핍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제시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이를 통해 잘못된 선택으로 손해를 보거나 실패하게 되는 일들은 단순히 개개인의 주의력 부족이나 산만함,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기질 때문이 아니다. 각자가 ‘무엇을’ 대상으로 그러한 행동을 보이냐가 달랐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는 배경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으며, 그 패턴의 원인은 곧 ‘결핍’이다. 즉, 개인의 부족함에 의한 단편적인 실수나 실패가 아니라, ‘결핍’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양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빌리버튼. [이미지=알라딘]
저자들은 이 ‘결핍’이란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며, 그럼에도 제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체적인 방법’이란, 개인이 개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시행한다고 뚝딱 해결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조직의 분위기를 환기시켜 ‘결핍’을 제어하고 다스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개개인도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먼저, ‘결핍’의 문제에 대해 속 깊이 들여다보고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하여, 실수하고 실패하는 나를 자책하지 않는 것. 같은 고민으로 헤매고 있는 이를 보며 그 사람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는 것. 예를 들어, ‘네가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따위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 것. 책의 초입에서 ‘결핍’에 대해 이해하여 이 태도를 갖추고 나면, 비로소 저자가 책에 제시해 놓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결핍학이란, 엄밀히 말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무제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진 희소한(역주–‘희소하다’는 말은 결핍을 의미한다)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지 연구하는 학문”, 즉 ‘경제학’이 바로 결핍학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논리 안에서 결핍은 늘 누군가의 소비를 부추겨 다른 사람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 소비의 과정에 소비 주체인 ‘우리’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혹자는 그렇게 메마른, 냉철한 눈이야말로 ‘부자가 되고, 성공하기 위한’ 자세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러한 시장 논리를 그럴 듯하게 들먹여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스타 강연자가 된 이들도 많다. 하지만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읽고 나면, 그들의 속 빈 강정 같은 소리가 그동안 우리의 어떤 ‘결핍’을 자극해 왔는지, 올곧게 보일 것이다.
우리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하고, 자책하게 하고, 쫓기게 하는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이 책과 함께라면 그러한 준비 운동을 마칠 수 있다.
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