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문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비평연대
[설명문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 ‘공정’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다. 뉴스데스크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절반은 사회의 공정성을 침해하는(또는 그렇게 느끼게 하는)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공정성이 사또님의 손에 달려있었다면, 현대의 공정성은 ‘능력’과 긴밀하게 관계 맺는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공정의 실현이다. 이것은 꽤 많은 것들을 정당화하고, 쉽게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견고한 성벽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도 능력주의는 이미 공정성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곳곳에 자리 잡았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 확대는 더 이상 논의 단계가 아니며, 여러 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공정하다.”
이쯤 돼서 이런 명제를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진 능력만큼의 정당한 성과가 따르는 사회가 공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미 현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이 명제를 은연중에 받아들인 듯하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간단한 명제를 더해보고자 한다.
“‘능력’은 모두가 동등한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가치이다.”
여기서부터 벌써 몇 가지 안티테제가 떠오른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노력’은 모두가 동등하게 행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머리가 아파진다. 위처럼 아주 짧은 변증만으로 현대의 능력주의는 자신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꽤 많은 반박과 근거,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이 암묵적 합의는 꽤 빈약한 실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설명문의 독서 설명문] ③ 부의 사다리는 어디로 갔을까](/data/cheditor4/2510/6b119512411a42010e122328189de56f709be717.jpeg)
엘리트 세습.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세종서적.
봉건사회에서 민주주의, 자본주의로의 진화 속에서 능력주의가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 초기에는 상위 계층의 문을 여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능력주의는 계급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의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20년간 해당 주제를 추적 연구하여 『엘리트 세습』을 집필했다. 2020년에 출간되어 거대한 사회적 화두를 남긴 이 책의 원제는 『The Meritocracy Trap』,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함정’이다. 저자는 우리가 공정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제로 계층 간의 격차를 더 벌리는 도구로 전락한 능력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여러 근거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파헤친다.
저자의 주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상위 계층, 즉 ‘엘리트 집단’의 변화이다. 과거 봉건사회에서 상위 계층에게 노력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충분한 여가로 부를 증명할 수 있었고, 법과 제도가 그 지위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노력’은 상위 계층이 부를 지키고 격차를 벌리기 위한 ‘필수 덕목’이 되었다. 오늘날의 능력이 일종의 자산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자산은 엘리트 교육, 배경 등의 형태로 대물림되어 계층 간의 초격차를 만든다.
능력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엘리트 세습』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맥락을 공유한다. 샌델이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서 능력주의의 문제를 짚었다면, 마코비치는 구조적, 경제적 관점에서 능력주의의 함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체한다. 두 책 모두 현대의 능력주의가 계층 간의 격차를 벌리고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엘리트 세습』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목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래서, 과연 엘리트들은 행복해졌을까?”
역설적으로,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엘리트 계층은 네 살 때부터 에세이, 평가, 면접 등의 혹독한 평가를 받고, 성인이 되어서도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 혹은 사업에 몰두한다. 그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한 능력주의의 유혹에 빠져 삶을 대가로 격차를 벌린다. 일찌감치 경쟁에서 도태된 하위계층도,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오른 계층도, 모두가 능력주의의 희생양이다. 우리는 그 누구의 삶도 나아지지 않은 채, 계층 간의 격차와 갈등이 심화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도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글의 말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결이라고 말한다. 엘리트와 중산층, 그리고 다른 모든 노동자가 힘을 합쳐 기회의 평등을 나누자는 다소 이상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비록 아름답기만 한 해결책일지라도, 날뛰는 현대 능력주의의 민낯을 드러내고 해체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본분을 다했다. 이제 그 고삐를 모두가 함께 잡아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 사회적 화두를 함께 다룰 ‘장’을 여는 것뿐이다.
![[설명문의 독서 설명문] ③ 부의 사다리는 어디로 갔을까](https://www.thevaluenews.co.kr/data/cheditor4/2509/93b62623f1073e179d266d21c22b326481e6049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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