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문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비평연대
[설명문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 해가 지고 느지막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큰 길을 두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꽤 오래된 습관이다. 초등학교 하굣길, 골목 커피집 앞에서 뛰다 크게 자빠진 적이 있다. 사장님은 나를 데리고 들어가 약을 발라주셨다. 입에는 박하사탕을 물려주셨고, 사방에서는 커피 냄새가 풍겼다. 어른의 향이 났다. 꽤나 멋있게 느껴졌다. 이후로 종종 놀러 가 커피향을 맡으며 사탕을 얻어먹곤 했다. 그 달달한 향수 때문일까, 난 아직도 골목에 들어서면 보물찾기를 하듯 카페를 찾아본다.
카페는 도시 속에서 ‘적당히 혼자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카페는 집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단위가 되었다. 마신다는 행위보다 머무름이 존중받는 공간이다. 머무름은 관계를 쌓는 것이다. 오래도록 찾아지는 카페엔 그만큼 오랜 관계가 있다.
집 근처 강변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날개 모양의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생각이 필요할 때마다 차 한 잔을 샀다. 그리고 날개 사이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물멍을 때리곤 했다. 그 건물의 설계자가 건축가 김수근인 것을 알게 된 건 건축학과에 진학하고 난 이후다. 학생들이 그곳에서 건축적 깨달음을 얻으려 애쓸 때, 나는 여전히 날개 사이에서 물멍을 때렸다.
방문했던 수많은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겨도, 난 여전히 본가에 방문할 때면 종종 날개 사이로 향한다. 김수근의 수작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내게 물멍을 때리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시험에서의 해방감, 책장을 넘기던 오후, 고민이 머물던 밤. 강으로 열린 날개에서, 나와 공간은 물멍을 매개로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고등학생 시절의 KT&G 상상마당 춘천 [사진=KT&G 상상마당]
“나중에 돈 모아서 작은 카페 하나 차리고 싶어.”
한국은 카페의 나라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만의 카페를 상상하고, 도전한다. 골목골목엔 그러한 흔적이 곳곳에 즐비해 있다. 보물찾기에서 내가 수없이 발견했던 그 도전들은 과연 몇이나 지속되었을까. 발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생기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나는 그 빠른 변화 속에서, 두 가지 카페를 발견한다.
최근 방문한 유명 유튜버의 카페에서는 음료로 행성을 내준다. 가구의 마감재는 우주선을 비유하고 벽에는 크레이터까지 뚫려있다. 커피를 마시러 왔는데, 우주라는 콘텐츠를 즐기게 된다. 두 가지 부류 중 하나가 이러한 카페다. 이 부류는 내향적이다. 쇼케이스처럼 ‘의도된 경험’이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에 방문객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트렌드의 변화, 상권의 이동이라는 변수에서 화제성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또 하나의 부류는 외향적 카페다. 이 카페는 관계중심적이다.
외향적 카페는, 장소와 관계 맺는다. 동네 핀 꽃을 액자처럼 차용하거나, 골목을 테이블까지 끌어들인다. 외향적 카페는, 사람과 관계 맺는다. 손님들의 다양한 모습이 길거리에 연출되고, 바리스타의 손짓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외향적 카페는, 시간과 관계 맺는다. 멋있게 나이 든 벽돌 벽 앞, 손때 탄 나무의자에 앉아 차를 홀짝일 수 있다.
외향적 카페는 장소, 사람, 그리고 시간과 관계 맺는다. 다방향적이고, 수평적이다. 강한 하나의 공간이 아닌, 개개인의 세계가 구축된다. 외향적 카페는 그렇게 일상을 향유하는 공간이 된다. ‘지속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카페의 공간학: 세계의 디자인 엿보기. 카토 마사키 지음. 시공문화사.
후쿠오카의 한 사찰 근처, 삼나무로 된 긴 터널에 들어서야 만날 수 있는 스타벅스가 있다. 지옥조로 짜인 정교한 목구조 터널은 도시에서 시작해 내부의 오르막 정원까지 이어진다. 이 터널은 도시와 카페, 그리고 정원의 경계를 지운다. 행인은 이끌리둣 일상에서 자연스레 벗어나, 이내 참선한다.
후쿠오카의 사찰 근처, 서울의 골목, 파리의 광장. 세계 곳곳에는 관계를 통해 경험과 사유를 안겨주는 외향적 카페들이 있다. 일본의 일급 건축사인 저자는 이런 카페 공간을 건축가의 눈을 통해 이야기한다. 시부야의 공터에서 두바이의 금융가까지. 장소, 사람, 시간과의 관계를 통해 지속력을 획득한 카페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달성하는 방법론을 세부를 통해 제안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세부’에서 드러난다. 현장에서 정밀하게 실측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디테일들이 기록된다. 문턱의 높이, 테이블의 간격, 창문에서의 시선까지 세부적인 수치와 그 모습을 모두 스케치로 표현했다. 긴 문장보다 더 설득력 있는 스케치와 사진들. 그 위에 건축가의 시선이 얹힌다.
관계는 지속력을 만든다. 저자가 기록한 카페와 세상의 다양한 관계는 지속 가능한 카페를 창업하고 싶은 모두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발견했던, 그리고 발견할 그 많은 보물들이 세계와 오래토록 관계 맺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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