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부회장 김동관)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보유한 한화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한미 조선협력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이번 결정은 한화그룹이 미국 내 조선업 부활을 선도하는 동시에 한국 조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발표돼, 양국 정부의 의지가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발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된 외교·산업 협력의 토대 위에서 한화그룹은 미국 시장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창업 정신을 글로벌 차원에서 실현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명명식…조선협력 가속화
26일(현지시각)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에서는 미국 해사청(MARAD)이 발주한 국가안보 다목적 선박(NSMV) 3호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 명명식이 개최됐다. 이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상징적 행사로, 양국의 정치·경제 협력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장면이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6일(현지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시의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선박 명명식에서 이재명 대통령, 조쉬 샤피로(Josh Shapiro) 펜실베니아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행사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 조현 외교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서는 조쉬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 토드 영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메리 게이 스캔런 연방 하원의원 등이 자리했다. 기업 측에서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이사, 마이클 쿨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글로벌부문 대표이사 등이 함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명명식 직후 조선소 내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시찰한 뒤 방명록에 “한미 조선협력의 상징인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한미 동맹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길 기대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전날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그는 “조선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에서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도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쇠락한 미국 조선업을 한국과 협력해 부흥시키고 싶다”며 “양국이 협력해 미국에서 선박이 다시 건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화, 50억달러 투자로 조선소 연산 20척 체제 구축
한화그룹은 이날 명명식과 함께 50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조성된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산업 협력 펀드를 주요 재원으로 활용한다. 해당 펀드는 정책금융기관이 주도하며 직접투자, 보증,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된다.
투자 계획에 따르면 한화필리조선소는 도크 2기와 안벽 3기를 추가 확보하고, 약 12만평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를 신설한다. 이를 통해 현재 연간 1~1.5척 수준인 건조 능력을 20척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나아가 한화오션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야드, 안전 시스템을 도입해 LNG 운반선과 군함 블록 및 모듈을 생산하고 장기적으로는 함정 건조까지 추진한다.
한화필리조선소는 지난해 말 한화오션(40%)과 한화시스템(60%)이 약 1억달러를 투입해 인수했다. 인수 당시부터 미국 상선 및 군함 건조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반영됐다. 이번 50억달러 투자는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미국 조선업 재건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 위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김동관 부회장은 환영사에서 “명명식은 한미 양국이 조선산업을 재건하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투자가 실질적으로 구현된 성과”라며 “한화는 미국 조선산업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 새로운 기회와 성장을 함께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화해운, 유조선·LNG선 발주로 마스가 프로젝트 지원
같은 날 한화그룹의 해운 계열사인 한화해운(한화쉬핑)은 한화필리조선소에 중형 유조선(MR탱커) 10척과 LNG 운반선 1척을 발주했다. 이번 계약은 마스가 프로젝트와 연계된 첫 대규모 수주로, 한화필리조선소가 프로젝트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이재명(가운데) 대통령과 김동관(오른쪽 세번째) 한화그룹 부회장이 26일(현지시각) 미국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화필리조선소 데이비드 김 대표, 조현 외교부 장관, 조쉬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정관 산업부장관, 토드영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사진=한화그룹]
발주된 유조선은 모두 조선소 단독 건조로 진행되며, 첫 선박은 2029년 초 인도될 예정이다. LNG 운반선은 지난해 7월 체결한 3500억원 규모 계약의 옵션 물량으로, 국내 한화오션과 공동 건조한다. 미국 내 조선소가 LNG 운반선을 수주한 것은 50년 만에 이뤄진 성과다.
한화해운의 발주는 미국산 에너지 수출 시 미국 선박 사용을 의무화하는 존스법 개정 움직임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신규 선박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의 에너지 안보를 지원하고, 글로벌 에너지 물류 분야에서 주도권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한화필리조선소는 지난해 7월 한화해운으로부터 3500억원 규모 LNG 운반선을 수주했다. 당시 미국 조선소가 LNG선을 확보한 것은 반세기 만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발주로 한화해운과 한화필리조선소는 상호 시너지를 강화하며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견인할 전망이다.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조선협력의 상징
이번 명명식에서 주인공이 된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는 길이 159.85m, 폭 27m 규모로 최대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선박이다. 평시에는 미국 해양대 학생들의 훈련선으로, 비상 시에는 재난구호와 인도적 지원 임무를 수행한다. 한화필리조선소가 해사청으로부터 수주한 다섯 척 가운데 세 번째 선박으로, 앞선 1~2호선은 2023년과 2024년에 인도됐다.
한화그룹의 이번 투자와 발주는 단순한 조선소 확충을 넘어 한미 동맹 강화의 구체적 결과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쇠퇴한 조선업을 되살릴 발판을 마련하고,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조선산업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동시에 한화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한국 내 산업 생태계 강화 등 ‘윈윈’ 구조를 실현하며 창업 이념인 ‘사업보국’을 실천하게 된다.
이에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는 한미 조선협력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마스가 프로젝트가 가속화되고, 양국 정부와 기업이 함께 추진하는 조선업 르네상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의제가 현장에서 대규모 투자와 발주로 이어진 만큼, 한화그룹의 전략적 행보는 향후 한미 동맹의 산업·경제 협력을 더욱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