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투매가 쏟아지며 10% 넘게 급락했다. 장중 6000선까지 무너졌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가 차례로 발동됐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 우려와 AI 기업의 재무건전성 부담, 미국 빅테크 실적과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앞둔 위험회피 심리가 겹치며 변동성이 극대화됐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하나은행 딜링룸. [사진=더밸류뉴스]
◆ 코스피 10.70% 급락 장중 5992선까지 추락...
28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722.99포인트(10.70%) 내린 6032.76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6400.27로 출발한 뒤 낙폭을 확대해 장중 5992.91까지 밀리며 6000선을 내줬다. 코스닥은 전 거래일보다 59.04포인트(7.72%) 하락한 705.82로 마감했다. 장중에는 697.45까지 내려가 7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도 개장 직후부터 잇달아 작동했다. 한국거래소는 오전 9시6분 유가증권시장에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당시 미니 코스피200 선물은 기준가격보다 6.42% 떨어졌고 프로그램매매 순매도 규모는 3157억원에 달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사이드카 발동은 42번째로, 매도 22회와 매수 20회를 합한 수치다.
이어 오전 10시13분 코스피가 전일보다 8% 넘게 하락한 상태를 1분간 유지하면서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발동 당시 코스피는 6212선까지 내려갔으며, 올해 들어 8번째이자 유가증권시장 제도 도입 이후 역대 14번째 발동으로 집계됐다. 사용자가 전한 오전 10시20분보다 공식 보도상 발동 시각은 오전 10시13분이다.
코스닥에서도 오전 9시14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닥150 선물과 코스닥150지수가 각각 6.07%, 5.92% 하락하면서 프로그램매매 매도호가가 5분간 정지됐다. 이날 코스닥 사이드카는 올해 26번째로 매도 12회, 매수 14회가 발동됐다.
낮 12시1분에는 코스닥지수가 전일 종가 764.86에서 702.91로 8.09% 하락하면서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올해 세 번째이자 역대 13번째 발동이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함께 발동된 것은 역대 여섯 번째 사례로 나타났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 동반 급락…중국발 반도체 우려 확산
지수 하락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가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3.58% 내린 21만9500원, SK하이닉스는 14%대 급락한 155만원대에서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기와 SK스퀘어도 각각 16%, 15% 넘게 내리며 반도체 관련주 전반으로 매도세가 확산됐다.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 [사진=더밸류뉴스]
중국 업체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양산에 나설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미국 시장에서 ASML과 마이크론, 엔비디아 등 반도체 관련 종목이 약세를 보였고 국내 반도체주에도 매도세가 전이됐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증시 하락 배경과 대응 전략>에서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의 DUV 노광장비 양산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자립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기술적 완성도 측면에서 즉각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지만 기술 개발 속도가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극했다”라고 전했다.
AI 인프라 투자의 수익성에 대한 경계감도 투자심리를 냉각했다. 오라클과 알파벳,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등 AI 관련 기업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상승하면서 대규모 설비투자가 기업의 현금흐름과 재무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됐다.
조 연구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주요 AI 기업의 CDS 프리미엄이 일제히 상승하면서 대규모 AI 투자에 따른 현금흐름 부담이 신용시장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며 “빅테크 실적과 FOMC를 앞두고 적극적인 매수보다 위험회피 움직임이 우세했다”라고 분석했다.
◆ “새 악재보다 포지션 청산”…반등 뒤 수급 안정 확인해야
증권가에서는 이날 급락이 새로운 경기침체 신호라기보다 반도체와 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됐던 포지션이 빠르게 청산된 결과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놨다. 외환시장이 주식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는 점도 국가 전반의 시스템 위기보다는 국내 증시 내부의 수급 충격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번 급락은 중국 반도체 기술 추격과 AI 투자 수익화 우려, 국내 반도체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된 포지션의 강제 축소로 압축된다”며 “새로운 악재가 시장을 무너뜨렸다기보다 과도한 포지션과 얇아진 유동성이 만나 한꺼번에 가격에 반영된 것에 가깝다”라고 전했다.
단기적으로는 낙폭 과대에 따른 기술적 반등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첫 반등만으로 추세 전환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은 과거 코스피가 하루 10% 이상 급락했던 네 차례의 사례에서 다음 거래일 모두 반등했지만, 이후 흐름은 이익과 수급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급락 이후 첫 반등은 기술적 요인만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전 저점을 지키는지, 반도체 이익 전망이 유지되는지, 외국인 현·선물 수급과 레버리지 ETF 환매가 안정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주 예정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확정 실적, 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애플 등 미국 빅테크 실적, FOMC 결과가 향후 방향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펀더멘털보다 포지션 청산이 급락을 주도했다면 실적과 수급 확인 이후 반등이 가능하지만, 반도체 이익 전망까지 낮아질 경우 지수가 재차 저점을 시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