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소성민 칼럼] 불확실성의 시대, 증시 급등을 읽는 법

- 증시 급등과 경제 위기설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

- 앨런 그린스펀의 경고로 다시 읽는 ‘낙관의 위험’

- 혼돈의 한국 경제에서 필요한 자세는 예측보다 해석이다

  • 기사등록 2026-01-19 08:43:21
기사수정
[더밸류뉴스=소성민 금융증권부장 부국장]

앨런 그린스펀은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Turbulence)〉라고 붙였다. 그린스펀은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1987~2006)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 회고록은 “나는 늘 확신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의 고백으로 유명하다. 2007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듬해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덕분에 책의 제목이 한동안 예언처럼 회자됐다.


그린스펀이 말한 ‘불확실성’은 단순한 혼란이나 위기가 아니라 현대 경제 자체를 통찰하는 표현이었다.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정보는 실시간으로 퍼진다. 그 결과 경제는 더 역동적으로 전개되지만, 동시에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정책이든 개인이든 가장 위험한 시기는 확신이 지배할 때라는 것이다.

[소성민 칼럼] 불확실성의 시대, 증시 급등을 읽는 법증시 급등에 환호하는 투자자들에게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준 의장이 쓴 <불확실성의 시대>는 ‘확신의 위험’을 경고한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증시는 미래를 사고, 사람들은 현재를 산다


작금의 한국 경제는 그린스펀 회고록이 발간되던 2007년보다 훨씬 더 불확실성 속에서 움직인다. 시계(視界)가 가히 안개처럼 뿌옇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갈수록 차가운데,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일각에선 ‘한국 경제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데, 실물경제를 반영하는 코스피(KOSPI)의 움직임은 완전히 딴판이다. 이 어긋난 현실 앞에서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증시가 말해주지 않는가, 한국 경제가 괜찮다고!”와 같은 낙관과 “코스피 폭등은 착시일 뿐이다!”와 같은 냉소 사이에서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다.


두 시선 중에서 당장 어느 쪽이 맞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맞추더라도 결과론이 될 뿐이다. 문제는 작금의 증시 급등이 야기하는 '착시현상'이다.


주식시장은 언제나 현재보다 미래를 먼저 산다. 지수가 오르는 현상은 오늘의 소득이나 오늘의 삶이 더 나아졌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주식 가격에 먼저 반영된 결과다. 작금의 증시 급등 역시 마찬가지다.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업 같은 서사는 분명 현실적 근거를 갖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특정 산업에서는 대체하기 어려운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한국 증시가 오랫동안 받아왔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일부 해소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가장 위험할 때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그린스펀의 경고가 떠오른다. 가장 위험한 생각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믿음이다. 과거에도 기술 혁신은 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예언이 등장했고, 그 결과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주식시장은 그 변화를 너무 빠르게, 너무 비싸게 앞서 반영했다. 이른바 ‘닷컴 버블’ 후유증이었다. 1980년대 일본 증시는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영원한 상승’을 노래했지만, 그 확신은 1990년대 이후의 장기 침체로 되돌아왔다. 역사는 늘 이렇게 반복된다. 방향이 맞아도 그 속도와 가격에 과도한 신념이 개입되면 경제의 균형은 번번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한국 증시가 던지는 신호도 비슷하다. 증시 지수가 급등하고 있지만, 그 상승이 경제 전반으로 고르게 확산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부 대기업과 반도체 같은 특정산업이 지수를 끌어올리는 사이, 다수 국민들이 겪는 체감 지수는 여전히 냉랭하다. 이 괴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회적 불안을 더 키운다. 증시가 달아오를수록 “왜 나는, 내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가”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불안감과 열패감도 커져간다.


◆ 기대와 불안 겹친 시장...확신 경계하고 해석에 힘써야


여기에 환율이라는 또 다른 신호가 겹친다. 증시는 기대에 민감하지만, 환율은 불안에 민감하다. 환율이 흔들린다는 것은 글로벌 자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경계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작금의 증시 급등이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기대와 불안 위에서 전개된다는 방증이다. 그린스펀이 말했듯, 이런 시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이제 안전하다!”라는 안심의 서사다.


[소성민 칼럼] 불확실성의 시대, 증시 급등을 읽는 법코스피는 5000을 향해 치솟지만, 원·달러 환율 역시 오르며 1500선을 위협한다.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모순적인 현상이다. [이미지=더밸류뉴스]

국제기구와 국내 기관들의 진단도 별로 다르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를 두고 “기초 체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크다”고 표현하며, 단기 지표에 안주하기보다 구조적 전환에 집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한국은행 역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성장잠재력 약화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통화정책만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위기’ 대신 ‘전환’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며 그 중요성을 역설한다. 지금은 무너지기 직전이라기보다, 까닥 방향을 잘못 잡으면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증시 급등은 이런 경고를 흐릿하게 만든다. 숫자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특히 상승하는 숫자는 더 그렇다. 문제는 이런 안심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때다. 그린스펀이 평생 경계했던 자세도 바로 이런 안심이었다. 그는 구체성을 요하는 정책 결정에서조차 명확한 문장을 피했다. 하지만 그의 모호함은 무능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자세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모습도 비슷한 자세다. 증시 급등을 근거로 모든 우려를 지워버리는 낙관도, 위기설만 붙들고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는 비관도 모두 위험하다. 중요한 점은 “괜찮다”거나 “망했다”라는 결론이 아니라, 왜 이런 상반된 신호들이 동시에 나타나는지를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증시는 미래의 한 단면을 반영할 뿐 전체 미래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회고록 〈불확실성의 시대〉가 지금 한국 국민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신감보다 겸손이라는 것이다. 확신을 경계하고, 단순한 서사를 의심하며, 언제든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전제로 사고하는 태도. 이는 투자 전략이기 이전에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태도다.


증시는 늘 한 발 앞서 달린다. 그러나 경제의 체력과 개인의 삶이 반드시 그 속도를 따라잡는 건 아니다. 이 간극을 무시한 채 상승하는 숫자에만 기대는 안일한 낙관은 자칫 마약처럼 위험할 수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치솟는 숫자 앞에서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상승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흥분이 아니다. 혼돈의 시대를 끝까지 해석해 내려는 소신이다.


smso21@thevaluenews.co.kr

[저작권 ⓒ 더밸류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밸류뉴스' 구독하기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6-01-19 08:43:2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더밸류뉴스TV
그 기업 궁금해? 우리가 털었어
산업더보기
더밸류뉴스 구독하기
리그테이블더보기
버핏연구소 텔레그램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