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에서는 연일 중동 지역의 불안한 소식이 들려온다. 미·이스라엘 연합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분쟁이 확산하며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로인해 이란에서 약 6800km 떨어진 우리나라 주유소 가격판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중동 정세의 불안으로 인해 상당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중동 전쟁으로 휘발유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우리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4일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평균 1977원으로 1주일 전인 3월 28일(1901.3원)에 비해 75.7원 올라 3.98% 급등했다.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한 주유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보통 유가는 수개월에 걸쳐 천천히 변한다. 따라서 지금의 상승세는 마치 가속 페달을 밟은 자동차와도 같다. 단 일주일 만에 앞자리가 바뀔 듯 요동치는 가격표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위험 신호와 같다.
우리나라는 사용하는 석유의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한다. 중동에 바람이 불면 우리 경제가 휘청이는 이유다. 중동에서 전쟁의 기운이 감돌면 기름 값이 치솟고, 이는 단순히 차에 기름을 넣는 비용뿐만 아니라 물건값, 전기료, 버스비까지 도미노처럼 끌어올려 우리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나친 공포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에너지 금고'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 9개 비축기지에 약 9600만 배럴이 넘는 석유를 모아두고 있다. 이는 기름이 한 방울도 수입되지 않아도 정부 비축분만으로 90일가량을 버틸 수 있는 양이다. SK, GS 등 민간 비축유까지 합치면 약 200일 가량을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늘어난다. 즉, 중동에서 더 큰 전쟁이 나서 석유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우리나라는 약 반년 이상은 평소처럼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는 IEA(국제에너지기구)에서 권장하는 기준인 '90일'을 넘는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권고 기준인 90일을 두 배 이상 상회하는 약 200일분의 비축유를 확보하여 에너지 안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비축유는 단순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실제 위기가 닥쳐 기름값이 너무 가파르게 오를 때 정부가 비축유를 시장에 풀어서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치솟는 것을 막는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 "우리에게는 반년치 기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과 기업들이 공황 상태(패닉)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심리적 방어선'이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석유 저장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약 200일 동안 나라 전체가 쓸 수 있는 기름을 이미 확보해 두었으니 너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비축유는 단순히 창고에 쌓아두기만 하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큰 위기가 올 때마다 비축유를 시장에 내놓아 기름값의 폭주를 막는 '소방수' 역할을 해왔다.
◆ 걸프전때 처음으로 비축유 방출...“동요말라” 메시지 던져
지난 1990년 걸프 전쟁때 우리나라는 비축유를 처음으로 방출했다. 당시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기름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정부는 약 494만 배럴의 비축유를 시장에 풀었다. "나라에 비상금이 있으니 걱정 마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첫 번째 사례였다.
두 번째로 비축유를 방출한 사건은 리비아 내전 때다. 2011년 아프리카의 주요 산유국인 리비아에서 내전이 발생해 석유 생산이 중단됐다. 이때 전 세계적으로 기름값이 들썩이자, IEA 회원국들이 함께 비축유를 풀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해 약 347만 배럴을 방출하여 국내 물가 상승을 막는 데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불안해지자 전 세계 유가가 천정부지로 솟았다. 우리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약 1165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방출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중동의 긴장 상태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지난달 IEA와 협력하여 2246만 배럴이라는 역대 가장 많은 양의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중동의 불안으로 기름 공급이 끊길지 모른다는 공포를 잠재우고, 치솟는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다.
중동 전쟁의 확전 움직임으로 에너지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 기업, 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 “비축유가 모든걸 해결 못해”... 국민・기업・정부 지혜 모아야
하지만 비축유가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중동 사태가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정부, 기업, 국민이 '삼위일체'가 되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는 든든한 '방패'이자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풍랑 속에서 배의 중심을 잡는 선장처럼, 비축유를 적절히 풀어 시장을 안정시키고 석유 수입 통로를 다변화해야 한다. 특히 기름값 상승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트럭 운전사와 영세 상인들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거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서민 경제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기업은 '혁신'과 '상생'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도 물건을 잘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체질을 바꾸고, 전기차나 수소 에너지 같은 미래 에너지 연구에 속도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원가가 올랐다고 해서 제품 가격을 무리하게 올리기보다, 고통을 분담하며 소비자들과 함께 가는 상생의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은 '냉철한 판단'과 '슬기로운 절약'으로 맞서야 한다. 기름값이 오른다는 소식에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불안감보다는,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중요하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에너지 다이어트'는 나 개인을 넘어 국가 전체의 에너지를 지키는 큰 힘이 된다.
위기는 언제나 찾아오지만, 그 위기를 어떻게 지나보내느냐가 그 나라의 실력을 결정한다. 과거 오일쇼크 때도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히려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저력이 있다. 지금 우리 앞을 가로막은 높은 파도 역시 정부의 치밀한 전략, 기업의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국민의 성숙한 협조가 하나로 뭉친다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방관 대신 "나부터라도"라는 책임감으로 마음을 모으자.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등불을 밝힐 때, 어두운 안개 속 경제 위기는 희망의 햇살에 물러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