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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

- OB맥주 등 소비재 매각하고 중공업그룹 변신... 수소터빈 등 신사업 진출

- 경영 위기 맞았으나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등으로 재기 기반 닦아

  • 기사등록 2024-04-15 23: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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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분석하는 '대기업집단 탐구'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재계순위'로도 불리는 공정위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심층 분석해 한국 경제와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밸류뉴스=박지수 황기수 기자]

부라더미싱은 1970년대 한국 여성들에게 혼수 필수품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그렇지만 이 제품 생산 업체인 일본 부라더공업의 주력 사업은 이제 미싱(재봉틀)이 아니다. 


1980년대 들어 생활수준 향상과 맞벌이 가구 증가로 대다수 여성들이 옷수선을 하지 않으면서 미싱은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부라더공업은 주력 생산품을 타자기(typewriter)로 바꿔 기사회생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다. 타자기도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부라더공업은 또 다시 변신했다. 이런 식으로 그간의 부라더공업의 주력 생산품 변천사를 살펴보면 미싱 → 타자기 → 팩스기기 → 프린터기(복사기) → 디지털복합기로 숨가쁘게 이어진다. 


결국 부라더공업은 살아 남았다. 경쟁사들은 전멸했지만 부라더공업이 살아남은 비결은 '업(業)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대응했다'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부라더공업은 주력 생산품을 숱하게 바꾸었지만 이 회사의 업의 본질인 '물체에 충격을 정교하게 가하는 기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미싱·타자기·팩스기기·프린터기·디지털복합기는 얼핏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한결같이 '무언가를 두드린다'). 업의 본질을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이처럼 기업 운명을 결정한다.


[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부라더공업이 생산하는 부라더미싱. [사진=부라더공업]

미싱 이야기를 다소 길게 거론한 이유는 한국 재계의 키플레이어 두산그룹(회장 박정원)이 '사업 DNA'를 바꾸는 대변신을 하며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OB맥주(오비맥주)로 대표되는 소비재(B2C) 비즈니스를 하다 플랜트, 굴착기 등의 중공업(B2B)으로 본업을 바꾸었다. 수년전부터는 주력 사업을 수소로 대표되는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업의 본질' 자체를 바꾼 것이다. 한국 재계에서 케이스를 찾기 어려운 두산그룹의 모험은 성공할 것인가. 

 

◆대기업집단 17위, 전년비 한 단계↓... 건설중장비 B2B 사업 영위


두산그룹은 지난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 17위를 기록했다. 전년비 한단계 하락했다. 그룹 전체 매출액 9조2740억원, 당기순손실 8670억원으로 전년비 매출액은 46.00%증가했지만 순손익은 적자 전환했다. 


지주사는 ㈜두산이이며 계열사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두산밥캣, 두산테스나, 두산퓨얼셀, 두산로보틱스, 오리콤(이상 상장사), 한컴, 두산밥캣코리아(이상 비상장사) 등 21개로 전년과 동일했다. 


[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두산그룹의 지배구조와 현황. 2023년 12월 기준. 단위 %. [지료=공정거래위원회]

이 가운데 주력 계열사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와 두산밥캣이다. 지난해 두산그룹 계열사 매출액을 살펴보면 1위 두산에너빌리티(17조 5899억원)와 2위 두산밥캣(9조7589억원)이 절대액을 차지하고 있고 이어 두산테스나(3387억원), 두산퓨얼셀(2609억원), 오리콤(2186억원), 두산로보틱스(530억원) 순이다(이하 K-IFRS 연결). 


[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두산그룹의 주요 계열사 매출액.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두산에너빌리티는 담수화 플랜트, 화력 발전소, 원전 설비를 건설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다. 최근 수소 플랜트, 풍력 발전 등의 친환경 에너지 설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산밥캣은 건설·산업 현장에 쓰이는 굴착기, 트랙터 등을 생산한다. 전형적인 B2B 제조기업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OB맥주' 생산하는 소비재 기업군 → 'B2B' 기업집단으로 '사업DNA' 바꿔


그런데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두산의 주력 사업은 현재의 B2B가 아니라 B2C였다. 


당시만 해도 두산그룹은 시장점유율 1위 OB맥주(오비맥주)가 주력 생산품이었고 상표 이름을 딴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산그룹은 창업주 매헌(梅軒) 박승직(1864~1950)이 1896년 32세에 서울 종로에 포목점 ‘박승직 상점’을 열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매헌은 사업 수완을 발휘해 '종로 거상'으로 발돋움했고 장남 박두병(1910~1973)이 다시 한번 사세를 확장시켰다. 1990년대가 되자 두산그룹은 주력 계열사 OB맥주를 필두로 병뚜껑을 만드는 삼화왕관, 코카콜라를 유통하는 두산음료, 랄프 로렌(폴로 셔츠)을 유통하는 두산상사를 거느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런데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터지며 두산그룹은 위기에 봉착했다. 경북 구미 두산전자(현 두산전자BG)에서 페놀 약 31만톤이 들어있는 저장 탱크에서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된 것이다. 페놀은 인체에 들어오면 신경계와 순환계를 모두 손상시킬수 있는 독성물질이다. 두산그룹은 여론 뭇매를 맞았고 매출액이 곤두박질쳤다. 두산 오너일가는 가족회의 끝에 OB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앞서 언급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2000. 12),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3), 대우종합기계(현 HD현대인프라코어. 2005), 두산밥캣(2007. 11) 등을 인수해 지금의 B2B 기업군으로 변신했다. 한국 재계에서 업의 본질을 이처럼 통째로 갈아 치운 케이스는 전무후무하다.


[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2023 공시대상기업집단.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사업 전환 20여년 '절반의 성공'... 수소 위주 친환경 사업 진행


그로부터 20년 가량이 지났다. 사업DNA를 바꾼 두산그룹의 지난 20년을 정리한다면 '절반의 성공' 혹은 '값비싼 수업료 지불 기간'으로 요약된다. 두산그룹은 '반짝 성공' 이후 길고도 어두운 '고난의 행군'을 지나고 있다. 그 끝이 언제쯤일지도 불확실하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18년 4분기에 순손실 5000억원의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을 기점으로 두산그룹은 대규모 구조조정(2020), 두산타워 매각(2020. 9), 두산인프라코어 매각(2020. 12), 두산건설 매각(2021. 11)을 진행했다.


[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최근 10년 ㈜두산의 실적과 두산그룹 연혁.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편으로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 상장(2023. 10), 두산에너빌리티 대규모 유상증자(1조1500억원)에 성공해 재기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은 2022년 2월 종료했다. 이에 따라 자율경영이 가능해졌다. 당초 예정보다 18개월 앞당겨 23개월만에 종료한 것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특별약정 체결 당시 3939억원에 불과하던 두산밥캣의 영업이익이 2년 뒤인 지난 2022년 1조716억원으로 172.05% 점프한 덕분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해상풍력,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SMR(소형모듈원자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에너지의 필요성이 다시 떠올랐고, 태양광 및 풍력 등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신재생에너지의 대안으로 원자력 선호도가 높아진 점이 주효했다. 또, 두산퓨얼셀은 수소터빈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은 수소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두산그룹은 기업이 사업DNA를 바꿀 경우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하는지를 보여준다"며 "20년의 시행착오에서 얻은 노하우를 얼마나 내재화하느냐에 따라 두산그룹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원 회장, 2027년까지 최장수 회장 확정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의 지분을 살펴보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7.60%),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6.50%), 박진원 두산밥캣 부회장(3.64%),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3.48%),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3.44%), 박석원 두산디지털이노베이션 사장(2.98%), 박태원(2.70%), 박혜원(2.22%) 등으로 분산돼 있다. 그룹의 주요 현안이 가족회의를 통해 이뤄지다 보니 순발력 있는 의사결정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기업집단 탐구] 58.두산그룹, B2C→B2B로  \ 사업 DNA\  바꾼 국내 최장수(128년) 기업집단두산그룹 오너 가계도. [이미지=더밸류뉴스] 박정원 회장은 박승직(증조부)→ 박두병(조부)→박용곤(부친)으로 이어지는 두산그룹 장손이다. 2016년 회장에 취임해 올해 8년째이며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2027년까지 회장직이 확정됐다. 임기를 마치면 역대 최장수(11년) 회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두산그룹은 그간 ‘형제 경영’ 혹은 ‘사촌 경영’으로 이어져왔다.


parkjisu09@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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