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당초 2022년 시행 예정이었던 가상자산 과세는 이미 세 차례 연기됐으며, 이번 방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시행 시점은 2029년으로 늦춰진다. 정부와 가상자산업계는 과세 인프라와 투자자 보호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시민단체는 반복된 유예가 조세 형평성을 훼손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유예 추진을 둘러싸고 국내외 거래에 대한 과세 형평성과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해외 거래정보 확보와 과세기준 정비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참여연대 등에서는 이미 충분한 준비기간이 주어졌음에도 과세를 다시 미루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책임을 회피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가상자산 과세 네 번째 유예 추진…시행 시점 2029년으로
정부가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027년에서 2029년으로 2년 추가 유예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해외 거래정보 확보와 관련 법·제도 정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면 가상자산 과세 시행은 당초 계획보다 7년 늦어지게 된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자산 소득과세 유예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준 금융위원회 디지털금융정책관, 이형일 부총리, 조만희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사진=재정경제부]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국회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를 통한 미국과의 거래정보 교환이 2029년부터 이뤄지는 점과 디지털자산 관련 법·제도 변화 등을 주요 배경으로 제시했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최초 시행 시점은 2022년이었으나 이후 2023년과 2025년, 2027년으로 세 차례 연기됐다. 현행 제도는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발생한 연간 소득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에 소득세 20%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하면 세율은 22%다.
정부는 추가 유예기간에 과세제도를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워킹그룹을 구성해 내년 상반기까지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2027년 정기국회에 관련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2028년 상반기에는 세부 과세기준을 발표하고, 투자 손실을 향후 3년간 이익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손실 이월공제 도입도 추진한다.
◆ 가상자산업계 "제도 정비가 먼저"…해외거래 형평성·시장 안정 기대
디지털엑스·코인원·업비트·빗썸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CI.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가상자산업계에서는 과세 유예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장의 제도적 기반이 아직 정비되는 단계인 만큼 과세를 서둘러 시행하기보다 거래정보 확보와 투자자 보호체계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분한 준비기간을 확보하면 향후 과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앞서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개최한 가상자산사업자 간담회에서도 업계는 과세 유예를 요청했다. 당시 업계는 국내 시장이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반면 해외에서는 법인 참여와 파생상품 거래가 이뤄지는 등 시장 구조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거래 형태에 대한 과세기준을 추가로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해외 거래정보 확보 역시 유예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국내 거래소 이용자의 거래내역은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쉽지만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과세정보 교환이 본격화되기 전 과세를 시행하면 국내 거래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했다. 추가 준비기간을 통해 국내외 거래에 대한 과세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손실 이월공제 도입도 투자자에게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3년간의 손실 이월공제가 도입되면 과거에 발생한 손실을 이후 과세 대상 이익에서 차감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과 과세기준까지 정비되면 투자자의 신고 부담과 제도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참여연대 "세 차례 미루고도 준비 부족"…조세 형평성 훼손 비판
참여연대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반대하며 조세 형평성 훼손을 비판하고 있다. [이미지=AI 생성]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의 네 번째 과세 유예 추진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 차례의 유예로 이미 충분한 준비기간이 주어졌는데도 과세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다시 시행을 미루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특히 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를 반복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납세자 간 형평성을 훼손하고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공백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지난 5일 '가상자산 과세 네 번째 유예 추진, 정부여당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정부가 해외 거래정보 확보와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과세를 미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과세는 투자 원금이 아니라 실제 발생한 소득을 대상으로 하며 연간 250만원의 기본공제도 마련돼 있는 만큼, 과세 유예의 직접적인 혜택은 과세 대상 이익을 실현한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유예 사유로 내세운 해외 과세정보 확보 문제에도 반론을 제기했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은 국제 자동정보교환체계가 마련되기 이전부터 가상자산 소득에 과세해왔으며, 해외 거래자료 확보의 어려움은 신고·검증 체계를 강화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 제정이나 손실 이월공제 역시 과세 시행의 선결조건이 아니라 시행과 병행해 보완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반복된 과세 유예가 금융소득 과세 전반의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금융과세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기존 유예기간에 무엇을 준비했고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세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시행을 계속 미룬다면 향후에도 유예가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