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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정호 기자]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은  포르투갈 출신의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이 포루투갈 엔리크 왕자의 도움을 받아 인류 최초로 지구를 일주하는 항해를 마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믿기 힘들 정도로 원시적이었던 당대의 항해술, 세계관을 극복하고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려한 문장으로 서술돼 있다. 


다음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문장이다.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내금 옮김. 자작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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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은 진보를 가져다준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자본주의의 개척 정신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다


- 포르투갈은 전 국토가 스페인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이웃 나라와는 형제애를 방불케하는 우호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작고 가난한 포르투갈이 무역이나 식민지 개척을 통해  뻗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다 뿐이었다.

문제는 포르투갈의 지리적 위치는 유럽의 해양 국가 가운데 가장 불리했다는 사실이다.
서쪽에서 포르투갈의 해안으로 밀려오는 대서양은 중세의 절대적 권위자인 포톨레메우스의 지리학에 의하면 항해가 불가능한 망망대해였다. 프톨레메우스의 지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가는 남쪽 항로 또한 항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람도 살 수 없고, 곡식도 자라지 않는 이 땅 덩어리는 남극까지 뻗어있고,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붙어 있어 전혀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막의 땅을 순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 당대의 항해 지식이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원시적이었다.


- 회귀선 근방의 바다는 태양열 때문에 펄펄 끓고 있어 선판과 돛대는 불붙고, 분화구 같이 황폐하기만 한 이 '사탄의 나라'에 발을 디디려는 기독교인은 너나 할 것없이 검둥이가 되버린다는 생각이  당대의 사람들의 머리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대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대의 우주론의 권위자인 프톨레메우스와 그의 후계자들, 그리고 그의 학설에 따라 지도를 만들어오던 모든 사람들과 대항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엔리크는 목적이 위대한 만큼 어려움도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엔리크는 세계 각지에서 책과 자료를 전부 실어오게 하고, 아라비아인, 유대인 학자를 불러 모아 좀더 나은 도구와 장치를 제작하도록 했다. 행해에서 돌아온 선주나 선장이라면 누구할 것 없이 불러 자문을 구했고,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비밀 서고에 보관했다. 동시에 일련의 탐험대를 준비시키기도 했다. 조선 기술이 꾸준히 발전해 18명 정원의 지붕이 없는 작은 어선(바르카)이 이제 '나오'라고 불리는 100톤 무게의 쾌속선으로 개발됐다.


- 도대체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어느 지점에서 탄생의 씨앗을 뿌리 내렸을까? 해답은 유럽의 흑사병에 있다. 

당대의 유럽의 처참한했던 상황 설명. 식량 생산, 보건 의료 수준 형편없이 떨어져. 지구상에서 가장 먹고 살기 힘든 지역의 하나. 

그런데 흑사병이 번졌다. 그러자 사람이 무더기로 죽어나서면서  중세 농노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농노가 야반도주했다. 야반도주한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농노는 영주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신세였다. 그러면 적어도 생계는 유지됐다. 그런데 흑사병이 번지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힘들어짐. 그래서 야반도주한  것이다.
이들이 이탈리아에 정착해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젖혔다.


- 인류 역사상 흑사병과 기근은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을 나랏님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에 의해 해결하고 이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르네상스가 유일하다
당시 중세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지역적으로 분할된 영주들이 통치. 상인들이 상대적으로 협상을 하기가 쉬웠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를 열어 젖혔다.  


- 무역의 시대가 열렸다. 거래가 서로를 이롭게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개인의 이윤추구(이를 탐욕이라고도 부른다). 경쟁의 원리가 정착됐다.

- 이런 생각에 기반해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

- 제임스 와트는 실제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이 기술에 기반한 아크라이트는 큰 돈을 벌었다.  

- 한가지만 더. 왜, 자본주의 탄생지는 영국이었을까? 영국은 국가의 부의 획득 수단으로 상업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 이것이 동양의 전제 군주와의 차이점이다. 동양의 전제군주는 적어도 유럽 중세보다는 훨씬 부유했기 때문에 현제체를 혁신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못이나 잿밥, 납 하나, 기름 한방울, 종이 한장도 그가 가고자 하는 미지의 땅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마젤란은 잘 알고 있었다. 부속품 하나를 잃어버림으로써 배를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계산을 한번 잘못함으로써 전체 탐험이 좌절될 수 있는 것이다. 마젤한은 철저히 준비했다. 문제는 그가 완전히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것이다.


- 마젤란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따져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그의 편이 되고, 누가 적이 될 것인지를 점검해보았다.


- 마젤란은 참담했다. 그는 통로를 발견하리라는 희망이 잔인하게 사라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하임의 지도와 이름도 모르는 키잡이의 주장을 너무 쉽게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고 원점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항로를 브라질로 돌리게 하는 순간부터 그는 명령자가아니라 포로가 될 터였다.


- 마젤란이 반란의 주동자에게 내린 은총은 그를 죽이는데 밧줄 대신 칼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반란의 주동자의 시체는 사등분돼 하나씩 장대에 꽂혔다. 런던 타워나 유럽이 여러 처형장에서 진행됐던 풍습이 마젤란 함대에서 재연됐다.


- 이 두 배가 가져온 소식은 진정으로 축복이었다. 후대인들은 이 해협을 마젤한 해협으로 명명했다.


- 섬사람들이 엔리크를 에워쌌다. 갑자기 엔리크는 당황하며 멈추어섰다. 그들의 말을 단어 하나까지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이 그에게 하는 이야기, 묻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 전에 고향에서 납치됐던  엔리크는 그날 이후 처음으로 자기 나라 말을 단편으로나마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자 인류 역사상 존재하는 위대한 순간들 중 하나였다. 지구가 우주를 떠돌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살아있는 한 인간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 마젤란은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햇고, 자신이 업적이 완성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동쪽에서 출발해 12년전에 도착한 바 있던 말아야 언어권이 한 변두리에 도착한 것이다. 태양이 지는 쪽이든 뜨는 쪽이든 관게없이 누구든지 바다를 따라 계속 항해하면 자신이 출발했던 지점에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수천년전부터 철학자들이 추측해왔고 꿈꾸어왔던 일이 한 인간의 용기에 의해 사실이 된 것이다. 진정으로 지구는 둥글었다. 한 인간이 지구를 둥글게 한바퀴 돌아온 것이다.


- 마젤란과 함께 출발햇던 일행이 무사히 귀향했다는 소식은 전 유럽으로 열화같이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놀라기만 하던 사람들은 경탄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항해한 이래로 그 어느 사건도 이것처럼 당대를 열광시킨 사건이 없었다. 이제 불확실함은 끝났다. 학문의 철천지 원수인 의심은 지리학에서는 정복됐다. 배 한척이 세비야 항구에서 출발해 다시 세비야 항으로 돌아옴으로써 지구는 둥글게 자전하는 공과 같고, 모든 바다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반박할 수 없게 증명된 것이다.  


pjh@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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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7-27 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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