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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신현숙 기자]

이 책은 역사적 사실과 실전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각색실화이다. 역자는 성숙한 시각과 자세를 가지고 건설적인 토론을 펼치기를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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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5년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내전과 정국 혼란으로 영국의 국고는 바닥이 난 상태였다. 윌리엄 1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가장 심각했다. 이때 윌리엄 패터슨을 비롯한 은행가들은 네덜란드에서 배워온 개념을 소개했다. 즉 민영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해 국왕에게 융자를 하는 방안이었다. 이 민영은행이 정부에 제공한 120만 파운드의 현금은 정부의 영구적 채무가 됐다. 금리는 연 8%에 4,000만 파운드의 관리비를 책정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매년 10만 파운드만 내고 그 자리에서 120만 파운드의 현금을 쓸 수 있었으며, 원금을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됐다. 정부는 더 많은 특혜를 제공헤서 잉글랜드 은행이 국가가 사용한 은행권을 독자적으로 발행할 수 있게 했다. 1694년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 은행에 왕실 특별 허가증을 내주었고, 최초의 현대적 은행은 이렇게 탄생했다. 잉글랜드 은행의 핵심은 국왕과 왕실 가족의 개인 채부를 국가의 영구적 채무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전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잉글랜드 은행이 채무에 기반을 둔 국가 화폐를 발행했다.


- 최초로 미국 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은 가난한 빈민이었다. 그들에게는 돈이 없었으므로 시중에도 화폐가 극히 부족했다. 북미의 이민자들이 고된 노동으로 창출한 대량의 상품과 서비스는 통화의 부족으로 충분하고 효과적인 교환이 어려워 경제 발전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사람들은 동물의 모피, 조개 껍데기, 연초, 쌀, 보리, 옥수수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다.


-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중앙은행 제도를 창안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중앙은행은 개인이 소유하며, 본부는 필라델피아에 두고, 각 지역에 지점을 설립한다. 정부의 화폐와 세금의 징수는 반드시 이 은행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은행은 국가의 화폐를 발행해 경제 발전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며 미국 정부에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다. 이 은행의 총자본은 100만달러이며, 개인이 80%의 주식을 소유하고 정부가 20%를 소유한다. 2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중 20명은 주주 중에서 추천하며, 5명은 정부가 임명한다.


-중앙은행이 설립된 1791년부터 1796년까지 불과 5년동안 미국 정부의 채무는 무려 820만달러로 증가했다. 제퍼슨은 미국의 3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재선돼 연임하는 동안 중앙은행을 폐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다. 1811년 3월 3일자로 중앙은행은 문을 닫았다.
1815년 미국의 4대 대통령이 된 제임스 메디슨은 그해 12월 5일 두번째 중앙은행 설립은 승인했고 1816년 두번째 중앙은행이 탄생했다. 이 은행은 1836년 폐쇄됐다.


- 1863년 링컨 대통령은 국가은행법에 서명했다. 정부가 국립은행에 은행권을 발행할 권한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들 은행이 미국 정부 채권을 은행권 발행의 준비금으로 삼아 미국의 화폐 발행과 정부 채무를 연동시킴으로써 미국 정부는 영구적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없다.
미국에도 잉글랜드 은행가 같은 방식의 복제가 이뤄진 것이다. 이로 인한 채무 이자의 증가는 미국인들의 목을 짓누르고 있다. 미 연방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급하는 비용은 의료 보험과 국방비 다음으로 많다.


-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는 것과,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링컨은 1865년 연임에 성공한 후 이 법안을 폐지하려 했으나 대선에 승리하고 나서 불과 41일만에 암살당한다.


- 연방준비은행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것은 연방준비은행 뉴욕은행이다. 이 은행이 1914년 5월 통화감사원에 제출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록펠러와 쿤롭사의 뉴욕 내셔널시티은행이 3만주로 가장 많은 지분 보유
J.P. 모건의 퍼스트내셔널 은행이 1만 5,000주 보유.
1955년 이들 두 은행의 합병으로 씨티은행이 탄생함으로써 연방준비은행 뉴욕은행의 지분이 전체의 4분의 1에 달했고, 이후 연방준비은행 총재 후보 결정권을 갖게 됐다. 미국 대통령의 임명 절차 청문회는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 연방준비은행이 설립된 1914년 이래 은행가들에 의해 미국 금융과 상공업계 및 정치적 운명이 조종됐다는 사실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 연방준비은행이 미국 정부 기관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연방준비은행은 정부기관이 아니라 민간 신용 대출 독점기관이다. 연방준비은행은 자신과 외국 사기꾼의 이익을 위해 미국 국민을 착취하고 있다.


- 로스차일드가는 1873년을 전후해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 은을 화폐에서 배제하라고 압력을 넣어 단일 금본위제를 시행했다. 미국도 이를 따랐다.


- 은을 화폐에서 퇴출하지 않으면 염가 화폐와 적자 재정의 과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국제 금융 재벌은 이 점을 우려했다.


- 1963년 6월 4일 케네디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령 11110호는 연방준비은행권에 도전하는 무기였다. 국제금융재벌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국제 금융 재벌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케네디가 1964년 대선에서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케네디를 제거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 외환위기가 닥치자 한국의 기업들은 국제회계원칙을 따라야 했다.


- 국제금융재벌은 한국의 IMF 금융위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들은 한국의 강한 민족 정신을 얕잡아봤다. 한국에서는 대규모 기업과 은행의 파산이 벌어지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삼키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IMF는 한국을 자신들이 성공적으로 구조한 사례로 사방에 선전하고 있다.


- 미국 정부는 화폐 발행권이 없고, 채무 발행권만 있다.


- 미국 국채는 미국 정부가 미래에 받아들일 세금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믿을만한 자산으로 취급된다. 연방준비은행은 이 자산을 획득한 후 이를 이용해 부채를 만드는데, 이것이 달러(연방준비은행 수표)이다.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한 수표는 사실상 한푼의 돈도 보장되지 않는 공수표인 셈이다.


shs@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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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7-24 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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