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웅, 홍순화 기자
이윤엽 '도둑 고양이 23'. [자료=박용옥 문화예술 연구소]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감도는 여름 오후, 장작난로가 조용히 타오르는 겨울 밤. 한 마리 고양이가 고요히 집으로 들어선다. 이름도 모를 이 고양이는 안성 시골집의 진짜 주인처럼 산과 들을 누비고, 배가 고프면, 혹은 그저 쉬고 싶을 때에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온다. 마치 그가 지닌 것은 땅도, 사람도 아닌 시간과 자유인 듯이.
이윤엽 작가의 판화 속 ‘도둑 고양이’는 도둑질은커녕, 가장 정직하게 살아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무언가를 소유하려 애쓰지 않고, 무언가에 소속되지도 않은 채, 그저 계절을 따라 느긋하게 살아간다. 집으로 스며드는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그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따뜻하다. 그 시선의 주인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3세대 민중미술 판화가로 불리는 이윤엽은 삶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장면들을 목판에 새긴다. 그의 판화는 거칠고 투박한 나무 결 속에 유쾌한 상상력과 날 선 현실 인식이 함께 깃들어 있다. 그는 어느 날 손님이 “작가가 되어보라”고 권한 말을 계기로, 진짜로 목판을 파기 시작했다. 삶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우연한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는 법이다.
‘도둑 고양이 23’은 단순히 동물의 초상을 넘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자유와 평온의 상징이 된다. 바쁘고 각진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잊는다. 고요히 머물고 싶은 장소,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간, 마음 놓고 쉬어도 된다는 허락. 이윤엽의 판화는 그 잊힌 감각들을 되살린다.
어쩌면 이 고양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작은 바람이다. 속박 없는 하루, 걱정 없는 낮잠,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하나. 그의 판화 앞에 서면, 우리도 그 고양이처럼 살짝 등을 구부리고 햇살 속에 누워보고 싶어진다.
삶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우연한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는 법이다. 자유롭게 오가는 이 고양이의 모습은, 불확실성과 기회가 공존하는 자본 시장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 '유연함과 자기 주도성'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