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민 금융증권부장 부국장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은행의 대출이자율을 15% 이하로 제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발언을 내놓았다. 겉으로는 고금리 대출로 고통받는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지만, 그 말이 불러올 파장과 아이러니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명분은 그럴듯해도 최고이자율을 무턱대고 낮추면 제도권 금융의 문턱이 더 높아지고, 결국 저신용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의 덫으로 밀려날 위험이 더 커진다. 지난 20년간 이어진 한국의 최고이자율 인하 흐름과 불법사금융 피해 증가를 함께 보면 이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고이자율을 낮출수록 저신용 서민들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자료=더밸류뉴스)
20년간 이어진 최고이자율 인하
한국의 최고이자율은 불과 20년 남짓한 기간에 70%대에서 2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2000년대 초반 대부업과 여신업의 최고금리는 60~70%에 달했지만, 규제 강화가 이어지며 2007년 49%, 2010년대 초반 39%로 낮아졌고, 2018년 2월에는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을 일원화해 연 24%로 내렸다. 2021년 7월에는 다시 연 20%까지 떨어졌다. 언뜻 보면 서민 보호가 차근차근 진전된 것 같지만, 금리가 내려갈수록 위험 차주에게 돈을 빌려줄 유인이 금융회사에서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위험을 감수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줄면, 금융사는 당연히 저신용자를 외면한다.
지난 20년간 한국 제도권 금융의 최고이자율 인하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불법사금융에 내몰리는 저신용 서민
그 결과 제도권에서 밀려난 서민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린다. 실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2019년 5천여 건에서 2020년 8천여 건, 2021년 9천여 건대로 늘었고 2022년에는 1만 건을 넘어섰다. 2023년에는 1만3천 건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저신용자는 청년·자영업자·프리랜서를 가리지 않는다. 불법사금융은 단순히 높은 금리에 그치지 않는다. 폭언과 폭행을 동반한 추심, 개인정보 유출 등 2차 피해가 뒤따른다. 정부는 금리를 내릴 때마다 대환상품 공급, 서민금융 체계 개편, 불법사금융 단속을 약속했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보완책은 늘 부족했다. 대출 문턱이 높아질수록 서민이 더 깊은 위험으로 내몰리는 구조다.
지난 2019년 이후 증가해온 불법사금융 신고 건수. (자료=더밸류뉴스)
선진국이 무리한 상한을 피하는 이유
선진국의 해법은 다르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일률적 최고이자율이 없다. 각 주가 ‘우스리법(Usury Law, 각 주의 법정 최고이자율 규제)’으로 상한을 정하되 대부분 시장금리와 금융산업의 자율을 존중해 상한을 높게 두거나 아예 두지 않는다. 영국은 ‘지나치게 높은 이자 억제’라는 원칙만 두고 실제 금리 상한은 시장 경쟁과 감독으로 대신한다. 독일·프랑스 등도 법정 최고금리를 두되 통상 시중금리의 2~3배 수준으로 설정해 고위험 차주도 제도권에서 대출받을 여지를 남긴다. 이들은 금리를 억지로 누르기보다 신용평가를 정교화하고 저신용층을 위한 공적 보증·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서 금융 포용을 실현한다. 정치적 인기 영합식 금리 인하를 자제하는 이유다.
명분만 좇는 정책은 독이 된다
그동안 한국에서 정치인들의 최고이자율 인하 발언은 홍준표 김기식 문재인 김남국 서영교 윤상현 등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정치인에게 최고이자율 발언은 ‘밑져야 본전’인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공짜 선심을 쓰고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고이자율 인하로 저신용 서민계층이 얼마나 더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렸는지는 정확히, 신속하게 집계하기가 어렵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최고이자율을 15% 이하로 묶으면 금융기관은 저신용자 대출을 사실상 포기할 것이고, 그 공백을 불법사금융이 메운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사법·행정 비용, 불법추심의 인권침해, 경제활동 단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은 급증한다. 서민을 위한다면 금리 상한 인하 하나로는 부족하다. 단계적 인하와 함께 중·저신용자를 위한 제도권 금융을 확대하고 불법사금융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또 신용평가 체계를 개선해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종합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대안 금융의 문을 넓히지 않으면 명분 좋은 정책이 오히려 저신용 서민을 옥죄는 역설만 남는다.
제도권 금융 접근성을 더 확대해야
결국 최고이자율 인하는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서민이 제도권 금융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받고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치권이 명분만 좇아 금리를 급격히 낮춘다면 그 피해는 가장 약한 서민에게 돌아간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 정책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 실제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The government should be judged by its results, not its intentions)”고 말했다. 서민 보호라는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결과가 서민을 더 곤궁하게 만든다면 그런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 지금은 금리 상한 인하보다 금융 접근성을 넓히는 실질적 정책을 설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