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다시 금리를 올렸다. 지난 8월 27일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7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인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금리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던 한국 경제가 다시 ‘3% 금리 시대’로 돌아왔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대폭 높였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내수도 회복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 2.8%, 근원물가는 2.6%다. 경제는 예상보다 뜨겁고 물가 압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으로서는 미리 브레이크를 밟을 이유가 충분하다.
그런데 정부 쪽을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AI와 반도체 등 미래산업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지역경제와 청년, 취약계층 지원도 확대하려 한다. 증시 활성화를 위해 자본시장으로 돈이 들어갈 길도 넓히고 있다.
한쪽에서는 돈의 가격을 올려 수요를 억제하고, 다른 쪽에서는 재정과 정책을 동원해 수요와 투자를 북돋운다.
국민 입장에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 경제는 액셀을 밟아야 하는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가.
정부가 확장재정으로 경기 부양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물가와 금융불안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경제정책의 엇박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 지난 1년의 정책을 보면 더 불안한 이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관리하고 정부는 산업 경쟁력과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곳에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 경기의 일부만 어려운 상황이라면 한쪽에서 금리를 올리고 다른 한쪽에서 선별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정책 조합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지난 1년여 동안 보여준 정책 운영 방식이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목표를 먼저 정한 뒤 재정과 세제, 금융과 행정력을 적극 동원해 시장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성향이 비교적 뚜렷했다. 부동산으로 가는 돈은 대출 규제로 강하게 억제하면서 주식시장으로 가는 돈에는 길을 내줬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며 금융을 조이면서도 소비를 살리기 위해 재정의 역할은 확대했다. 증시를 활성화한다며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운용 범위를 넓히는 정책도 나왔다.
각각 떼어놓고 보면 모두 명분이 있다. 부동산 투기를 막아야 하고, 가계부채도 줄여야 한다. 침체된 내수도 살려야 하고, 한국 증시의 만성적인 저평가도 해소해야 한다. AI와 반도체에 투자하지 않을 수도 없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각각의 명분을 더한다고 좋은 정책이 되는 산수(算數)가 아니다.
대출을 억제하면서 소비를 자극하고, 금리는 올리면서 재정을 확대하고, 부동산으로 가는 자금은 막으면서 증시로 가는 자금은 독려하면 정책끼리 서로의 효과를 지워버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돈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다. 부동산에서 빠져나온 돈이 반드시 국내 증시로 가는 것도 아니고, 지원금을 받은 가계가 반드시 소비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현금으로 머물거나 미국 주식과 해외 자산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지난 1년의 정책에서 우려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시장이 정부가 예상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 정책 방향 자체를 재검토하기보다 규제가 부족하거나 지원이 부족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다. 그러면 대출 규제 뒤에는 추가 대출 규제가 나오고, 경기 부양책 뒤에는 더 큰 재정이 따라붙는다.
이는 실패의 시그널이 나타났는데도 기존 선택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몰입의 확대(Escalation of Commitment)’며, 정책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 헝가리와 영국이 먼저 보여준 엇박자의 대가
부작용 사례로는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2021~2022년 헝가리가 비슷한 정책 충돌을 경험했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압력이 커지자 헝가리 중앙은행은 2021년 6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는 2022년 총선을 앞두고 세금 환급과 연금 지급 등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 동안 정부는 재정으로 액셀을 밟은 셈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헝가리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초 2.7%에서 2022년 12월 24.5%까지 치솟았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가격 폭등이라는 외부 충격이 컸다. 모든 책임을 재정정책에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IMF는 2021년 말부터 2022년 초까지 이어진 느슨한 재정정책과 선거 전 경기부양이 물가 상승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결국 헝가리 중앙은행은 사실상의 정책금리 역할을 하던 하루짜리 예금금리를 18%까지 끌어올렸다. 포린트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금융시장 안정까지 걱정해야 했다. 정부가 풀고 중앙은행이 조이는 동안 긴축 강도만 더 세진 것이다.
헝가리 사례가 한국에 특히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미국과 달리 헝가리 역시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개방경제다. 정책 신뢰가 흔들리면 환율과 외국인 자금, 수입물가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과 경제 규모나 산업구조가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책 엇박자가 환율과 물가를 거쳐 다시 금리 부담으로 돌아오는 경로는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영국은 더 극적인 사례를 남겼다.
2022년 9월 리즈 트러스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이미 심각하고 영란은행(BOE)이 금리를 올리고 있던 상황에서 이른바 ‘미니 예산’을 발표했다. 약 450억파운드 규모의 재원 대책 없는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시장은 정부의 기대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파운드화는 달러당 1.03달러 수준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영국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불과 사흘 동안 1.4%포인트나 뛰었다. 특히 금리 급등으로 영국 연기금의 부채연계투자, 이른바 LDI 전략에서 대규모 담보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연기금들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내다팔면서 국채가격이 더 떨어지고 금리는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더 기묘한 상황도 벌어졌다. 영란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보유 국채를 줄이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불과 며칠 뒤 장기 국채를 긴급 매입해야 했다.
한쪽 손으로 돈을 거두면서 다른 손으로 다시 돈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장이 진정된 것은 정부가 미니 예산의 핵심 정책을 대부분 철회한 뒤였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49일 만에 사임했다.
헝가리와 영국의 사례가 똑같지는 않다. 헝가리는 확장재정과 외부 물가 충격이 겹치면서 중앙은행의 긴축 부담이 커진 사례이고, 영국은 재정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금융시장 위기로 번진 사례다.
그러나 두 나라가 남긴 교훈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힘을 쓰면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정책 효과는 약해지고 시장이 치러야 할 비용만 커질 수 있다.
◆ ‘불쾌한 산수’가 시작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와 경제학자 닐 월리스는 1981년 유명한 논문에서 이를 ‘불쾌한 통화주의적 산수(Unpleasant Monetarist Arithmetic)’라고 표현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계속 확대하면 중앙은행 혼자 아무리 물가를 잡으려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수록 정부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 그런데 정부가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결국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까지 약해질 수 있다.
40여 년 전의 경고지만 작금의 한국 정부가 새겨들을 만하다.
정부가 재정을 확대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AI와 반도체 같은 전략산업 투자는 미룰 수 없다. 저출생과 지역소멸, 취약계층 문제도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
그러나 재정의 필요성과 재정확대의 적절성은 다른 문제다.
한국은행이 경제 과열과 물가를 걱정해 금리를 두 차례 연속 올리는 상황이라면 정부 역시 재정정책의 강도와 대상을 다시 따져야 한다. 돈을 많이 쓰느냐보다 어디에 쓰느냐가 훨씬 중요해진다.
생산성을 높이는 AI·반도체·인프라 투자는 확대하되 단순히 소비를 당겨오는 재정지출은 신중해야 한다. 증시 정책 역시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권, 장기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국은행도 금리 하나로 집값과 가계부채, 물가까지 모두 잡으려 해서는 곤란하다. 금리는 경제 전체를 때리는 둔중한 도구다. 부동산 금융불균형에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정교하게 활용하고, 금리는 물가와 경기라는 본래 목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방향을 맞추는 일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똑같은 정책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책을 쓰더라도 상대방의 정책 효과를 상쇄하지 않도록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반도체 호황과 예상보다 높은 성장이라는 보기 드문 기회를 맞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좋은 숫자에 취해 액셀을 더 밟을 것이 아니라 다음 침체가 왔을 때 사용할 정책 여력을 쌓아야 한다.
경제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모습은 액셀을 밟는 장면도, 브레이크를 밟는 장면도 아니다.
운전자가 서로 다른 계기판을 보면서 한 사람은 액셀을 밟고 다른 사람은 브레이크를 밟는 장면이다.
한국은행은 이미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제 정부가 설명해야 한다. 왜 지금도 액셀을 밟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밟을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