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은 2020년 10월 14일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이후 현대자동차 주가는 76.9% 상승했다(2020년 10월 17일 17만8000원→2025년 12월 5일 31만5,000원). 시장이 정의선 회장이 이뤄낸 실적 개선과 조직 문화 혁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현대자동차 주가 추이.
정의선 회장은 취임 이후 타운홀 미팅, 복장 자율화, 수시 채용 확대 등을 통해 젊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전의 상명하달식, 밀어부치기식 조직 문화를 타파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선 회장이 캐주얼웨어를 입고 타운홀에서 직원들과 포즈를 취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정 회장의 리더십은 '속도'와 '실험'의 두 키워드로 요약된다. 사족 로봇 스타트업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과감하게 인수하고,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않은 UAM(Urban Air Mobility)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고 미국 현지법인 슈퍼널(Supernal)을 설립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재계 '빅4' 리더십 스타일. 단위 원. [자료(매출액, 계열사)=2025 공정거래위원회]◆ 블록딜 추진하다 하한가 맞아...시장 목소리 경청했어야
그런데 현대차그룹이 기업가치를 다시 한번 점프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해결 과제 1순위는 지배구조 개편이며 이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최근 수년간 벌어진 사건과 시행착오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더밸류뉴스 '현대차 지배구조' 시리즈 1, 2, 3회에서 소개한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 무산이 여기에 해당한다. 손자회사에 계열사들이 달려 있는 개편안을 세상에 내놓고 의결권 자문사, 시민단체, 국민연금이 찬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것은 실수였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5년에 벌어졌던 현대글로비스 주식 블록딜 실패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해 1월 12일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13.4%(502만주. 약 1.5조원 규모)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주식시장 사상 세 번째로 큰 블록딜 거래였다. 하지만 단 하룻밤 만에 거래가 무산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고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30만원→25만5000원. 15%↓).
정의선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블록딜 당시 주가 추이.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에 나선 직접적 이유는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에 대해 내부거래 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블록딜 발표 직전 정 부자의 지분율이 43.28%(1627만주)였기에 적어도 13.28% 이상 낮춰야 했다.
◆ 대규모 블록딜 추진하며 외국계 증권사 한 곳에 맡겨
그런데 블록딜 추진 과정이 치밀하지 못해 탈이 났다.
정의선 부자는 블록딜 공시 전일(11일) 종가(30만원) 대비 7.5~12% 할인된 주당 26만4000원~27만7500원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시장(market)은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날(12일) 개장 직후 현대글로비스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현대글로비스의 블록딜 이전(왼쪽), 이후 주주 현황. [자료=현대글로비스 사업보고서]
시장 참여자들이 현대글로비스 블록딜 발표를 '쇼크'로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대글로비스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수혜주로 여겨왔는데, 현대차그룹이 이 종목을 할인까지 해가며 매각에 나섰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 정의선 총수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31.77%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장 참여자들은 정의선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상식적으로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높을수록, 현대모비스 주가는 낮을 수록 정의선 총수에게 유리하다. 그래서 현대글로비스는 시장에서 수혜주로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의선 부자가 시장의 수혜주를 할인율까지 적용해가며 매각에 나서자 현대글로비스 주가를 더이상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받아들였다. 현대차그룹은 시장 참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감안하지 않았던 것이다.
추진 과정도 졸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차그룹이 매각하겠다고 밝힌 현대글로비스 지분 13.4%(502만주. 약 1.5조원)는 이 종목 하루 평균 거래량의 100배에 달했다. 시장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컸고 시장 참여자들은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매입할 경우 향후 장내에서 엑시트(exit)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졌다.
거래 전략도 잘 못 짰다는 평가가 있다. 1조원이 훌쩍 넘는 대규모 블록딜을 추진하면서 국내외 기관 투자자 없이 외국계 증권사(씨티글로벌마켓증권) 한 곳에 맡긴 것이다.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은 국내 주요 연기금 등 잠재적 대형 투자자들을 사전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해외 마케팅에만 집중했다. 결국 해외의 앵커 투자자(핵심 투자자)도 미진한 국내 반응을 이유로 이탈했고 거래는 불발됐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주식 시장에서 1조원이 넘는 물량을 매각할 때는 사전에 핵심 인수자를 대략적으로 정해 놓고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 "자동차 만드는 업(業)의 특성에서 비롯돼... 근본적 혁신 필요"
블록딜 실패는 현대차그룹과 계열사의 주가,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 즉각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매각 불발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1월 13일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가격제한폭(15%)까지 급락하며 하루 만에 1조7000억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 결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로 유력했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 현금 확보 →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도 좌절되며 정 부회장의 승계 자금 확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현대모비스 주가는 오히려 반사 이익 기대감으로 급등하며 두 회사의 주가 차이가 커져 승계 비용이 더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은 3주 뒤인 2015년 2월 6일 2차 블록딜을 성공시켰다. 1차와 동일한 지분을 매각하되 할인율을 더 높이고(종가 대비 10% 이상) 주요 투자자를 사전에 확보하는 등 거래 조건을 개선해 약 1조1700억원 규모의 매각에 성공했다. 이후 정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30%로 낮아져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후에도 시행착오가 반복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8년 3월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다. 더밸류뉴스 '현대차 지배구조' 시리즈 1, 2, 3회에서 소개한 손자회사에 계열사들이 달려있는 지배구조 개편안이었다. 이번에도 시장은 이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철회됐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2021~2022년 현대엔지니어링 IPO 추진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이같은 시행착오는 현대차그룹이 수행하는 업(業)의 특성에서 비롯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는 1만 5000여가지 부품이 한 치 오차 없이 결합돼야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그러나보니 데드라인(deadline) 맞추기, 상명하복, 규율의 문화를 특징으로 가질 수 밖에 없다. 총수 1인이 이를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뿌리깊이 박혀있다"는 의견을 밝혔다('현대차 지배구조' 5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