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현대모비스의 사업 부문 가운데 ①단순 모듈 ②국내 A/S부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에 넘기고(합병하고), ①핵심부품 ②해외 모듈 ③해외 A/S부품 사업은 그대로 현대모비스가 갖는다'였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모비스의 단순 모듈, A/S부품 사업을 넘겨받아 기존의 물류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 현대차그룹, "서비스 사업하는 현대글로비스가 제조 부문 인수해 시너지 창출"
시장 참여자들의 반발을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현대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 분할 법인과 시너지(synergy)를 창출할 수 있을 지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시너지란 '1+1 = 2+α(알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합병을 통해 더 많은 수익과 가치 증대가 발생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점이 의심스러웠다.
현대글로비스는 제품을 제조해본 적이 없었다. 현대글로비스의 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상품이나 제품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시킨다'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나 부품사가 자동차나 부품을 생산하면 현대글로비스는 이를 국내 혹은 해외의 목적지로 배송하는 '서비스 사업'을 영위해왔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물류∙유통∙해운 비즈니스다.
제품 제조 노하우가 내재화돼 있지 않은 현대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의 제조 부문(모듈∙A/S 부품)을 인수해 시너지를 낸다?
시장 참여자들은 '합리적 의심'을 주저하지 않았다.
2018년 현대모비스 분할과 '합병 현대글로비스' 사업구조. [자료=버핏연구소]
또 다른 문제는 합병 비율이었다.
현대모비스 분할법인이 영위하는 A/S부품 사업은 두 자리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알짜 사업(Cash Cow)'이었다. 2017년 기준 현대모비스 영업이익의 약 70%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분할 비율도 70% 근처에서 결정돼야 상식적이지만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분할법인(단순 모듈∙국내 A/S 부품)의 분할 비율을 21%로 책정했다. 현대모비스 존속법인 합병비율(79%)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이 결과 현대모비스 분할법인을 흡수 합병하는 현대글로비스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효과를 낳았다.
◆ 손자회사 기아에 계열사 주렁주렁... 지주사 체제와 거리 멀어
여기에다 지배구조 개편안이 지주사 체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현대차그룹이 당시 '지주사 전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배경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대로라면 최상위 지배회사의 손자 회사가 되는 기아차(현 기아)에 계열사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게 된다. '오너→지주사→계열사'의 지주사 체제와는 거리가 먼 기형적 구조였다.
현대차그룹의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 주1. 대주주 보유 합병 글로비스 주식과 기아차 보유 존속 모비스 주식 교환. 주2. 대주주는 걔열사가 보유한 존속 모비스 주식을 추가 매입 → 순환출자 및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
현대차그룹은 왜 이같은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정의선 총수 일가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게 선명해진다"로 요약된다.
당시 현대글로비스 1대 주주는 정의선 총수(23.28%)였다(2017 현대글로비스 사업보고서). 현대차그룹 계열사 56곳을 통틀어 정의선 총수 지분이 가장 높은 상장사가 바로 현대글로비스였다. 정의선 총수에 이어 정몽구(6.71%), 현대차 (4.88%), 정몽구 재단(4.46%) 등 정의선 총수 일가 지분을 합치면 39.34%였고 Den Norske Amerikalinje AS(12.04%)도 노르웨이 해운그룹 소속으로 정의선 총수 일가에 우호적이었다. 나머지는 국민연금 10.59%, 기타(소액주주 포함) 38.03%였다.
이제 왜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에 알짜 사업을 몰아줬는지, 그러면서도 현대모비스 분할법인 합병비율을 낮게 산정해 결과적으로 현대글로비스 가치를 높였는 지 파악됐을 것이다.
2017 현대글로비스 주주 현황. 단위 %. [자료=현대글로비스 사업보고서]
얼핏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일부 레거시 미디어는 현대차그룹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A매체는 정의선 총수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고 양도세 1조 원 이상을 감수하려는 것을 '정공법'이라며 칭찬했다. 이 매체는 현대글로비스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총수 일가의 지분 매각이 현실적인 방법이므로 지배구조 개편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고 옹호했다. 정의선 총수 일가측의 '최소 비용으로 현대차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밑그림은 생략했다.
◆ 정의선, "시장과 소통 부족했고 새 방안 마련할 것"
현대차그룹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앉아서 손해를 보는' 현대모비스의 주주 가운데 외국인이 절반에 육박(48%)하고 이 가운데 폴 싱어(Paul Singer)가 이끄는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현대차그룹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기준 현대모비스 지분을 살펴보면 외국인 지분이 48%로 정의선 총수 일가 합산 지분(30.17%)보다 높았다. 정의선 총수 일가 지분을 살펴보면 기아차 16.88% , 정몽구 6.96%, 현대제철 5.66%, 정의선 0.33%였다. 그 무렵 엘리엇은 현대모비스(2.6%), 현대차(2.9%), 기아차(2.1%) 지분을 합쳐 약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2017 현대모비스 지분 현황. 단위 %. 2017. 12. 31. [자료-현대모비스 사업보고서]
폴 싱어 엘리엇 CEO는 공개적으로 "현대모비스 분할 법인의 가치가 과소평가돼 현대모비스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됐고, 사업 영역이 다른 두 회사(현대모비스 분할 법인 +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이 시너지는 고사하고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요지의 반대 의견을 밝혔다. 대안으로 주주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요구했다.
엘리엇의 주장은 시장에 '먹혀들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뚜렷한 이점이나 사업적 연관성이 불명확하다"고 했고, 또 다른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도 "개편안은 의심스러운 경영 논리(suspicious business logic)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개편안에 반대 의결권 행사를 권고했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던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마저 반대를 권고하면서 현대차그룹 개편안은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정리해보면 현대차그룹의 '본심'을 엘리엇이 폭로하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과 글래스 루이스가 가세하고, 국민연금이 '추인'하면서 현대차그룹 개편안은 좌절됐다. 현대차그룹측이 명분으로 내세운 '순환출자 해소와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에 가려져 있던 '정의선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라는 의도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포착된 것이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현 회장)은 "주주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며 "주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새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2018년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 실패는 한국 자본 시장에서도 '주주 가치'를 배제하면 지배구조 개편이 성공할 수 없으며 시장 참여자들이 결집하면 대기업집단의 힘도 저지될 수 있다는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 자문사 임원은 "현대차그룹은 일부 레거시 미디어를 장악했으니 모든 게 술술 풀릴 것으로 착각했다. 신기술 등장으로 세상이 천지개벽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얽히고설킨 후진적 지배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대기업집단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걸까?(3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