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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자본주의 실패에서 배운다] ①주주가치 극대화의 함정

- 경영진, 근로자, 소비자의 상호이익 도모하는 '관계자 자본주의' 몰락

- 주주이익 극대화 목표로 하는 '주주자본주의' 부상

  • 기사등록 2019-03-04 09: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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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편집자 ]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주주자본주의의 성과와 개선점, 향후 전망을 짚어보는 '주주자본주의 실패에서 배운다'를 연재합니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본격 등장한 주주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양극화, 승자독식, 극단적 경쟁논리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전망도 짚어봅니다. 


[더밸류뉴스=정세진 기자] 주요 대기업들의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키워드가 바로 ‘주주가치 극대화’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란 기업 경영의 목표는 주주의 이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주주가치 극대화에 기반한 기업 경영은 경영진에게 과도한 보상이 주어지거나 잠재적인 투자 혁신 포기, 근로자 임금 삭감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은 이론상 지극히 당연한 데 왜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2007년 4월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전야제에서 주주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워렌 버핏이 참여해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 우드스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 1980년대까지 미국 재계 지배한  '관계자 자본주의' 


미국에서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이 시대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최고경영자(CEO)들이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CEO들은 기업 경영의 근간을 '관계자 자본주의'에 두고 있었다. 관계자 자본주의란 경영진, 근로자, 소비자, 공급자 등의 경제 주체들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자본주의가 발전한다고 보는 이념이다. 당시 경영진과 임직원들은 서로를 도우면서 일하면 기업과 사회가 발전한다는 연대 의식을 갖고 있다. 


이 시기 미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자기 회사의 이익에 앞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도 회자되는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말은 바로 당대의 기업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1953년 당시 미국의 초우량 기업 제너럴 모터스(GM)의 CEO 찰스 윌슨(Charles E. Wilson)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당시에는 미국 기업의 CEO가 정부 요직으로 옮기는 일이 빈번했다. 미 상원의 인준 청문회에서 찰스 윌슨은 어느 의원으로부터 “GM의 이익에는 반하지만 미국의 이익에는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찰스 윌슨은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진=미 국방성 홈페이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같은 이해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해 동안 나는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GM)는 아주 큰 회사며, 그래서 미국이 잘돼야 하는 회사다.” 


◆ 경쟁 격화하면서 주주이익 극대화하는 '주주자본주의'로 변모


이같은 관계자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기업인들의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1980년대 무렵부터이다.  

무엇보다도 마이크로 소프트(MS), 애플 등 신규 경쟁자가 속속 미국의 주요 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존 대기업 중심의 과점 체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덧붙여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풍부한 노동력을 강점으로 자동차, 전자제품, 세탁기를 미국 시장에 싼값에 쏟아냈다. 


미국 기업 CEO들은 위기를 감지하고 원가 절감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기업들은 직원 급여가 과다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제조원가명세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급여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해고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모펀드, 펀드매니저 등 기관 투자자들의 힘이 커진 것도 이런 변화에 일조했다. 기관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호황에 힘입어 대기업의 주요주주로 속속 등극하고,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적대적 M&A(인수합병)를 거침없이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CEO들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미국 10대 기관투자자들의 5% 이상 지분보유 기업 수. 2017년 기준. [자료 : 캐피탈IQ]

또 다른 이유는 이들 자신들이 바로 금융투자자들의 강력한 동맹세력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즉, 급여체계가 스톡옵션 위주로 바뀌면서 '주주가치 극대화'는 'CEO 이익 극대화'와 동의어가 됐다. 미국 기업 CEO들이 경영 이념으로 '관계자 자본주의'를 버리고 '주주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 주식시장이 자금유출창구로 변모


이 무렵 미국 경제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주식시장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빼가는 자금유출창구로서의 기능이 강화된 것이다. 주식시장이 발달할수록 기업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보다는 주주들이 이익을 환수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2005~2014년 사이에 미국 자본시장을 살펴보면 비(非) 금융기업에서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으로 순 유출된 돈은 연평균 3660억달러(약 410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경영에 필요한 자금까지 빼냈고, 그 결과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등 근로자에 대한 착취도가 대폭 증가했다. 이전 시대에는 업무강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임금이 올랐지만, 늘어난 근로시간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고용안정성도 악화됐다. 이는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겪었던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같은 '주주 자본주의'는 1990년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투자자나 컨설팅회사, 경제학자들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csj@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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