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원장 김헌수)은 26일 서울시 영등포구 보험연구원 컨퍼런스룸에서 『소비자 금융역량 진단과 정책과제』 세미나를 개최하고 소비자 금융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세미나는 변화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아동·청소년부터 고령층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로 요구되는 금융역량의 실태를 점검하고, 특히 자산 인출기에 접어든 중·고령 소비자의 금융후생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김헌수 보험연구원 원장이 26일 보험연구원 세미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김헌수 보험연구원 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오늘날 인구 고령화와 급격한 디지털화 속에서 단순히 금융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올바른 금융 행동으로 연결하는 '금융역량'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은퇴 후 자산 인출기를 맞이한 중·고령층이 현명한 금융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정교하고 실질적인 정책 솔루션이 적기에 마련되어야 한다"고 이번 세미나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주제발표를 통해 생애주기별 금융교육 현황과 중·고령층을 위한 정교한 솔루션들이 차례로 제시됐다.
◆ 한국인 금융지식은 우수, 실천은 낙제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허수정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국 금융교육기획팀장은 '금융소비자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 추진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금융역량 강화를 위한 생애주기별 금융교육과 향후 금융교육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허수정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기획팀장이 26일 보험연구원 세미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허 팀장은 “지난 2024년 우리나라 성인의 금융이해력은 65.7점으로 2022년 조사(66.5점) 대비 소폭 하락하였으나, OECD 평균(2023년, 62.7점)보다는 높은 수준”이라며 지식과 행동의 심각한 불일치를 문제 제기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성인들은 높은 금융지식(73.6점)에 비해 평상시 재무상황이나 소득·지출관리, 장기적인 재무목표 설정 여부 등 금융행위 점수(64.7점)가 낮아 지식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금융이해력이 실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행동”이 금융역량이라 정의하며, “금융교육 역시 '배운 내용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금융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연령대별 금융 특성 및 재무목표가 상이한 점을 감안하여, 각각의 생애주기에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금융역량에 대해 중점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아동·청소년기에는 용돈 관리 등 금융에 대한 기초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중이므로 '건전한 금융습관 확립, 금융 리터러시 조기 향상'을 목표로 둔다.
청년층은 결혼, 거주지 마련 등 중요 의사결정에 최초 직면하므로 '신용관리, 경제적 자립 지원, 취업사기 등 범죄예방'을 지원한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하는 중장년층에게는 '노후 대비 자산형성을 위한 소득지출 등 관리능력 제고'를, 금융사기 고도화와 금융의 디지털 가속화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에게는 '금융사고 등 대응능력 강화 및 디지털 금융소외 방지'를 중점 교육한다.
금감원은 향후 「2025년 제2차 금융교육협의회」를 통해 의결 발표된 「2026년 금융교육 추진 방향」에 따라 금융당국, 금융 유관기관 및 금융권이 협업해 지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주요 추진 사업은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의 안착, 교사연수 확대 등 학교 내 금융교육 적극 지원, 청년 대상 재무상담 실시, 중·장년층의 연금·자산 관리 교육, 고령층 금융사기 예방, 생활밀착형 디지털 금융교육 실시 등이다.
◆ 중·고령자 32.5% 생활비 부족, "근거 없는 과신 버리고 공적 자문·넛지 활용해야"
이어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변혜원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고령소비자의 금융역량 진단과 강화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중고령소비자의 금융역량 실태와 개선과제를 논의했다. 해당 발표는 전국 55~79세 중고령자 3000명의 금융지식·행동·후생 수준을 조사, 분석한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변혜원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6일 보험연구원 세미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변 선임연구위원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중·고령층의 노후 준비 상태는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퇴가구의 32.5%가 생활비 부족을 경험하고 있었고, 부채 보유 응답자(전체 응답자 중 49.2%) 중 61%가 빚이 너무 많다고 느끼고 있었다. 반면 신체적·정신적 건강 악화나 장례비용, 상속·증여 등에 대해 44% 이상의 응답자가 계획이 없거나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특히 금융지식, 긍정적 금융행동 실천 수준에 따른 3분위 집단 중 금융지식과 금융행동 지표 수준이 모두 가장 낮은 ‘금융역량 취약집단’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디지털 금융서비스 이용 미숙, 자신의 금융역량에 대한 과신 등이 금융역량 취약집단의 긍정적 금융행동 실천 및 금융후생 개선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비취약집단 대비 자신의 금융지식 수준을 과신하는 경향이 커 전문 금융자문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구조적 배제 위험을 키우고 있다.
이에 보험연구원은 금융지식 교육에만 의존하기보다,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 대신 감정, 심리, 인지적 요인으로 인해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 경향(행태편향)을 경감시키는 방안들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지식이 있더라도 소비자의 행태편향이 긍정적 금융행동 실천을 방해할 수 있으며, 기존 연구에 따르면 재정적 여유가 부족한 저소득층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구체적인 강화 방안으로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와 죽음에 대비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돕는 공공 서비스 및 정보 제공 확대를 통해 미래 위험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부채관리, 현금흐름 관리, 완충자산 마련을 위한 재무관리 지원 및 신뢰할 수 있는 무료 공적 금융자문 서비스 홍보 강화와 접근성 제고 등의 공적 금융자문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비대면 재무진단의 사용 편의성 개선(실수 방지 설계 등)과 대면 상담 채널(신용·부채 컨설팅 등)의 적극적 유지·활성화를 조화롭게 병행하는 대면·비대면 금융지원 채널 구축을 강조했다. 또 재무진단 전 짧은 퀴즈를 통해 실제 금융지식 수준을 인지시키고, 전문 조언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객관적 자기진단 도입으로 금융역량 과신을 완화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강제나 지시 대신 자연스러운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Nudge)'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출을 받을 때 소비자가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나 원금 등 '총 상환비용'을 명확하게 시각화해 보여주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각적 장치는 감정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내리는 소비자의 행태편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보험연구원 CI. [이미지=보험연구원]
◆ 지식을 넘어 행동으로, 공급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금융웰빙’
이번 세미나에서는 단순히 금융지식을 전달하는 과거의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 개개인의 실제 금융 행동을 변화시키는 ‘금융역량’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이 집중 논의됐다. 중고령소비자의 금융후생 개선을 위해서는 금융지식 제고와 긍정적 금융행동 실천 지원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발표자들은 급변하는 사회·경제환경에 대응하고 ‘금융웰빙’을 이루기 위해 국민 모두가 금융역량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금융역량은 금융이해력이 실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의미하며, 금융이해력이 높아도 구체적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금융역량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금융당국, 유관기관, 금융권 등이 국민 금융역량 향상을 위해 협업을 강화하고 생애주기 맞춤 금융교육을 지속 추진해 왔으나, 높은 금융지식에 비해 지식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정체 상황이 이어지며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책적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금융감독원이 추진 중인 아동부터 고령층까지의 촘촘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 인프라, 보험연구원이 제안한 행태편향 경감 조치, 공적 자문 서비스 접근성 혁신 방안 등이 고령화 사회의 안전망을 다지는 구체적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은퇴 가구의 생활비 부족과 과도한 부채 부담 등 중·고령층이 직면한 구조적 노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의 정교한 정책적 지원이 한층 강화되어야 하며, 소비자 역시 객관적인 자기진단을 통해 올바른 금융행동을 실천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맞물리는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는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