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손실만 10억 원, 더는 늦출 수 없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 경제의 생명선인 해상 물류를 위협하는 가운데, 국가 안보 차원의 ‘전략상선대’ 구축을 위한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됐다.
지난 1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1층 세미나실에서 ‘해양강국 도약 전략수립 국회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안정적인 에너지 수송과 공급망 확보를 위해 국가 통제 선박 확대가 시급하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기구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위원장과 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 등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안정적 해상 운송 능력'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강조하며, 전략상선대 구축을 통한 위기 대응 역량 강화를 촉구했다.
어기구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우리나라 해양강국 도약을 위한 전략 수립 공청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 호르무즈 해협 갇힌 배 26척…하루 70만달러 손실
참석자들은 최근 중동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을 심화시키며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략상선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략상선대란 평시에는 상업 운항을 하되, 전시나 유사시에는 국가에 동원되는 선박을 뜻한다.
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와 LNG 수급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이와같은 위기가 발생할 시, 외국 선박에 에너지 수송을 지나치게 의존하면 운송 중단의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농해수위 위원인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우리나라 선박이 26척쯤 된다고 들었다”며 “손실액이 하루 70~80만달러(한화 약 10억) 달하는 것으로 보고 받았는데, 이를 정부가 지원을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어기구 농해수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해운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며 “해양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어기구(앞줄 왼쪽 세 번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우리나라 해양강국 도약을 위한 전략 수립 공청회'에서 박정석(앞줄 오른쪽 세 번째) 한국해운협회 회장, 조경태(앞줄 왼쪽 두 번째) 국민의힘 의원, 조승환(앞줄 오른쪽 두 번째) 국민의힘 의원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전략상선대 만들 마지막 기회…올해 내로 입법 논의 희망
발제를 맡은 우수한 중앙대학교 경영경제대학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전략상선대 조성 필요성에 대해서 발표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 무역의존도가 높고 바다를 통한 물류 운송 비중이 높다는 특성이 있어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해외 주요국 사례를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 3축 해운전략을 수립하고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선박 동원과 관련된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준국적선 제도’를 도입해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선박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수한(오른쪽 두 번째) 중앙대학교 국제물류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우리나라 해양강국 도약을 위한 전략 수립 공청회'에서 미국의 3축 해운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준국적선 제도란 평시에는 파나마나 마셜 제도 등 세제 혜택이 있는 국가에 소속된 형태로 운영되다가, 비상시에는 선박 국적을 일본으로 변경해 정부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또 호주의 경우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략선대 12척을 확보하고 외국적선 대비 초과 비용을 전액 정부가 보조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 교수는 한국 해운 및 조선 산업의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제언했다. 그는 한국 조선 산업과 해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기업·금융에서 전방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일본의 GX 경제이행채권을 벤치마킹해 친환경 선박에 대한 건조 비용을 정부가 보조하는 제도를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수출입은행이나 한국해양진흥공사(KOBC)가 정책금융으로 저리대출, 공공선주사업 등을 통해 금융적 지원을 병행해야한다고도 말했다. 끝으로 스마트 야드나 최신형 도크를 건설하는 등 차세대 조선 시설 투자에 대해서도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전략상선대를 구축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는 생존의 문제이며, 올해부터 입법 논의가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 ‘전략상선대’ 필요성 공감대…'새로운 법 제정' VS '기존 법 보완' 방식 두고 정부·업계 이견
한종길(가운데) 성결대학교 글로벌물류학부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우리나라 해양강국 도약을 위한 전략 수립 공청회'에서 토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발제가 끝난 뒤에는 한종길 성결대학교 글로벌물류학부 교수의 진행 아래, 업계를 대표하는 참석자들이 나서 각 분야의 현안을 짚고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김경훈 해운협회 이사는 “전략상선대는 해운업계에 득과 실이 전혀 없다”며 “안보적인 접근은 당연하고, 수출 화주에 대한 안정적인 수송 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도 전략 상선대를 도입해야 할 명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형준 해양진흥공사 본부장은 “지정학적 충돌이 일상화된 시기에 평화를 가정하는 시스템은 맞지 않다”며 “전략 상성대는 국가 안보를 위한 중요한 툴이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대형 3사와 중소형 조선사 업황이 양호한 편이지만 중소형사의 실적 지속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략상선대법은 기존 법령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별도의 입법을 통해 새로운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략상선대를 국가 인프라화 하는 부분을 포함시킬려면 기존 법령과 차별점을 둬야한다는 주장에서다.
이재복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는 “선사 지원책, 조세 감면 금융 지원, 공급망 안정화 기금 마련 등의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법 개정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민·관 합동으로 전략상선대 정책 심의회를 구성해서 전략상선대 관련 업무를 총괄하려면 새로운 법 제정이 불가피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현재 김앤장 측은 전략상선대법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법령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심상철 해양수산부 연안해운과장은 “전략상선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존 국가 필수 선박 제도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산업부 등 정부 부처와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설명했다.
전략상선대 구축은 단순한 산업 지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이지만, 별도 입법 제정과 기존 제도 보완을 둘러싼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국회·업계 간 정교한 논의가 요구된다.
어기구 위원장은 “필요하다면 금융·산업·외교 등 분야별 토론회를 거쳐 전략상선대 입법안을 구체화하자”며, 향후 정책 방향과 입법 추진을 위한 세부 로드맵 수립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