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넘어선 뒤 시장에는 기대와 함께 불안도 겹쳤다. 급등한 지수가 펀더멘털로 설명 가능한지, 그리고 '5000'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안착'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업권 전문가들의 시각이 궁금했다.
본 기자는 3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열린 '코스피 5000 앤드 비욘드(and Beyond) 세미나' 현장을 찾았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스피 5000 앤드 비욘드 세미나'에서 주요 인사들이 축포를 터트리며 코스피 5000 돌파를 기념하고 있다. [영상=더밸류뉴스]
이날 세미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자는 선언으로 시작됐다. 오기형 의원은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가 '코리아 프리미엄을 위한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하며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다만 그는 코스피 5000 달성만으로 디스카운트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제도 개선과 시장 관행 변화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이억원 금융위원장...'불공정거래 근절·주주가치·혁신기업'으로 5000 이후 로드맵 제시
행사 축사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코스피 5000을 단순 지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신뢰와 기대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는 자본시장 성장이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그 성과가 국민의 자산 형성과 미래 대비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코스피 5000 앤드 비욘드 세미나'에서 축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첫째는 불공정거래 근절이다. 특히 주가조작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내부자의 자발적 신고 유인을 강화하겠다며 신고 포상금 상한 상향과 부당이득 재원 기반의 포상 확대 방안을 언급했다. 둘째는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 경영 문화 정착이다. 일반 주주가 두텁게 보호받고 기업 성장 성과를 정당하게 향유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혁신기업이 끊임없이 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국민성장펀드, 생산적 금융 등을 통해 미래 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글로벌 기준에 맞춘 시장 인프라 개선과 세제 지원 등 투자 인센티브를 통해 국내외 자금이 들어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장 인프라 구축"
이 같은 정책 기조를 뒷받침할 실행 수단으로 시장 인프라 선진화도 함께 언급됐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거래 시간 연장과 청산·결제 주기 단축 등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시장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명확한 공시 체계와 배당 절차 선진화 역시 병행해 해외 주요 증시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자본시장 구조를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제도 개편과 거래소의 인프라 개선이 맞물려 코스피 5000 이후 시장의 '안착'을 뒷받침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코스피 5000 앤드 비욘드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진행하고 있따. [사진=더밸류뉴스]
◆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코스피 5000 '안착'의 관건 이익·제도·대외 삼박자"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 5000 돌파를 한국 자본시장의 체질 변화와 선진 금융시장 진입을 알리는 신호로 평가했다. 하지만 지수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코스피 상승 원인으로 AI·반도체 중심의 이익 성장, 자본시장 정상화 정책, 글로벌 유동성 확대라는 세 가지 요인이 맞물렸다고 진단했다.
코스피 5000 시대의 안착 조건으로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펀더멘털 측면에서 기업 이익의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AI 투자 확대와 적용 분야 다변화로 중장기 실적 가시성이 확보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둘째는 자본시장 체질 변화의 연속성이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의무가 주주 전반으로 확대된 점을 상징적 변화로 언급하며 배당 제도와 자사주 소각, 세제 개편 등 후속 정책이 일관되게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 자산시장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 대외 환경이 유지돼야 글로벌 자금 흐름이 급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센터장이 '코스피 5000시대, 안착 및 도약을 위한 조건'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조 센터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과거 대비 상당 부분 축소됐지만 여전히 신흥국 평균 대비 할인 거래되고 있다"며 "정책의 연속성과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이 이어질 경우 밸류에이션 재평가 여지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지수는 올랐지만 내수는 멀었다"
마지막 발표에서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지수 급등이 체감경기와 괴리돼 보이지만 이를 곧바로 버블로 보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PER과 PBR 등 밸류에이션만 놓고 보면 한국 시장은 여전히 디스카운트 상태이며 1년 급등처럼 보이는 흐름도 2023~2024년의 부진을 만회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주가 상승은 한국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내수와 주가의 거리'는 분명한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성장 둔화의 배경으로 건설투자 부진과 수출 대기업 성과가 내수로 파급되는 연결고리 약화를 들었다. 주식시장은 이런 구조를 업종별로 다르게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도 했다. 코스피는 최고치지만 코스닥과 내수 업종, 특히 건설 등은 고점 대비 괴리가 크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시장 전체가 과열이라기보다 일부 업종(반도체) 중심으로 가격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스피 상승을 사실상 끌어올린 반도체 산업의 구조도 짚었다. 실적은 강하지만, 이익이 배당·자사주처럼 주주에게 귀속되기보다 설비투자로 재투입되는 구조가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동시에 과점화와 HBM 등 장기계약 기반 제품 확산은 과잉투자 사이클을 완화할 수 있는 긍정 변화로 봤다. 코스닥에 대해서는 육성 자체는 필요하지만 종목 난립과 질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체질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가 상승이 단순히 지표 개선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도 짚었다. 주식 투자 참여자가 늘어나고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금융자산으로 이동할수록 기업 성과와 가계 자산 간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주가는 경기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며 "주식시장이 좋아지면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과거보다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조정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지만 배당과 거버넌스 개선이 병행된다면 투자자들이 그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구조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