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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칼럼] 한국 석유화학, 나프타분해시설 270만톤 감축, 한국 석유화학 판 바꾸나

- 12월 데드라인 앞두고 주요 기업들 ‘자율 구조조정안’ 제출…대산·여수·울산 산단 갈림길

- 중국발 공급 과잉 속 글로벌 NCC 설비, 중장기적으로 조정 국면 진입

- 범용제품 중심 구조에서 고부가가치 전환 요구…석화업계에 남은 시간 많지 않다

  • 기사등록 2025-12-29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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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수연 선임기자]

“시한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6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여수국가산업단지를 찾았을 때 남긴 말이다. 이번달 말이라는 데드라인을 앞두고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사실상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2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CEO 간담회에서는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 주요 기업들이 정부에 사업재편안을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출 자체만 놓고 보면, 정부가 제시한 나프타분해시설(NCC) 270만~370만톤 감축 목표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NCC는 원유에서 나온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원료를 생산하는 석유화학 산업의 출발점으로, 플라스틱·합성섬유·전자·자동차 부품의 기반 물질을 만든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설비 증설로 공급이 과잉되며 제품 가격과 수익성이 하락했고, 나프타 기반 공정의 높은 에너지 소요와 탄소 배출 부담은 비용·규제 리스크로 이어져 국내 기업들의 감축 압박을 더욱 키운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출된 재편안은 생존을 위한 1차 조정 단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박수연 칼럼] 한국 석유화학, 나프타분해시설 270만톤 감축, 한국 석유화학 판 바꾸나국내 석유화학 기업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2024~2025), 사단법인 넥스트] 

국내 10대 석유화학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지난 2021년 12.5%에서 2023년 -0.9%, 지난해 -1.8%로 하락했다. 불과 3년 사이 수익 구조가 급격히 무너졌고, 적자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효자 산업’으로 불렸던 석유화학이 왜 이 지점까지 밀려났는지, 그리고 이번 구조조정이 산업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지는 여전히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이다.


◆ 대산·여수·울산 3대 산단, 통폐합 vs 폐쇄 기로


이번 구조조정은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서 20여 년 만에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대규모 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NCC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간 약 1,280만톤으로, 세계 4위 수준이다. 그러나 글로벌 수급 환경이 바뀌면서 이 규모는 경쟁력이라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대 이후 NCC 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며 에틸렌 자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이 에탄 기반 설비(ECC)를 앞세워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업계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일 경우, 나프타 기반 에틸렌 생산 원가가 에탄 기반 대비 톤당 약 800달러 높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박수연 칼럼] 한국 석유화학, 나프타분해시설 270만톤 감축, 한국 석유화학 판 바꾸나국내 주요 산단별 에틸렌 생산능력.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지난 8월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을 통해 NCC 생산능력을 270만~370만톤 줄이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일 기업 기준으로 보면 LG화학 한 곳의 생산능력에 맞먹는 규모다. 그동안 기업들이 선제적 감산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먼저 생산량을 줄이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구조적 딜레마 때문이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는 정부와 업계 간의 조율이 일정 부분 작동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실제 감축이 어느 수준까지 이행될지는 기업별 전략과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산산단에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안이 먼저 나왔다. 지난달 27일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은 NCC 설비 통폐합을 골자로 한 구조개편안을 제출했다. 두 회사의 합산 NCC 규모는 연산 195만톤에서 85만톤으로 줄어 감축 규모는 약 110만톤이다. 정유와 석유화학을 묶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여수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LG화학의 NCC 사업을 GS칼텍스와 통합 운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합작사인 여천NCC는 지난 8월 가동을 멈춘 연산 47만톤 규모의 3공장 폐쇄 여부를 검토 중이다. 울산산단에서도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외부 컨설팅을 통해 구조조정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 글로벌 NCC 조정 국면…중국·한국·일본·유럽 동시 감축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북아 전반에서 NCC 설비 조정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중국은 742만~1,133만톤, 한국은 270만~370만톤, 일본은 약 240만톤 규모의 NCC 설비 감축 가능성이 거론된다.

[박수연 칼럼] 한국 석유화학, 나프타분해시설 270만톤 감축, 한국 석유화학 판 바꾸나동북아 NCC 설비 감축 계획.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신영증권]

유럽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비용 상승과 경기 둔화가 겹치며 2024~2027년 사이 약 687만톤 규모의 에틸렌 크래커가 가동 중단 또는 영구 폐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은 이미 산업경쟁력강화법을 통해 기업 간 통폐합을 유도했고, NCC 설비의 약 20%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 바 있다.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 4개국의 NCC 설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7,675만톤으로 추산된다. 구조조정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2027년 동북아 NCC 설비 규모는 여러 전제를 감안할 때 8,612만~9,003만톤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는 구조조정이 없을 경우의 전망치보다 13~17% 낮은 수준이다.


다만 감축 자체가 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중국의 자급률 확대, 중동의 원가 경쟁력, 강화되는 환경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범용 석유화학→스페셜티 화학·정밀화학·반도체 소재로 사업 재편 시급


산업 구조 전환의 필요성도 반복해서 제기된다. 기후·에너지 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가 제시한 석유화학산업 넷제로 로드맵은 2030년까지 에틸렌 생산능력을 현재 1,280만톤에서 약 920만톤 수준으로 줄이고, 산업단지의 지역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감산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이다.

[박수연 칼럼] 한국 석유화학, 나프타분해시설 270만톤 감축, 한국 석유화학 판 바꾸나국내 에틸렌 생산능력 로드맵.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생존 전략으로 선제적 사업 구조조정을, 성장 전략으로는 고부가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와 친환경 제품 개발, AI 기반 생산성 향상을 제시한다. 스페셜티 화학, 정밀화학, 반도체·이차전지 소재 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지원책을 예고하고 있다. 사업재편에 참여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R&D 지원과 규제 완화, 세제 혜택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지역 협력업체와 고용 문제 역시 살피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설비 폐쇄와 재편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고, 생산량 축소는 단기적으로 기업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원은 중국 의존 성장 모델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지적하며, 변화하지 않으면 산업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구조조정이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시적 조정에 그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남은 몇 년 동안의 정책 선택과 기업의 전략적 판단이 그 결과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ynsooyn@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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