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0대 후반 직장인 A씨는 ‘소상공인 부담경감 크레딧’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50만원 크레딧이 생겼다. 자신이 보유한 소규모 법인이 경기 회복을 위한 현금 지원 대상이 된 덕이다. 법인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고 이미 샐러리맨으로 직장을 다니는 상황인데 ‘공돈’이 생긴 셈이다. 그는 기분이 좋긴 하지만 이런 불필요한 지원금이 나라 빚만 늘리는 것 같아 찜찜하다고 말한다. “내 아들 세대가 짊어져야 할 빚만 늘어나는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다.”
정부의 ‘현금 살포’, 정말 괜찮은 걸까. 소비쿠폰, 지역화폐 확대, 청년 창업자금, 자영업자 긴급 경영자금, 전통시장 지원금...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현금을 지원하는 재정지출 정책이 그 전부터 시행돼온 정책들과 맞물려 다양한 명목으로 집행되고 있다. 하지만 효과에 대해선 아직 회의적이다.
2025년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개시된 현금지원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불어난 국가채무의 짐만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에 떠넘길 수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2025년 7~9월 사이 전 국민 소비쿠폰 지급 이후 일시적인 카드매출 증가 등 단기 반응은 있었지만, 자영업 전반의 회복세로 이어지진 못했다.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음식점의 카드 승인액은 전월 대비 2.7% 감소했고, 골목상권 중심 소매판매도 두 달 연속 역성장을 보였다. 소상공인 경기 체감지수도 9월 들어 다시 하락세를 보였다.
정부는 정책 지원금이 ‘정책 체감도’를 높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효과는 일시적이고 단속적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퍼주기식 정책은 더 강화될 조짐이다. 2026년 예산 편성 지침 초안엔 지방 소멸지역 특별지원금, 청년 유턴 자금, 자영업자 재기 펀드 등 새로운 예산안들이 줄줄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정치권 내 지역구 단위 '요구 사업' 형태로 논의 중이다.
도묘년 영남대 교수는 2020년 <한국경제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한국 포퓰리즘의 변화 추이와 영향 요인: 경제적 및 정치적 위기의 관점>에서 “포퓰리즘은 경제성장률이 낮을수록, 선거가 다가올수록 증가한다”는 사실을 실증 결과와 함께 보여주며, 대중영합적 정책의 제도적 리스크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금성 지원이 연명에는 도움을 줄 수 있어도, 업종 전환이나 경쟁력 회복이 병행되지 않으면 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현금 살포가 회복의 디딤돌이 아니라 유예된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가 채무 총액이 2022년 이후 3년 만에 25%나 급증할 전망이다. [그래프=더밸류뉴스]
◆ 포퓰리즘의 착시: 지금 되묻지 않으면 늦다
문제는 국민들조차 이런 현금 지원 정책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비쿠폰의 긍정적 효과를 묻는 항목에 “실제 도움이 됐다”는 응답률이 61.4%에 달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체감 호전이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한국은행이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쿠폰은 평균 6주 내 효과가 증발하며, 오히려 정상소비의 시점만 앞당기고 소비 총량은 그대로인 경우가 48%에 달했다. 이는 마치 마취제로 통증을 덜 느끼게 했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시도조차 되지 않은 환자와도 같다.
현금 살포는 경제의 체력 저하를 더 가속화할 수 있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서 재정정책 의존성이 커질수록 민간 부문의 자생력은 약화된다. 소상공인의 부도율은 2025년 상반기에만 전년 대비 21% 증가했고, 폐업률은 10%를 넘어섰다. 정책 자금은 연명 비용으로 작용할 뿐, 회복과 재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2025년 7월 잠시 반등했던 소상공인들의 경기체감 지수가 다시 하락한 사실이 현금 지원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자료=더밸류뉴스]
◆ 이대로 가면 국가가 병든다
현재와 같은 현금 살포 추세가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한국의 재정 건전성엔 심각한 경고등이 켜질 수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국가 채무 총액은 2022년 이후 3년 만에 25%나 급증할 전망이다. 국가 채무는 이미 1200조 원을 돌파했으며, 올해 연말까지 GDP 대비 비율이 53%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OECD 평균보다는 낮지만, 한국처럼 빠르게 고령화 되는 국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속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환율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이 장기물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고, 외국인 자금은 이탈 압력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외국인 국채 보유 비중은 1.7% 감소했고, 원·달러 환율은 이미 1400원을 훌쩍 넘어 1500선을 위협하고 있다.
선심성 정책이 장기화하면, 이를 주시하는 국내외 자본시장은 포퓰리즘을 앞세웠던 국가들의 종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정권, 그리스·이탈리아 등 유럽 남부 국가들의 ‘재정 낙관주의’가 남긴 폐해가 극명한 선례다. 실제 아르헨티나는 2018년 이후 세 차례 국가 디폴트를 맞았고, 인플레이션이 100%를 돌파했다. 구조적 개혁 없는 현금 살포는 '정치적 도취'와 '경제적 파탄' 사이의 시차를 감출 뿐이다.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이 장기물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외국인 자금이 급속한 이탈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더밸류뉴스]
◆ 누가 올바른 대안을 실현할 것인가
일시적 현금 살포 정책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경제 구조부터 개선하자는 대안은 누구나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안이 실현되려면 그 구조를 바꾸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정부 주체들부터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현실적 장벽이다.
공무원 조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연속성'보다 '정치 방어'에 익숙하다. 실적평가 기준이 양적 집행률에 치우쳐 있다 보니, 소모성 현금 정책이 오히려 더 손쉬운 옵션이 된다. 정부 부처 간 예산 싸움은 구조개혁보다 ‘누가 더 돈을 많이 쓰느냐’로 귀결된다. 바로 이런 고질적 ‘전시행정’ 관습부터 깨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국회,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 선심성 정책을 견제할 만한 사회 주체들이 모두 침묵을 고수하는 한, 이미 현금이라는 단물에 도취한 국민 여론을 반전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제 현금 살포에 대한 ‘감시와 실증의 연계’만이 정치, 행정, 포퓰리즘의 삼각편향을 견제할 수 있다.
먼저 국회는 포퓰리즘 예산을 구조별로 쪼개 검증하는 ‘정밀 예산심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학계, 시민단체 등은 개별 사업의 효과성과 낙수 구조를 실증 분석하는 ‘정책보고서’를 지속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언론도 꾸준히 ‘귀찮은 질문’을 정부에 던지며 감시의 눈길을 보내야 한다.
저명한 미국의 경제칼럼니스트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1894-1993)은 말했다. “세상엔 이른바 경제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가득한데, 그들은 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언가를 얻으려는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포퓰리즘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지지하는 경제 전문가들에 대한 일갈이다.
경제정책은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결국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현금 살포라는 달콤한 정책은 대중의 침묵을 등에 업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