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는 잘되는데 코스닥은 왜 그러냐는 질문이 많습니다.” 코스닥시장 개장 30주년을 맞은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코리아프리미엄 K-자본시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축사에서 코스닥을 둘러싼 시장의 문제의식을 이같이 짚었다. 그는 코스피와 코스닥을 구분하지 않고 자본시장 제도개혁을 고민하고 있다며, 제도 변화가 실제 시장 신뢰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이 한국거래소 30주년 기념행사 시작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는 이날 ‘코스닥시장 30주년 기념식’을 열고 한계기업 퇴출 강화와 우량기업군 선별을 골자로 한 시장 구조개편 방향을 공개했다. 부실기업을 신속히 정리하는 동시에 AI·바이오·반도체·방산 등 혁신기업의 상장을 지원하고, 코스닥 안에서도 기업이 성장성과 성과에 맞는 가치를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 정은보 “한계기업 솎아내고 혁신기업 채울 것”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코스닥이 벤처기업의 성장 기반과 모험자본 공급 통로로 성장했지만, 시장 구조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사진=더밸류뉴스]
정 이사장은 “지난 30년 전인 1996년 출범한 코스닥 시장은 대기업 중심인 우리 경제에 벤처라는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외환위기 속에서도 벤처 붐을 이끌며 혁신 성장의 싹을 키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코스닥 시장은 전례 없는 자본시장 호황에도 중소기업과 대기업, 코스피와 코스닥의 동반 성장 구조가 뿌리내리지 못한 듯하다”며 “시장 구조를 개혁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재확립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거래소가 제시한 방향은 우량기업을 키우고 한계기업은 신속히 정리하는 ‘다산다사’ 구조다. 부실·한계기업 퇴출을 강화하는 한편, 퇴출된 자리를 AI와 방산 등 혁신기업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맞춤형 기술특례상장을 확대해 혁신기업의 적기 상장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국가 핵심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생산적 금융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 이억원 “코스닥, 성장 투자의 종착역 돼야”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코스닥을 혁신기업의 성장 플랫폼이자 장기 투자자금이 머무는 시장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한국거래소]
이 위원장은 “혁신기업 하나가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며 혁신기업의 원활한 상장 지원과 대형 투자은행(IB)의 모험자본 공급 의무, 국민성장펀드 직접투자, 2조원 이상 규모 세컨더리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자금조달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그먼트 분리를 통한 대표기업 선별과 장기·안정적 투자 기반 확충도 언급했다. 코스닥벤처펀드, 연기금,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을 활용해 자금 유입 기반을 넓히고, 리서치 보고서 및 기업설명회(IR) 확대를 통해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시장 신뢰 회복도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이 위원장은 상장폐지 기준 강화와 불공정거래 대응을 통해 우량기업까지 저평가받는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 최지우 상무 “코스닥 안에서 제대로 평가받는 구조 필요”
기념식 뒤 열린 ‘코스닥 30주년 성과 및 로드맵’ 발표에서는 최지우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무가 코스닥의 성장 성과와 향후 제도개편 방향을 설명했다.
최지우 한국거래소 상무가 코스닥 30주년 성과 및 로드맵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최 상무에 따르면 코스닥은 1996년 시가총액 7조원 규모로 출범해 올해 1월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했다. 상장기업 수는 출범 당시 341개사에서 지난해 말 1827개사로 늘었고,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매년 100개 이상의 기업이 신규 상장했다.
코스닥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도 커졌다. 시장 개설 이후 지난해까지 IPO를 통해 43조2000억원, 유상증자로 45조9000억원 등 총 89조1000억원의 자금이 공급됐다. 지난해 코스닥 상장법인의 매출액은 297조원, 영업이익은 11조7000억원, 순이익은 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8.8%, 21.9%, 52.9% 증가했다.
다만 최 상무는 부실기업 퇴출 지연과 우량·위험기업 혼재가 시장 신뢰와 저평가 문제를 키웠다고 봤다. 그는 “부실기업과 우량기업이 한 시장 안에 혼재돼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구조도 시장 전체의 저평가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퇴출 제도 강화와 세그먼트 도입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우량·대표기업을 별도로 구분하는 ‘코스닥 셀렉트(Kosdaq Select)’(가칭) 세그먼트 신설을 추진한다. 성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기업을 선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수 사업을 전개해 기관투자자의 투자 기준으로 활용하게 한다는 방안이다. 반면 위험기업은 별도 관리군으로 구분해 투자자 보호와 시장 이미지 훼손 방지에 나선다.
최 상무는 “목표는 퇴출 자체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신뢰를 회복하고 상장기업의 책임감과 시장 건전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올해 상장폐지 결정 기업 수가 88개사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부터 1000원 미만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신설 요건과 시가총액 관련 퇴출 요건 강화에 나선다. 시가총액·매출액 기준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실질심사 절차는 효율화하는 한편 불성실공시 관련 누적 벌점 기준은 강화할 예정이다.
혁신기업 상장 지원책도 병행한다. AI·바이오·반도체·방산 등 첨단산업에 대한 질적 심사 기준을 고도화하고, 첨단로봇과 사이버보안 등 새로운 산업에도 심사 기준을 순차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기술특례상장 평가모델 역시 점검해 새 업종의 기술력을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