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상 질서가 재편되며 우리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한계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의 자리가 마련됐다.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인수합병(M&A) 제도 개선 방향’을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과거 시가 중심의 획일적 규제에 머물렀던 M&A 제도의 허점을 파헤치고,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 전략적 산업 재편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진행됐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인수합병(M&A) 제도 개선 방향’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 밸류업 도약…“M&A 생태계 전반의 공정성 확보 시급”
행사의 문을 연 나현승 한국증권학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그동안 국내 M&A 시장에서는 경영권 변경에 따르는 인수 프리미엄이 지배주주에게만 독점되어 일반 주주의 권익이 사실상 침해받아 왔고, 이것이 주가 저평가의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이제는 인수 프리미엄이 모든 주주에게 고르게 나눠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코리아 프리미엄’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심포지엄의 본질적인 목적을 강조했다.
나현승 한국증권학회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김세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환영사에서 "M&A는 기업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 충돌과 불투명한 거래 구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며 “최근 세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 등 제도적 진전의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이번 디스커션의 핵심 의의”라고 밝혔다.
김세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축사를 맡은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M&A는 사업 재편을 통한 효율성 제고뿐만 아니라, 경영을 잘못하면 인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주는 견제와 균형의 기능도 수행한다"며 M&A 시장 활성화의 필요성을 짚었다. 이어 "경영권 변화 과정에서 지배주주뿐만 아니라 일반 주주의 이익도 공평하게 고려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의 제도 정비 의지를 피력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 지배주주 약탈적 M&A 방지책…‘공시 의무화’와 ‘사전지급제’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급물살을 탄 한국 자본시장의 지배구조 개선 성과를 짚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지난 5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계열사 간 합병가액 산정방식 자율화 등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상태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그러나 황 연구위원은 합병가액 산정에는 획일적 정답이 없는 만큼, 이사회가 합병가액을 판단한 근거와 적정성 자료를 시장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개정 이후 후속 보완 과제로 거래의 필요성, 합병가액의 적정성, 합병 관련 이해상충 공시 구체화를 주문했다. 아울러 주주 권익을 담보할 장치로 ‘합병유지청구권’, ‘합병검사인 제도’, ‘합병관계자의 손해배상책임 명문화’를 제안했다.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자발적 상장폐지’ 과정에서의 소수주주 보호도 과제로 제시됐다. 황 연구위원은 공개매수와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통한 자발적 상장폐지 사례가 늘고 있지만, 두 제도 모두 상장폐지를 전제로 설계된 장치가 아니어서 주주 권익 보호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발적 상장폐지는 지배주주가 경영정보 접근상의 우위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거래 시점과 가격을 설정하는 전형적인 이해상충 구조다. 결국 소수주주는 상장폐지 후 유동성 상실과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해 지배주주가 제시한 낮은 가격에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압력을 받는다. 황 연구위원은 “상장폐지를 위한 공시 규제를 강화하고, 현금교부 주식교환 시 공정가액 산정에 시너지를 반영하거나 법원 선임 검사인에게 적정성을 평가받는 등 가격 공정성 담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최근 6년간 국내 상장회사 합병의 93%가 소규모 합병으로 진행돼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회가 기형적으로 제한되어 온 폐단도 꼬집었다. 지배주주들이 합병 직전에 피인수회사의 지분을 미리 취득하는 방식으로 합병 당시의 신주 발행 규모를10% 이하로 낮춰, 소규모 합병 요건을 의도적으로 충족시키는 착시효과를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 연구위원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순자산액을 기준으로 소규모 합병 요건을 개정하는 한편, 소송 장기화로 주주 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문제를 타개할 대안으로 ‘주식매수청구권 매수가격 사전지급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분쟁 발생 시 회사가 공정한 가격으로 인정하는 대금만큼은 주주에게 사전에 먼저 지급하고, 추후 법원이 최종 산정한 가액과의 차액 및 지연 이자만 사후에 정산하게 하며 주주의 재산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 시장 위축 우려는 기우…쪼개기 방지하는 ‘진짜 의무공개매수’ 짜야
두 번째 발표를 맡은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시장의 최대 화두인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성공적인 입법을 위한 정교한 제도 설계 방향을 공유했다. 김 교수는 "의무공개매수제도의 핵심 취지는 자본시장 내 ‘주주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지배주주든 일반 주주든 기업 경영권 변경 시 동일하게 엑시트(Exit)할 기회를 주고, 동일한 프리미엄을 누리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특히 제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이 기업 인수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이미 도입한 41개국에 대한 실증분석 결과, 제도 도입 이후 지배권 프리미엄이 60%에서 23%로 하락하며 주당 인수 비용은 오히려 내려갔다. 또한 전 주주를 대상으로 한 자발적 전량 공개매수가 활성화되며 사적 협상 거래 비중도 줄어들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검토 중인 '50%+1주' 공개매수 방안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지배주주로부터 지분 40%를 인수한 뒤 10%만 공개매수하는 경우, 일반주주 중 겨우 16.7%만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어 다수의 소수주주가 소외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발동 지분율을 2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의무공개매수가격 산정 기간을 과거 12개월로 길게 설정하여 지배주주의 편법 거래를 차단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한 발행주식 50% 이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개매수를 무효화하는 '인수 수락 조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획일적인 시가 규제의 틀을 깨부수는 자본시장법 개정의 의의를 확인하는 동시에, 여전히 지배주주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는 M&A 제도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참석자들은 단기적인 규제 시늉에서 벗어나,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제도적 혁신이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진정한 주주 권익 가치를 견인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