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약품 판매대행업체(CSO)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기 위한 관리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주요 제약사를 대상으로 CSO 위탁 계약 현황과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국회 역시 입법을 통해 특수관계인 간의 편법 거래와 복잡한 재위탁 구조를 차단하기 위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들을 잇달아 발의하며, 불법 리베이트 발생 가능성이 제기돼 온 의약품 유통 구조의 투명화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CSO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과는 반대로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이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상장 제약사들이 매년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판매촉진비나 지급수수료 명목으로 집행하고 있으나, 실제 이 자금이 어떤 CSO 업체로, 어떻게 흘러 들어가는지는 기업들이 제출하는 정기 공시에서는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부의 규제 고삐는 당겨졌지만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은 여전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장 제약사 CSO 비용 공시 사각지대 도식화 표. [자료=더밸류뉴스]
◆ 영업 전문조직으로 출발한 CSO…제약사 성장의 숨은 공신
의약품 판매대행업체(CSO)는 본래 제약회사가 막대한 자산과 인력이 소요되는 자체 영업조직을 운영하는 대신, 의약품 마케팅 및 판매 촉진 업무를 외부 전문 기관에 위탁함으로써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이다.
제약사는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과 고품질 의약품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고, 병·의원 및 약국을 대상으로 한 대면 영업과 마케팅은 전문성을 갖춘 외주 조직이 전담하는 분업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막대한 자금력과 대규모 영업 사원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중소·중견 제약사들에게 CSO는 시장 진입과 생존을 가능하게 유지해 준 핵심 판매망 역할을 해왔다. 고정비 성격이 강한 자체 영업사원의 인건비와 조직 유지비를 '변동비'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은 기업 경영 구조의 유연성을 크게 높였다.
제품력은 있지만 영업 기반이 취약한 제약사와, 특정 지역이나 진료과목에서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진 대행업체가 결합하며 국내 제약 산업의 외형적 성장을 견인한 숨은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순기능에도 최근 국내 제약업계의 급격한 환경 변화는 CSO 영업망의 가파른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 국내 제약 시장 특성상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이후 쏟아지는 제네릭(복제약) 간의 경쟁이 극도에 달한 데다, 특히 오는 8월 예정된 대규모 제네릭 약가 인하 기조는 제약사들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있다.
약가가 인하되면 마진율이 축소되기 때문에, 제약사들로서는 인하 조치가 단행되기 전 어떻게든 자사 제품의 처방량을 늘려 매출 볼륨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제약사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CSO시장은 이미 심각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5개 상장 제약사 연도별 지급 수수료 및 판관비 평균. [자료=더밸류뉴스]
높은 마케팅 수수료율 그 자체가 곧바로 불법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 경쟁 체제에서 효율적인 판매를 위해 높은 대가를 지급하는 것 자체는 정당한 계약 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 다만 정부가 문제 삼는 지점은 수수료의 절대적인 규모가 아니라, 그 막대한 자금이 집행되는 영업 행태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 불투명하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수십 퍼센트에 달하는 고율의 수수료가 책정되더라도 그 자금이 정상적인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의료 현장의 불법 리베이트 재원으로 전용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가 정확한 비용 집행 내역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조사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금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인지, 누가 실제 영업 행위를 수행했는지, 그리고 제약사와 대행업체 간의 거래 구조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건전한 의약품 유통 질서 확립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 신고제는 시작일 뿐…국회·복지부, 실태조사 단계로 관리 강화
과거 음지에서 운영되던 CSO를 양지에 올리기 위해 2024년 도입된 약사법 상의 'CSO 신고제(제46조의2)'는 제약업계의 판도를 바꾸는 중대한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법 제정 이후 시장에서는 규제의 그물망을 피하기 위한 변칙적인 형태의 우회로가 속속 등장하며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대표적인 것이 구체적인 영업소나 상주 인력이 전무한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유령 대행업체들이다. 이들은 오직 세금 계산서 발행과 자금 세탁 만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유통 질서를 교란했다.
CSO 영업 행태 및 관련 입법 동향 연혁. [자료=더밸류뉴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움직임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진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7332)이 대표적이다. 해당 개정안은 현행법령이 의약품 판촉영업자 신고 시 영업소 소재지를 요건으로 두면서도 정작 이를 확인할 증빙 서류 제출 의무가 없다는 점을 정조준했다. 개정안은 "1개소 이상의 영업소를 갖추는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요건과 그에 관한 증빙서류를 갖추어" 신고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실체 없는 유령 CSO의 난립을 원천 차단하고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특수관계 거래를 통한 내부거래 가능성과, 리베이트 등 위법 행위 발생 시 법적·행정적 책임을 교묘하게 분산하고 꼬리를 자르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제약사의 현직 영업사원이나 고위 임원이 자신의 배우자, 혹은 친인척 명의로 '1인 CSO'를 설립한 뒤, 소속 제약사로부터 고액의 수수료를 몰아받는 변칙 영업 사례들이 잇따라 적발됐다. 이는 기업의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통로가 될 뿐 아니라, 불법 리베이트 적발 시 제약사 본사는 "외주 업체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막이로 악용됐다.
여기에 1차로 계약을 맺은 CSO가 또 다른 하부 CSO에 영업을 재위탁하고, 그 하부 업체가 다시 3차 업체로 재재위탁하는 다단계식 '재위탁 구조'가 만연해지면서 의약품의 실제 영업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근절하기 위해 김남희·전진숙 의원안 등을 통해 강도 높은 법안을 발의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움직임은 단순한 신고제 도입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현장 감독과 사후 관리 단계로 급격히 확대·전환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CSO 종사자에 대한 의무 교육 제도가 안착했고, 위탁계약 관리 체계의 가이드라인이 한층 강화됐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주도하여 제약사와 CSO 간의 실질적인 거래 구조를 정밀 타격하기 위한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본격화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서류상의 신고 내역에 만족하지 않고, 약사법 제47조의2에 의거해 각 제약사가 체결한 위탁계약서 원본 작성 의무 준수 여부, 의약품 품목별로 상이하게 책정된 수수료율의 적정성 관리, 그리고 하부 조직으로 이어지는 재위탁 통보 체계가 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계약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겠다는 심산이다. 국회 역시 입법 기조를 통해 힘을 보태며 특수관계 거래 관리와 불법 리베이트 차단 장치를 촘촘히 구축하는 데 총공세를 펼치는 모양새다.
◆ 복지부는 계약서를 보는데…투자자는 총액만 본다
A기업 매출액 비중 및 CSO 항목 공시 자료. [자료=더밸류뉴스]
이처럼 보건당국이 제약사와 CSO 간의 계약서 조항 하나까지 현장 점검을 통해 들여다보는 엄격한 규제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정작 해당 제약사에 자금을 대고 위험을 공유하는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여전히 깜깜이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 상장 제약사들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제출하는 분기·반기·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CSO와 관련된 비용은 판매비와관리비(판관비)라는 계정 과목의 '총액'으로만 뭉뚱그려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단순 공시 체제에서는 투자자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재무적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들이 차단된다. 특정 대행업체에 대한 거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해당 CSO의 이탈이나 부실화가 제약사 매출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구조인지, 다단계 재위탁 구조가 얽혀 있어 향후 법적 리베이트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는지 등은 공시 서류의 그 어디를 찾아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보건복지부는 위탁계약서와 수수료율, 재위탁 구조를 조망하며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있는 반면, 일반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들은 재무제표 상의 단일 숫자만을 확인해야 하는 '정보 비대칭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CSO 공시 사각지대 문제가 단순한 의약품 유통망의 질서 유지나 보건 의료적 관점의 문제를 넘어 ‘주주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특정 제약사가 무리한 CSO 수수료 정책을 펼치다 당국의 적발로 과징금 처분을 받거나 품목 허가 취소, 혹은 경영진 사법 리스크로 이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금융감독원 주도의 공시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업보고서 내에 CSO 주요 거래처에 대한 집중도,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내역 및 거래 조건, 그리고 리베이트 수사를 예방하기 위한 내부통제 체계의 구축 및 가동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주식시장에 만연한 이 기형적인 '정보 비대칭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계 및 공시의 투명성 강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회계기준과 공시 규정의 대원칙인 '중요성의 원칙(Principle of Materiality)'에 의거하여,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CSO 위탁 비용에 대해서는 주석 등을 통해 세부 집행 내역을 상세히 공시하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많은 대중의 자금이 유입되고 공공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상장 제약사의 경우, 정확한 내역 공시는 기업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필수적인 의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