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대표이사 전영현 노태문) 총파업 위기가 마무리된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곧바로 대만 비공개 출장길에 오르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파업 불안에서 벗어나 기존 고객사들의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를 잠재우고, 신규 수주 확보 등 대외 경영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최종 의결된 합의안의 성과급 지급 구조를 두고 소액 주주들이 상법 위반을 거론하며 사법 대응과 기관투자자 연대를 예고하고 있어 향후 주주행동 대응이 새로운 경영 과제로 남게 됐다.
◆ 대만 찾은 이재용, 미디어텍 회동…'메모리·파운드리 통합' 협상 카드 제시
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고위 임원진을 이끌고 지난 21일 대만을 비공개로 방문해 미디어텍 본사에서 차이리싱 CEO 등 주요 경영진과 회동했다.
외신은 이번 방문이 TSMC가 과점하고 있는 미디어텍의 웨이퍼 파운드리 물량을 유치하고, 삼성의 2나노미터(nm) 이하 첨단 공정 및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 도입을 설득하기 위한 행보라고 분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1일 대만 비공개 출장길에 올라 미디어텍 본사에서 주요 경영진과 만남을 가졌다. 이에 삼성전자가 메모리 칩과 파운드리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강점을 내세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 = 더밸류뉴스 | AI 생성]
삼성전자는 메모리 칩과 파운드리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메모리 및 파운드리 통합' 모델을 협상 카드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서버 수요 급증으로 발생한 메모리 공급 부족 상황을 활용해, 안정적인 D램 및 낸드 플래시 공급을 파운드리 계약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고객사의 위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제조 비용 일부를 분담하고, 양품(결함 없는 칩)에 한정해 가격 할인을 제공하는 등 구체적인 조건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공급망 소식통은 이 회장의 이번 방문이 장기적인 포괄적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테슬라의 AI6 칩 파운드리 수주 성공과 AMD 대상 2나노 공정 홍보에 이어, 미디어텍을 차세대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나아가 미디어텍의 '디멘시티(Dimensity)'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탑재를 확대해 스마트폰 제조 비용을 절감하고, 테슬라 등 차량용 칩 공급망 협력 방안이함께 논의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출장은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의 주문 확대로 TSMC의 CoWoS(Chip-on-Wafer-on-Substrate) 첨단 패키징 생산 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시점과 맞물렸다. 미디어텍이 최근 구글의 8세대 추론용 TPU 고급 패키징 주문을 인텔에 맡기는 등 변화를 보이는 가운데 이루뤄진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 주주단체 "세전 영업이익 사전 할당은 위법"…사법 절차·연대 예고
그러나 대외적 공급망 점검 행보와 달리, 국내에서는 합의안 최종 의결 이후 주주들의 반발이 법적 분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연동하는 방식이 상법상 배당 절차를 우회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주주단체인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지난 27일 대국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잠정합의안이 사실상 세전 영업이익의 약 12%를 사전에 배분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DS 부문 특별경영성과급(영업이익의 10.5%) 신설과 초과이익성과급(OPI) 재원 변경(영업이익의 10%) 합산을 근거로 제시했다.
운동본부 측은 세전 영업이익에 일정 비율을 사전 할당하는 것은 국가의 조세 징수권을 우회하는 것이며, 상법 제462조 제1항이 규정한 배당가능이익 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장된 위법배당'이라고 주장했다. 민경권 대표는 "회사 자금의 외부 유출은 주주총회 결의사항이며, 이사회나 노사 자율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주주운동본부는 합의안 의결에 따라 무효확인 소송과 이사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대표소송 등 4대 사법 절차를 순차적으로 개시할 계획이다. 다만, 단체협약 무효확인의 소 제기 일정은 사내 타 노조인 동행노조가 26일 신청한 투표 중지 가처분 결과가 나온 이후로 조정했다.
27일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ACT)'에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 대국민 성명서가 발표됐다. [이미지=액트 화면 캡처]
주주행동의 범위도 확대된다. 운동본부는 실행 통보를 받은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바탕으로 국민연금공단 등 국내 기관투자자에게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의견 표명을 요청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할 예정이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ACT)'와 연대해 공동행동 절차도 진행한다.
주주 측은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요구가 타 산업계로 확산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민 대표는 "이 비율이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는 순간, 우리는 헌법과 상법의 기초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묵과한 세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의안 의결 이후에도 주주 측의 법적 대응과 주주 연대 추진이 구체화되면서 성과급 기준을 둘러싼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