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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김도형 기자]

우리가 삶을 보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중심에는 화폐(Currency)가 있다. 


화폐의 정의는 간단하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것은 화폐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화폐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사회에서 "그것은 화폐다"라고 인정하는 구성원들이 많아질 수록 그것은 진짜 화폐가 된다. 화폐의 실체와 형태가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원시 시대의 조개껍질이 그랬고, 지금의 비트코인(Bitcoin)을 필두로 하는 가상화폐가 그렇게 돼가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화폐는 언제 시작됐고,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가는걸까.  


◆국내 유일 우리은행 '은행사 박물관'  


이 궁금증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곳이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은행사 박물관'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회현역 1번 출구를 나오면 우리금융그룹 빌딩이 압도한다. 그 지하엔 한국의 은행과 화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은행사 박물관'이 있다. 


우리은행이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은행사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배경에는 우리은행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99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족 은행 ‘대한천일은행’이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은행사 박물관은 2003년 착공됐고 2004년에 본격 개관해 올해로 17년째 운영 중이다.


서울시 중구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입구. [사진=더밸류뉴스]

웅장한 배경 음악이 나오는 전시실 게이트를 지나면 커다란 조선시대 풍속화(風俗畵)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림 제목은 '시장도(市場圖)'. 조선 후기 시장의 장날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 엿 장수, 달걀 장수,  방물 장수들이 이런저런 물건을 판매하고 있고, 옹기전, 대장간, 어물전이 보인다. 풍속화가 이서진이 그렸다. 


이서지, ‘시장도’. [사진=더밸류뉴스]

이런 저런 물건을 놓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흥정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들은 어떤 교환수단을 사용했을까. 


이 궁금증은 바로 옆 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상평통보, 당백전, 주판 등 19~20세기 초반 근대은행 출현 당시 쓰던 화폐가 나오고, 일제시대의 금융조합 안내 전단, 20세기 중후반 수표 발행기, 고객 순번표 등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시 중구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전시품. [사진=더밸류뉴스]

◆상평통보, "이것은 화폐다" 어명(御名)으로 광범위하게 유통


상평통보는 18~19세기 상공업의 발전을 배경으로 조선 전역에서 교환수단 역할을 했던 국가공인화폐다. 조선 19대 국왕 숙종(1661~1720) 시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돼 고종(1852~1919) 시대까지 200여 년 동안 사용됐다. 


숙종은 세금을 쌀이나 면포로 받는 것이 번거롭고 중간 유실이 많아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어느 날 구리와 주석을 섞어 지름 2.6㎝의 동그랗고 납작한 금속을 만들고 '常平通寶'(상평통보)라는 한자를 새겼다. 그리고 나서 선언했다. 


"이것은 화폐다." 


상평통보. 

숙종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화폐다'라는 자신의 선언을  당대의 모든 구성원들이 인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앞서 언급한 '화폐의 정의'를 생각해보라). 상평통보의 ‘상평’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준말로, ‘항상 균등한 가치’를 지니는 화폐란 의미다.


이밖에도 이 공간에는 근대은행의 시작부터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을 지나 우리가 사는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의 은행 행보과 역사를 쉽게 알 수 있는 글, 전시품, 비디오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서울시 중구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내부. [사진=더밸류뉴스]

◆비트코인, NFT도 화폐로 등극


이제 화폐는 다시 한번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화폐는 지폐나 동전 같은 눈에 보이는 실체였지만 이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머릿속에서 숫자로만 인식되는 추상물로 변화했다. 


비트코인을 필두로 하는 가상화폐도 당당히 화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도 화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그것은 화폐다"라고 인정할 때의 '그것'은 도대체 어디까지 허용되는걸까? 


'투가 대가' 워렌 버핏은 올해 초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미팅에서 "비트코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역겹다"고 답변했다. 이달초 버핏의 평생 동반자 찰스 멍거는 다시 한번 "암호화폐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독설을 날렸다. 


버핏과 멍거의 예측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혜안이었음이 드러나곤 했다. 버핏과 멍거가 이번에는 틀린걸까? 아니면 두 사람의 예측이 혜안이었음이 밝혀지는 시기가 아직은 오지 않았을 뿐인 걸까?


서울시 중구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내부. [사진=더밸류뉴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은 아이들과도 함께 가볼 만한 곳이다. 내부를 모두 둘러보는 데엔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매주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돼 있다. 입장료 무료. 관람 시 우리은행 본점 지하주차장 무료 주차 1시간.


moldaurang@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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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18 19: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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