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연구개발(R&D)부터 제조, 정비, 고객 대응까지 인공지능(AI) 활용 범위를 넓히며 전사 AI 전환(AX)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충돌시험 자료 검토 시간을 약 90% 단축하고 제조 현장에서 연간 52억4000만원의 비용을 줄이는 등 AI 도입 효과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12일(수)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왼쪽 두번째부터) 장영석 현대차 제네시스고객경험팀 책임매니저,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 이상홍 정보보안2실 상무, 서창윤 웹프론트엔드개발팀 책임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Beyond AI, Transforming the Way We Work)’를 열고 2019년부터 추진해 온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 과정, 주요 성과 및 향후 계획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AI 도입에 앞서 업무와 데이터를 연결하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다. 2022년부터 업무 관리 플랫폼 지라(JIRA)와 두레이(Dooray), 지식 공유 플랫폼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순차 도입했고, 마이크로소프트 365(Microsoft 365)를 활용해 글로벌 사업장의 협업 환경도 통합했다.
연구개발, 생산, 품질, 판매 등에 분산돼 있던 데이터는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Global One Data Pipeline)’을 통해 연결했다. 개발 단계에서 생성된 정보를 생산과 품질 관리에 활용하고 판매 현장의 데이터를 다시 제품 개발과 공정 개선에 반영하는 구조다.
이 같은 DX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에이치 챗 프로(H Chat Pro)’를 전사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임직원은 보안 환경에서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 클로드(Claude) 등 복수의 생성형 AI 모델을 선택해 문서 작성과 데이터 분석, 정보 검색, 코드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지난 7월 기준 H Chat Pro 사용자는 3만명을 넘어섰다. 현대차·기아 일반직과 연구직 임직원의 약 80% 수준이다. 최근에는 개발자가 아닌 현업 직원이 직접 AI 에이전트(AI Agent)를 만들어 업무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충돌시험 자료 검색·분석 90% 단축…AI 제조 솔루션 글로벌 70개 거점 적용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를 활용해 수십 년간 축적된 차량 충돌시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검색·분석하고 있다.
12일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류석문 현대오토에버 대표가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실습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과거에는 충돌시험 결과와 이미지, 해석 자료 등이 여러 시스템에 나뉘어 있어 엔지니어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AI 도입 이후에는 시험 조건과 차량 구조, 상해 원인, 개선 사례 등을 함께 검색·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사례 탐색과 분석자료 검토 시간이 약 90% 줄었다.
제조 분야에서는 비전 AI 기반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를 국내외 생산라인에 적용했다. 생산라인 카메라가 차량 식별번호(VIN)를 자동으로 인식한 뒤 시스템에 등록된 차량 정보와 실시간 비교하는 방식이다.
현재 국내 현대차·기아 전 공장을 비롯해 미국, 유럽, 인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등 글로벌 생산거점 약 70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회사 측이 집계한 연간 비용 절감 효과는 52억4000만원이다.
생산라인 부품 공급 대차의 이동 경로를 AI로 계산하는 ‘대차 정렬 최적화 기술’도 도입했다. 기존 탐색 알고리즘에 강화학습 AI를 결합해 설비 오류 등으로 대차 순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최적 복구 경로를 자동으로 찾도록 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생산 중단 시간을 약 86% 줄였다.
현대차그룹은 제조 특화 AI 플랫폼 ‘이포레스트: 폴라리스(E-FOREST: POLARIS)’도 운영하고 있다. 품질, 생산, 설비, 물류 분야의 현업 엔지니어가 자신의 업무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에이전트를 직접 제작하고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정비 대응 42% 단축…고객 리뷰 처리시간 35분→5분
서비스 영역에서도 AI 적용에 따른 업무시간 단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해외 정비 현장에 도입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정비 지원 AI 서비스’는 차량 오류 코드나 증상을 입력하면 관련 정비 매뉴얼과 과거 기록을 분석해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서비스 도입 이후 정비 대응시간은 약 42% 단축됐다.
고객 리뷰 대응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등록되는 고객 리뷰를 AI가 분석·분류하고 답변 초안을 작성하는 방식이다.
12일 양재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Beyond AI, Transforming the Way We Work)’에서 현대차·기아 ICT담당 진은숙 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기존 평균 35분이던 리뷰 한 건당 처리시간은 약 5분으로 줄었다. 현재 전체 고객 리뷰의 85% 이상이 AI 기반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오는 9월부터 전체 리뷰 대응 프로세스를 자동화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현재의 사무·연구·제조 업무 AX를 차량과 로보틱스, 제조시설 등 물리적 환경과 AI를 결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영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그룹 내부에서 확보한 AX 경험을 활용해 국내 중소기업의 AI 전환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은 “AI는 중요한 기술이지만 결국 기업이 활용해야 하는 도구”라며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하고 업무와 사업에 적용해 조직 경쟁력으로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의 목표는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며 “AX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와 운영 경험, 실행 역량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