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 공급에 아직 심각한 차질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가격이 폭등했다. 아무리 돈이 마귀라고 하지만 너무 심한 것 같다.”
이란 전쟁 발발로 국제 유가가 들썩이면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일찌감치 오르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 산지 가격이 오르자마자 소비자 가격에 곧바로 반영되는 상황이 과연 정상이냐는 질타였다.
국민 입장에서는 속 시원한 지적이었다. 늘 체감해온 불만을 최고 권력자가 대신 말해준 장면이었다. 그러나 감정을 앞세운다고 합리적 정책이 수립되지는 않는 법이다. 최고 권력자의 발언은 시장에 보내는 비상 신호나 다름없고, 그때부터 시장 원리는 호흡을 멈춘다.
국제 유가 상승이 유발하는 다양한 원인을 제쳐두고 국내 유가 급등의 원인을 ‘탐욕’으로 지목하면 시장은 올바른 신호를 잃고 다른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가게 된다. [이미지=더밸류뉴스|AI생성]
◆ 가격은 ‘탐욕’이 아니라 ‘예상’을 반영한다
유가는 전형적인 글로벌 가격이다. 중동 정세, 해상 운송 리스크, 환율, 재고 수준이 동시에 작용한다. 주유소 가격 역시 단순히 오늘 들여온 기름값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이미 확보한 재고, 앞으로 들어올 물량의 예상 가격, 환율 변동이 함께 반영된다.
특히 전쟁과 같은 충격 국면에서는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가격에 선반영된다. 이를 두고 ‘이상하다’거나 ‘비정상’이라고 규정해 버리면, 시장 원리는 뒤틀리기 시작한다. 시장에서 가격이란 여러 신호들의 종합적 결과다. 그 신호들을 억지로 누르면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이동한다.
‘탐욕’이라는 지적을 앞세우면 정책은 자연스럽게 가격 통제로 향한다. 실제로 대통령 발언 이후에 ‘최고가격제’ 같은 유가 개입 조치가 뒤따랐다. 그러나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은 언제나 비슷한 경로를 밟는 것이 상례다. 처음에는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소비가 늘고 공급이 위축된다.
지난 2021년 헝가리는 연료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뒤 소비가 급증하고 결국 공급 부족을 견디지 못해 제도를 폐지했다. 과거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가격 통제 이후 주유소 앞 대기 줄과 암시장을 동시에 경험했다. 공식 가격은 낮았지만 실제 거래 가격은 더 높아지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가격을 낮춘다고 부담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권력자의 발언 자체다. 대통령이 특정 산업이나 유통 단계를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하면 시장은 순식간에 위축된다. 주유소는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정유사는 유통망을 조정한다. 기업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급을 줄인다. 즉, 가격은 시장 원리가 아니라 ‘눈치’로 결정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가격은 더 이상 정보들의 총합이 아니라 왜곡된 신호가 된다. 문제가 장기화해 공급이 줄어들면 결국에는 가격이 더 큰 폭으로 튀어 오른다. 정책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악순환 구조다.
◆ 반복되는 시장 개입의 역사, 같은 방식과 같은 결과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역대 정치 지도자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 문제를 다뤄왔다. 미국의 닉슨은 물가 상승을 ‘기업의 가격 인상 탓’으로 돌리며 임금·가격 동결 정책을 단행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공급 왜곡과 생산 감소를 초래했고 결국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며 강력한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초기에는 지지율이 올랐지만 이후 생필품 부족과 초인플레이션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책임을 외국 기업에 돌리고 국유화를 추진했지만 투자 급감과 생산성 저하를 피하지 못했다.
미국의 트럼프는 SNS를 통해 특정 기업의 가격 정책을 직접 비판하며 압박했다. 일부 기업이 가격 인상을 철회하는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시장 구조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만 떨어뜨렸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역시 물가 상승의 책임을 유통업자에게 돌렸지만 공급 구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사례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복잡한 경제 문제를 단순하게 ‘누군가의 잘못’으로 바꾸고, 그 누군가를 공개 저격하는 ‘희생양 만들기’ 방식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시장 왜곡과 더 큰 비용으로 돌아왔다.
그래프의 세로선은 정부의 유가 안정 조치가 본격화된 시점을 나타낸다. 그러나 가격 흐름 자체는 정책 이전에 이미 형성된 상승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는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프=더밸류뉴스]
◆ ‘국민 소통’인가 ‘포퓰리즘적 프레이밍’인가
이런 방식은 흔히 ‘국민 소통’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포퓰리즘적 프레이밍’에 가깝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가해자’를 설정하고, 정치 지도자는 그 가해자를 응징하는 심판자 위치에 선다.
이재명 대통령의 주유소를 향한 질타는 강력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사이다 발언’이라는 호응을 이끌어내며, 국민 편에 선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합리적 정책은 장면이나 이미지로 설계될 수 없다. 속시원한 장면은 대중의 무지에 기대어 지지율을 높인다. 하지만 그런 장면 때문에 비틀어진 정책은 결국 후유증을 낳기 십상이다.
가격을 통제하면 당장은 부담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용이 다른 모습으로 전이될 뿐이다. 정부 재정으로 이전되거나, 공급 부족으로 나타나거나, 훗날 더 큰 가격 상승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이를 억지로 짓누르면 왜곡이 연쇄적으로 확산된다. 물가는 다른 경로로 상승하고 재정 부담은 더 커진다. 시장의 신뢰는 약해진다. 결국 국민이 체감하는 비용은 오히려 더 커지게 된다.
정치가 멋진 장면을 만들진 몰라도, 경제는 오직 결과로 답할 뿐이다. 주유소를 향한 ‘탐욕’ 프레이밍으로 잠시 기분이 후련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정치적 호통이 시장을 흔들 때마다 그 비용은 보이지 않게 쌓여간다.
중요한 것은 ‘누가 탐욕덩어리냐’가 아니라 ‘무엇이 원인인가’다. 사이다 맛에 취해 이런 질문을 망각하면, 정책은 냉엄한 경제 현실이 아니라 ‘포퓰리즘적 프레이밍’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뒤늦게, 그러나 더 크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