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에 개인투자용 국채가 들어온다. 그동안 개인투자용 국채 전용계좌를 통해 투자하던 것에서 나아가 금일(9일)부터 DC(확정기여형)와 IRP(개인형퇴직연금) 계좌에서도 10년물과 20년물을 직접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번 제도 도입을 통해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 선택권을 확대하고 국채 수요 저변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계좌를 통한 개인투자용 국채의 첫 청약은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5영업일간 진행된다. 청약 시간은 영업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왼쪽부터) 한국투자증권 김도현 전무, 한국예탁결제원 고진성 상임이사, 삼성증권 장효선 상무, NH농협금융지주 홍순옥 부사장, 하나은행 조영순 부행장, 한국예탁결제원 이윤수 사장, 재정경제부 허장 제2차관, 고용노동부 서명석 근로기준정책관, 미래에셋증권 허선호 대표이사, NH투자증권 정환 상무, KB증권 송상은 전무, 신한은행 이재규 부행장, 한국예탁결제원 김민수 전무, 재정경제부 허승철 국고정책관. [사진=한국예탁결제원]
◆ DC·IRP로 국채 직접 산다…10·20년물 첫 편입
개인투자용 국채는 매입 자격을 개인으로 한정해 소액 단위로 발행하는 저축성 국채다. 지난 2024년 6월 처음 발행됐다. 최소 10만원부터 청약할 수 있으며 만기까지 보유하면 표면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금리를 기준으로 연복리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다.
정부는 올해 9월부터 DC형과 개인형 IRP 계좌에서 개인투자용 국채 10년물과 20년물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했다. 일반 국민이 퇴직연금 계좌를 통해 개인투자용 국채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C형과 IRP는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에 참여하는 구조다. 반면 DB(확정급여형)는 사용자가 적립금 운용 책임을 지는 제도로 이번 개인투자용 국채 직접 투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NH투자증권이 퇴직연금 개인투자용 국채 첫 청약을 시작한다. [사진=NH투자증권]
제도 도입 초기에는 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 등 은행 3곳과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 증권사 5곳이 참여한다. 이들 금융회사에 DC 또는 IRP 계좌를 보유한 가입자가 퇴직연금계좌를 통해 개인투자용 국채를 청약할 수 있다. 정부는 향후 참여 금융기관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9월 개인투자용 국채의 전체 발행 규모는 2300억원이다. 전월 1500억원보다 800억원 늘었다. 정부는 퇴직연금형 개인투자용 국채 도입에 따른 수요 등을 반영해 발행 규모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종목별 발행한도는 3년 이표채 20억원, 3년 복리채 30억원, 5년물 500억원, 10년물 1100억원, 20년물 650억원이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계좌에서 매입할 수 있는 종목은 10년물과 20년물이다.
10년물과 20년물 발행한도를 합하면 1750억원이다. 다만 1750억원 전체가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별도로 배정된 물량은 아니다. 재경부가 발표한 9월 개인투자용 국채의 종목별 전체 발행한도다.
청약은 최소 10만원부터 10만원 단위로 할 수 있다. 청약 총액이 월간 발행한도 이내면 청약액 전액을 배정하고, 한도를 넘으면 정해진 기준금액까지 우선 배정한 뒤 잔여 물량을 청약액에 비례해 배정하는 방식이다.
◆ 20년물 연 4.920% 복리…만기 세전수익률 161.31%
이번 9월 발행분의 특징은 10년물과 20년물에 각각 0.350%p의 가산금리가 붙는다는 점이다.
10년물 표면금리는 연 4.415%로 여기에 0.350%p의 가산금리를 더하면 만기보유 시 연 4.765%를 기준으로 복리 이자가 적용된다. 20년물은 표면금리 연 4.570%에 가산금리 0.350%p를 더한 연 4.920%를 기준으로 복리 계산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세전 기준 총 만기수익률은 10년물이 약 59.28%, 20년물이 약 161.31%다. 단순히 1000만원을 투자해 만기까지 보유한다고 가정하면 세전 기준 10년물은 약 1592만8000원, 20년물은 약 2613만1000원을 받는 계산이다.
다만 20년물의 161.31%는 연간 수익률이 아니라 20년 전체 기간에 대한 세전 누적수익률이다. 실제 만기보유 시 복리 계산에 적용되는 금리는 연 4.920%다. 10년물의 59.28% 역시 연 4.765%를 10년 동안 복리 적용한 누적수익률이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만기일에 원금과 이자를 일괄 지급한다. 정부는 국채 수요를 다변화하고 개인의 안정적인 장기 자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개인투자용 국채를 도입했다. 퇴직연금계좌를 통한 직접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장기 운용을 원하는 DC·IRP 가입자의 상품 선택 범위도 넓어지게 됐다.
정환 NH투자증권 연금자산관리본부 본부장은 “개인투자용 국채는 퇴직연금의 장기 운용 특성과 부합하는 대표적인 장기 투자상품”이라며 “예금 중심의 안정적 운용에서 나아가 고객들이 투자기간과 은퇴 시점에 맞춰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연금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상품 선택의 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퇴직연금 501조 돌파…중도환매 땐 가산금리·복리 사라져
개인투자용 국채의 퇴직연금 편입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선 시점에 시작된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 말 431조7000억원보다 약 70조원 증가했다. 증가율은 16.8%로 퇴직연금 적립금은 400조원을 넘어선 지 1년 만에 500조원을 돌파했다.
제도 유형별로는 가입자가 운용에 참여하는 DC와 IRP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54.3%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24.6%로 집계됐으며 ETF 투자금액은 48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확대되고 가입자의 직접 운용 비중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용 국채가 장기 운용 상품군에 새롭게 추가된 셈이다.
다만 개인투자용 국채는 장기 보유를 전제로 설계된 만큼 중도환매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원칙적으로 매입 1년 후부터 중도환매를 신청할 수 있다. 중도환매 때는 만기보유 시 제공되는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이 적용되지 않고, 보유기간에 대해 표면금리를 단리로 적용한 이자를 원금과 함께 받는다.
이에 따라 이번 20년물을 중도환매하면 만기보유 시 적용되는 연 4.920%의 복리 구조가 유지되지 않고 가산금리 0.350%p를 제외한 표면금리 연 4.570%를 기준으로 단리 이자가 지급된다. 10년물 역시 중도환매 시 연 4.415%의 표면금리를 기준으로 단리 이자가 적용된다.
장기간 보유할수록 복리 효과가 커지는 상품 구조인 만큼, 결국 성패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과 투자기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중도환매 시 가산금리와 복리 혜택이 사라지는 만큼 단순히 높은 만기수익률만 보고 접근하기보다 장기 자금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 퇴직연금형 개인투자용 국채 청약이 시작되면서 정부가 내세운 운용 선택권 확대가 실제 장기자금 유입으로 이어질지도 관전 포인트다. 초기 청약 수요는 향후 개인투자용 국채가 퇴직연금 내 장기 운용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