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가 2026년 신년사에서 꺼낸 한 단어는 'TRUST(신뢰)'였다. 고객과의 약속, 문제를 드러내는 용기, 구성원 간 연대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7개월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LG유플러스가 개인정보 유출 조사 착수 전에 관련 서버 운영체제를 재설치하거나 서버를 폐기해 사실 확인을 어렵게 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취임 첫해 매출 15조원을 넘기고 2026년 1분기 이익 성장도 이어졌지만, 그가 내건 '신뢰'가 가장 엄격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더밸류뉴스∙AI생성]
◇ 홍범식 대표는…
△1968년생(58) △서울 여의도고·미 서던캘리포니아대(경영) 졸업 △미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 △모니터그룹코리아 파트너 △SK텔레콤 신규사업개발그룹장·상무(2007) △올리버와이만 한국대표(2009) △베인앤드컴퍼니 아태 정보통신·테크놀로지부문 대표(2011~2014)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대표·글로벌디렉터(2014~2018) △㈜LG 경영전략팀장 사장(2018.11~2021) △㈜LG 경영전략부문장 사장(2021~2024.11)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2024.12~현재)
◆ 매출 15조 돌파·영업익 3년 만에 반등…마진은 아직 5%대
홍범식 대표 취임 직전인 2024년 LG유플러스의 연결 영업수익은 14조6252억원, 영업이익은 8631억원이었다. 차세대 전산망 구축과 일회성 인건비 탓에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3.5% 줄며 2년 연속 감소한 상태였다. 2025년 영업수익은 15조4517억원으로 5.7% 늘었고 영업이익은 8921억원으로 3.4% 증가해 3년 만에 반등했다. 당기순이익은 LG헬로비전 자산손상차손의 기저효과로 61.9% 늘어난 5092억원을 기록했다.
LG유플러스 연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겉으로 보이는 영업이익 증가율만으로 홍 대표의 첫해를 평가하면 성과를 과소평가할 수도, 과대평가할 수도 있다. 회사는 2025년 3분기에 희망퇴직 비용 1500억원을 한꺼번에 반영했다. 이를 제외하면 연간 영업이익은 단순 계산으로 약 1조421억원, 전년보다 약 20.7% 늘어난다. 반대로 공시 영업수익 기준 영업이익률은 2024년 5.9%에서 2025년 5.8%로 소폭 낮아졌다. 1조원대 조정 이익은 비용 구조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약 600명으로 알려진 인력 감축의 사회적·조직문화 비용까지 지운 숫자는 아니다. 이러한 인건비 관련 시장의 관심에 대해 사측은 "시장에 별도의 비용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희망퇴직은 정기적 시행이 아닌 만큼 현재 계획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년 1분기는 비용 절감만이 아닌 본업 성장도 확인시켰다. 영업수익은 3조803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영업이익은 2723억원으로 6.6%, 순이익은 1760억원으로 8.4% 늘었다. 영업수익 기준 영업이익률은 7.2%이고, 회사가 제시한 서비스수익 대비 이익률은 9.0%다. 모바일 서비스수익이 3.7%, 스마트홈 수익이 4.1%, 기업인프라 수익이 6.3% 증가했다. 다만 임기 전 시작된 네트워크·데이터센터 투자와 전임 경영진의 상품 기반도 성장에 기여한 만큼 모든 반등을 새 대표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익시오와 AIDC '투 트랙'…돈은 소프트웨어보다 인프라에서 먼저
홍 대표가 제시한 방향은 통신사를 'AI 중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바꾸는 것이다. 소비자 영역에서는 AI 통화 에이전트 '익시오(ixi-O)', 기업 영역에서는 데이터센터·클라우드·플랫폼·AICC를 묶은 '엔터프라이즈 AI 풀스택'을 양축으로 삼았다. 익시오는 출시 1년여 만에 이용자 100만명을 넘겼고, 2026년에는 말레이시아 통신사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의 첫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감정과 맥락을 읽는 '익시오 프로'로 고도화해 해외 통신사에 판매하겠다는 구상이다. 익시오는 지난해 12월 기준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초기 안착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월 말레이시아 맥시스(Maxis)와 상용 출시에 합의한 데 이어, 현재 동남아시아와 유럽 통신사들을 대상으로도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지난 6월 5일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LG유플러스 파주 AI 데이터센터 공사 현장의 모습이다. 공정률 약 20%를 기록 중인 공사 부지에서 대형 크레인 5대가 자재를 옮기고 있다. [사진=LG유플러스]
현재 숫자로 더 선명한 성과는 소프트웨어보다 AI 데이터센터(AIDC)에서 나온다. 2025년 AIDC 매출은 4220억원으로 18.4% 늘었고, 2026년 1분기에는 1144억원으로 31.0% 증가했다. 기존 코로케이션에 고객 데이터센터를 설계·구축·운영하는 DBO 매출이 더해진 결과다. 2027년 준공 예정인 파주 AIDC는 그룹의 냉각·배터리·정보기술 역량을 결합해 장기 성장축이 될 수 있다. 통신 본업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AI 인프라 수요와 연결한 판단은 컨설턴트 출신 전략가다운 선택이다. 특히 AIDC 사업은 고객사를 먼저 확보한 뒤 부지를 마련해 단계적으로 증설하는 업계 특성이 작용한다. 파주 AIDC 역시 내년 준공될 1동의 사전 입주 계약을 전량 완료하며 시장의 수요를 선점하고 있다.
그러나 'AI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간판은 아직 매출로 더 증명해야 한다. 2026년 1분기 기업인프라 가운데 AIDC는 급성장했지만 솔루션 수익은 0.8%, 기업회선 수익은 0.1% 감소했다. 익시오도 이용자 확대와 해외 계약이 유료 수익으로 얼마나 전환됐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확보와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하고, 생성형 AI 투자 사이클이 꺾이면 가동률 위험도 커진다. 홍 대표의 다음 성적표는 'AI를 한다'가 아니라 AI 소프트웨어가 통신 이익률을 실제로 얼마나 높였는지가 돼야 한다.
◆ 보안을 기본기라 했지만…서버 폐기 수사·익시오 정보 노출
홍 대표는 취임 직후 품질·안전·보안을 '기본기'로 규정하고 첫 현장경영도 대전 R&D센터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2025년 미국 보안 전문지의 의혹 제기 뒤 정부 조사에서는 LG유플러스의 통합 비밀번호 관리시스템(APPM)에서 관리하던 임직원·협력사 이름과 계정 등이 포함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는 관련 APPM 서버와 네트워크 경로의 주요 서버가 운영체제 재설치 또는 폐기돼 정확한 침해 경위와 추가 유출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 12월 조사 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2026년 봄 LG유플러스 사옥을 압수수색했다. 여기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지난 7월30일 서버 운영체제 재설치와 폐기로 조사 착수 전 증거를 없앴다고 판단해 별도로 수사를 의뢰했다. 회사는 경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형사책임 여부는 수사와 사법 판단의 몫이지만, 기간통신사가 사고 원인을 보존하고 투명하게 설명할 의무를 다했는지는 CEO가 피할 수 없는 경영 책임이다.
핵심 AI 서비스의 운영 사고도 뼈아프다. 2025년 12월 익시오 개선 작업 중 캐시 설정 오류로 고객 36명의 통화 상대방 전화번호·통화 시각·통화내용 요약이 다른 이용자 101명에게 일시 노출됐다. 회사는 고객 신고 뒤 약 30분 만에 차단하고 법정 기한 안에 자진 신고했지만, '안심 지능'을 내세운 서비스에서 민감한 통화 요약이 새어나간 사실은 기술보다 운영 통제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2023년 약 30만건 개인정보 유출로 68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전력까지 고려하면 보안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이사회·인사·예산을 관통하는 최우선 지표가 돼야 한다.
2025년 LG유플러스 정보보호공시. [자료=KISA l AI 이미지 생성]
실제로 회사가 공시한 2025년 기준 정보보호 현황에 따르면, 전체 IT 투자액(약 1조2604억원) 중 정보보호 부문 투자액은 약 966억원(7.7%) 규모다. 정보보호 전담 인력은 내·외주를 합쳐 351.3명으로 전체 IT 인력의 7.0% 수준이다. 현재 임원급인 정보보안 센터장이 CISO(정보보호최고책임자)와 CPO(개인정보보호책임자)를 겸직하며 관련 사안을 총괄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ZTA) 기반 보안 체계 구축, 개인정보 처리시스템 오남용 모니터링, AI 기반 불법 스팸 대응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30년 전 사진 꺼낸 '트리거 CEO'…직원 성장과 구조조정 사이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가 취임 100일 타운홀미팅에서 별도 사회자와 대본 없이 구성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LG유플러스]
홍범식 대표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여의도고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받았다. 모니터그룹, SK텔레콤, 올리버와이만을 거쳐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대표와 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테크놀로지부문 대표를 지냈다. 2018년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외부에서 영입한 뒤 지주사 경영전략을 총괄하며 성장동력 발굴과 인수합병을 맡았다. 통신 현장 출신은 아니지만 통신사를 고객으로 전략을 짜고 SK텔레콤에서 신사업을 맡은 경험이 있다.
취임 100일 타운홀은 그의 업무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별도 사회자와 대본 없이 90분 동안 직원 질문을 받았고, 30년 전 자신의 사진을 꺼내 청년 시절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는 조직 성장에는 동기(Motivation), 역량(Ability), 계기(Trigger)가 필요하며 CEO의 역할은 구성원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성장에 기여한 CEO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컨설턴트식 지표 경영에 소통을 더하려는 모습이다.
그 말은 1500억원을 들인 희망퇴직과 충돌한다. 비용 절감이 2026년 이익에 도움돼도 남은 직원이 이를 성장의 계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실행력은 약해진다. 홍 대표가 2026년 핵심 가치로 정한 TRUST에는 '문제를 드러내는 용기'가 포함됐다. 서버 재설치·폐기를 누가 결정했고 CEO가 언제 보고받아 어떤 보존 조치를 지시했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 먼저다. 홍범식호의 다음 성적표는 '신뢰를 말했는가'가 아니라 '불편한 사실 앞에서도 신뢰를 지켰는가'로 매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