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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칼럼] 50년 반복된 중동 위기...70% 의존도 한국 에너지 안보의 민낯

- 호르무즈 봉쇄 위기에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1970년대 오일쇼크 데자뷔

- 중동 의존도 85%→60%→70%...10년 주기 '구호뿐인 다변화' 되풀이

- 중질유 설비·장기계약·탈탄소 딜레마...구조적 함정에 갇힌 에너지 전환

  • 기사등록 2026-03-30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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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수연 선임기자]

한국 에너지 안보가 1970년대 오일쇼크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있다.

3월 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사실상 봉쇄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정부는 지난 13일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긴급 도입했다. 정유사 공급가 기준 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으로 상한이 정해진 뒤 첫 주 가격 하락 효과가 나타났지만, 지난 26일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을 반영해 상한을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동시에 유류세 인하폭도 휘발유 7%에서 15%, 경유 10%에서 25%로 확대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겉으로는 정부의 신속한 위기 대응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에너지 구조의 고질적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다.

[박수연 칼럼] 50년 반복된 중동 위기...70% 의존도 한국 에너지 안보의 민낯한국 에너지 안보가 1970년대 오일쇼크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3월 현재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 LNG의 20% 안팎을 중동에서 조달한다.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액은 753억 달러, 이 중 중동 비중은 68.8%다. 10년 전인 2016년 85.2%에 비하면 낮아진 수치지만, 2021년 59.5%까지 떨어졌던 의존도가 다시 70% 선으로 반등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50년 전 1차 오일쇼크 당시에도, 30년 전 걸프전 당시에도, 정부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외쳤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갈 때마다 중동 의존도는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금 우리는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함정 앞에 다시 서 있다.


◆ 중질유 설비·장기계약·탈탄소...삼중 함정에 갇힌 에너지 전환


한국이 중동 원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중질유 설비'라는 물리적 제약이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찌꺼기가 많고 황이 섞인 중질유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 중질유를 정제하는 '고도화 설비'를 구축해왔다. 중질유를 수입해 휘발유와 경유로 정제한 뒤 국제 시세에 맞춰 수출하는 구조가 한국 정유산업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물류 체계도 중동산 원유에 최적화됐다. 중동에서 아시아로 오는 초대형 유조선(VLCC) 노선은 한국·일본 등 자원 없는 아시아 국가들의 '규모의 경제'를 형성했다.


반면 미국산 WTI나 유럽산 브렌트유는 가볍고 깨끗한 경질유지만 가격이 비싸다. 미국산 원유를 늘리려면 기존 중질유 정제설비를 경질유 처리용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설비 교체에만 수조 원이 소요된다. 그러나 정부와 산업계 모두 탈탄소·탈화석연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유업계가 거액을 투입해 설비를 뜯어고칠 경제적 유인은 없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탈탄소가 대세인 상황에서 정유업계도 기존 중동산 원유에 맞춘 생산 설비를 큰돈을 들여 뜯어고칠 경제적 요인이 부족하다"며 "이런 상황에선 원유 다변화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제약은 장기계약 구조다. 한국과 중동 산유국 간 원유 도입 계약은 대부분 장기계약 형태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고, 오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재편되면서 아시아 정유사들은 중동 산유국과 계약기간을 통상보다 연장했다.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결과다.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동 원유는 물류비용이 가장 저렴하고 국내 정유시설도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맞춰 설계돼 있어 미국산 경질유를 단기간에 확대하기 쉽지 않다"며 "원유 계약 자체가 장기 계약 중심이기 때문에 수입 구조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수연 칼럼] 50년 반복된 중동 위기...70% 의존도 한국 에너지 안보의 민낯한국 원유 수입 중동 의존도 추이. [자료= 한국석유공사,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정부는 2015년부터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를 운영하며 연간 1700억 원 규모의 환급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의존도는 여전히 70% 안팎을 유지한다. 당초 2024년 12월 일몰 예정이었던 이 제도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에도 내년 12월까지 3년 연장됐다. 미국산 원유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도 변수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어려운 한국과 달리, 중국·인도·터키는 할인된 가격에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도입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산유국조차 재수출 차익을 노려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동산 원유 비중은 시장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다. 중동산 비중은 코로나19 시절인 2021년 59.8%까지 떨어졌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 67.4%, 2023년 1분기 70.2%로 반등했다. 위기 때마다 다변화를 외치지만, 위기가 지나면 다시 중동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 208일분 비축유와 석유 최고가격제...'시간 벌기'에 불과한 단기 처방


정부는 약 208일분에 해당하는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어 단기적인 공급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현재 비축 수준으로 수개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수치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에 따른 환산치로, 실제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소비 속도를 고려하면 체감 가능한 가용 기간은 이보다 짧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3일부터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제 역시 단기적으로 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였다. 산업연구원은 “소비자 부담 완화 측면에서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장기 부작용을 경고한다.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2~3주의 시차가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시장 왜곡과 공급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정유사 손실 보전 문제, 민간 정유사의 수입 축소 가능성, 가격 통제 장기화에 따른 투자 위축 등이 우려된다. 산업연구원은 "한시적 운영을 전제로 다양한 정책과의 패키지 접근을 통해 시장 안정성과 정책 효과를 동시에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비축유와 가격 통제가 모두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은 "고유가는 에너지 수입국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이 한국 경제의 중추인 상황에서, 고유가는 제조업 원가 상승과 수출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재생에너지와 원전도 딜레마를 안고 있다. 정부는 중동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원전 이용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5기 재가동을 5월까지 추진하는 등 총 19기 가동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지만, 원전 건설에는 10년이 소요되고 정치 상황에 따라 '탈원전'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재생에너지는 중국 의존도라는 새로운 함정을 안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풍력 발전·전기차 등에 투입되는 영구자석형 희토류 공급망의 94%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은 중동 원유에서 중국 광물로 의존 대상만 바꾸는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박수연 칼럼] 50년 반복된 중동 위기...70% 의존도 한국 에너지 안보의 민낯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후 주유소 가격 변화(3월 27일 가격은 2차 최고가격(1934/1923원) 기준). [자료= 한국석유공사, 산업통상자원부]



◆ 50년 구호를 넘어 구조 수술로...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


한국은 지금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 중동 위기는 반세기 동안 미뤄온 구조 개혁을 더 이상 지연할 수 없다는 경고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재생에너지 확대, 원전 재가동은 모두 필요한 조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 경제가 에너지를 쓰는 방식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다.

첫째, 정유설비 전환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 정유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조 원 규모의 설비 교체 비용을 정부가 일부 분담하거나, 세제 혜택·저리 융자 등으로 지원해야 한다. 탈탄소 기조와 에너지 안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국가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비용을 분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중동 외 지역과의 전략적 에너지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캐나다·호주·브라질·가이아나 등 비OPEC 산유국과 장기 계약을 확대하고,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 신흥 산유지역 개발 프로젝트에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7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4년간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이러한 전략적 계약을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재생에너지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유럽연합·미국·일본 등과 협력해 희토류·배터리 광물의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한국 기업의 광물 자원 개발 투자를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이 새로운 의존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넷째, 산업 구조 자체의 에너지 효율화가 필요하다. 반도체·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에너지 소비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에너지 다소비 공정을 고부가가치 공정으로 전환하는 산업 고도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도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구조로의 전환이 궁극적 해법이다.



◆ 반복되는 위기와 끝나지 않는 의존의 굴레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9년 2차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 2011년 아랍의 봄,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올해 호르무즈 해협 위기. 50년 동안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10년 주기로 반복됐다. 그때마다 정부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외쳤고, 위기가 지나가면 중동 의존도는 다시 올라갔다. 반세기 동안 한국은 단 한 번도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도 208일분 비축유와 석유 최고가격제로 단기 위기를 넘기고, 몇 년 뒤 다시 중동 의존도 70%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위기를 계기로 50년 구호를 실제 구조 전환으로 바꿀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국 에너지 정책의 진정성이 시험받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수조 원의 전환 비용을 감수하는 정치적 결단이고, 10년 이상 걸리는 인프라 재편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정책 지속성이다.


한국 에너지 안보의 민낯은 중동 의존도 70%라는 숫자가 아니라, 50년 동안 구조를 바꾸지 못한 정책 실패의 역사다. 올해 호르무즈 위기가 한국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이번에도 또 구호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마침내 구조를 바꿀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ynsooyn@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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