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직원은 익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단어, ‘언더라이팅(Underwriting)’. 이 용어의 기원은 18세기 영국 런던의 한 찻집 ‘로이드’에서 시작됐다.
당시 배를 띄우던 선주들은 난파 위험을 대신 져줄 투자자를 찾아 찻집에 모여들었다. 이때 항해 서류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Under-write) 위험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던 행위가 오늘날 보험 인수의 유래가 됐다.
즉, 언더라이팅은 글자 그대로 ‘이름을 걸고 위험을 책임지는 행위’다.
하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언더라이팅은 글로벌 선진 시장과 비교할 때 이름만 같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언더라이팅이 규정에 부합하는지 따져 리스크를 밀어내는 일종의 ‘입구 컷’이라면, 글로벌 선진 시장에서의 언더라이팅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설계할지 분석하는 ‘커스터마이징’이다.
미국 보험사들은 언더라이터 한 명을 키우기 위해 7년 넘게 공을 들인다. ALU(Academy of Life Underwriting) 같은 전문 교육 과정으로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며, 언더라이팅을 그만큼 정교한 영역으로 대우한다.
반면 한국의 금융당국은 기본자본 지급여력(K-ICS) 비율 규제와 ‘듀레이션 갭’ 지표 도입 등 장부상의 숫자에만 급급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보장금액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심사 과정까지 직접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보험사들은 변화하는 규제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조차 벅찬 상황이다. 지표 중심의 기조가 오히려 보험업의 근간인 언더라이팅 전문성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다.
당국의 행보에 보험사들은 본연의 임무 대신 기준점 뒤로 숨는 법을 먼저 배웠다. 장부상의 안전을 확보하느라 현장의 분석력을 희생시킨 셈이다.
최근 중동 정세 악화와 같은 대외 불확실성은 언더라이터 없는 한국 보험업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복합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당국의 시뮬레이션 수치가 아닌, 현장에서 리스크의 냄새를 즉각 읽어내는 스페셜리스트의 안목이다.
하지만 국내 보험사의 고질적인 순환보직 시스템은 스페셜리스트 양성을 가로막는다. 2~3년마다 부서를 옮기는 제너럴리스트가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한 위험이나 거대 플랜트의 공학적 리스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장의 언어와 데이터의 숫자를 동시에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리스크를 인수할 때, 비로소 언더라이팅의 책무를 다할 수 있다.
금융당국 규제에 짓눌려 사후 처벌과 자본 건전성 수치에 매몰된 현재 기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보험사에게 실질적인 요율 자율권을 부여하고, 그들이 리스크를 스스로 모델링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
30년 전 일본 보험업계의 연쇄 파산은 회계적 수치에 급급하다 리스크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한 전문성 부재에서 비롯됐다. 이제 낡은 외피를 벗어던지고 ‘진짜 언더라이팅’의 시대를 여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비극의 평행이론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이다.
김도하 더밸류뉴스 금융증권부 기자. [사진=더밸류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