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푸른 바다를 가르는 파도 소리 위로, 웅장한 쇳소리와 용접 불빛이 어우러지는 곳,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는 대한민국 조선 역사의 산증인이자 미래를 향한 역동적인 심장과 같았다. 국내 최초의 철강 조선사로 1937년 문을 연 이래 80년 넘게 '철의 DNA'를 이어온 이곳을 방문하며, 오랜 전통 속에 피어나는 첨단 기술력과 강인한 저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유상철 HJ중공업 대표이사가 지난달 31일 부산 영도구 본사에서 기자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부산 1박 2일의 여정 중 두 번째는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견학기회였다.
“이번 미국 마스가(MASGA) 프로젝트로 HJ중공업의 수혜가 기대됩니다. 국내 조선업의 성장을 기원합니다.”
지난달 31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본사에서 유상철 대표이사가 조선소를 찾은 기자들에게 국내 조선업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유 대표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며 HJ중공업과 한국 조선업 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배가 건조되는 영도조선소를 견학했다.
◆'좁지만 강한' 기술 집약의 현장... 독창적인 '스키드 공법' 활용
영도조선소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빅3 조선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부지라는 지리적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고효율, 고기술 집약형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력이 됐다.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 대신 자체 개발한 해상 크레인을 활용하는 독창적인 '스키드 공법'은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는 HJ중공업만의 해답이다. 선체 블록을 최대한 조립한 후 해상에서 도크로 옮기는 이 방식은 도크 점유 시간을 최소화하며 연간 건조량을 극대화하는 비결이다.
◆중공업, 트럼프 ‘마스가’ 프로젝트 수혜주... 국내 조선업 르네상스 기대
HJ중공업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1937년 설립된 HJ중공업은 선박 건조 및 수리를 진행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 1조8860억원, 영업이익 73억원으로 전년대비 매출액은 12.8%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이 1161억원 증가하며 흑자 전환했다. 2021년 경영진과 주요 주주가 교체되며 적자를 기록했으나 꾸준한 수주를 통해 실적을 개선했다. 현재 수주를 감안하면 향후 2~3년 간은 호실적이 예상된다.
최근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 조선업에 수혜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스가는 한미 협력을 통해 미국의 쇠퇴한 조선업을 부흥시키려는 국가 전략이다.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에서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3500억 달러(약 500조원) 대미 투자 중 조선업 협력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의 협상이 타결되며 한국 기업이 마스가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됐다.
HJ중공업 지난달 31일 주가. [자료=네이버]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HJ중공업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8월까지 8000원대였던 주가는 8월 말을 기점으로 오르기 시작하더니 지난 9월 10일 3만4350원을 기록했다. 약 한 달 만에 4배 이상 오른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종가는 2만8100원이었다.
유상철 대표는 기자와 헤어지기에 앞서 "정부에서 중소 조선사를 위한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을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조선사는 HJ중공업을 비롯해 대한조선, 케이조선 등이 있는데 주로 대형 선박을 만든다. 중소 해운사는 중소형 배를 원하는데 국내에서 건조할 곳이 없으면 중국에 맡겨야 하는게 현실이다. 중국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가격을 높일 것이고 이는 곧 국내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가 각자의 시장과 역할이 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조선소에서 본 배의 탄생 과정... 선박 제조 기술 통해 공항·문화시설도 건축
이어서 조선소 투어를 진행했다. 건조중인 선박들과 철판을 자르는 작업자들을 보며 바쁜 조선소의 하루를 체험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숙련된 기술이 빚어내는 정교함이 느껴졌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공정은 좁은 도크에서도 끊김 없이 이어지며, '조선 명가'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집적된 결과물임을 증명했다.
먼저 버스를 타고 선각공장을 지나 조립장에 들어섰다. 선각공장은 배를 만드는 데 쓰는 철판을 재단하는 곳이다. 여기서 잘라진 철판은 조립장으로 이동해서 용접을 통해 배의 부품을 만든다. 배의 앞부분부터 뒷부분까지 여러 블록을 만들어 이를 레고 쌓듯이 차곡차곡 조립하면 하나의 배가 완성된다. 한척의 선박을 건조하는데 약 6개월 정도 소요된다.
기자들이 지난달 31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본사 옆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컨테이너선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조립장에 들어선 후 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조선소를 견학했다. 곳곳에 작업자들이 철판을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건조중인 한 컨테이너선이 눈에 띄었는데 어찌나 큰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 외에도 해군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도 볼수 있었다. 멀리서 봤음에도 크기가 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보안 관계상 촬영은 하지 못했다.
HJ중공업은 최대 1만100TEU (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대분)를 관리할 수 있는 컨테이너선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는 9000 TEU 정도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컨테이너선과 군함 등의 건조는 물론 선박의 MRO(정비·수리·개조)도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선박도 처리하는데 특히 그리스, 독일 등 유럽 선박이 많다. HJ중공업은 선박 제조 기술을 응용해 인천국제공항, 세종예술의전당 등 공항과 문화시설 등을 건축했으며 아파트 브랜드 ‘해모로’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80년 역사의 묵직함과 최첨단 기술의 역동성이 공존하는 HJ중공업 영도조선소는 활력이 넘쳤다. 좁은 땅에서 해상 크레인이라는 혁신을 빚어내고, 대한민국 해양 방위의 최전선을 지탱하며, 친환경 선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모습에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했다.
조선업 불황의 파고를 넘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중견 조선사의 저력을 입증한 HJ중공업. 이 '철의 심장'은 앞으로도 특수선과 친환경 기술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엔진을 가동하며, '조선 명가' 부활의 쾌속 항진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