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대표 조욱제)이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제약사 최초로 연매출 2조원 돌파를 이끈 블록버스터 신약 ‘렉라자’의 글로벌 확장 성과는 기술료 획득은 물론 매출 성장을 동반했다. 이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확보한 차세대 파이프라인이 본격적으로 임상에 진입하며 ‘제2의 렉라자’ 탄생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창업 철학과 독특한 지배구조는 장기적인 경영 안정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유한양행이 100년 기업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로 도약할 수 있을지 시선이 주목된다.
◆지난해, 국내 제약사 최초 2조 매출…블록버스터 ‘렉라자’가 이끌어
유한양행은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돌파하며 국내 제약 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매출은 2조678억원으로 전년 대비 8.2%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6.4% 감소한 477억원을 기록했다. 단기 실적만 보면 매출 성장세와 달리 수익성이 악화됐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렉라자(레이저티닙)’를 비롯한 신약 연구개발(R&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한양행은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을 약 13%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국내 제약사 평균 두 배 이상의 높은 수치다. 단기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과감한 투자의 결과는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10년 유한양행 실적 및 주요 연혁 [자료=더밸류뉴스]
올 상반기 매출은 1조70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라이선스 수익과 종속회사 실적 호조에 힘입어 194.45% 증가한 563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6.4% 증가한 540억원을 기록하며 모두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유한양행 최근 분기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위 같은 실적은 단연 블록버스터 신약 ‘렉라자’의 글로벌 확장과 기술료(마일스톤) 수익 증가가 주요인이다.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은 올 2분기 글로벌 매출만 1억 7900만 달러(약 2480억원)에 달했으며, 상반기 누적 매출 4434억원 중 약 80%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렉라자 병용요법은 미국, 유럽, 일본을 넘어 지난 7월 중국에서도 품목 허가를 획득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 이를 통해 유한양행이 확보한 마일스톤은 2억 2500만 달러(약 3000억원)에 달한다. 추가로 렉라자 판매액에 따른 로열티도 확보가 예정돼 있어, 향후 유한양행은 ‘글로벌 톱50 제약사’ 진입을 노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오픈이노베이션으로 키우는 ‘제2의 렉라자’…차세대 신약 후보로 글로벌 무대 공략 시동
유한양행은 ‘렉라자’에 안주하지 않고 후속 신약 파이프라인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전략을 통해 외부 기술 도입과 내부 개발 역량을 결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인 차세대 파이프라인으로는 YH42946, YH32364, YH35324가 꼽힌다. 모두 자체 연구소 개발이 아닌, 외부와의 협업을 통해 확보한 자산으로 유한양행의 개방형 혁신 전략을 보여준다.
유한양행 신약 파이프라인 'YH42496'·'YH32364'·'YH35324' 주요 내용 요약 도표 [자료=더밸류뉴스]
먼저 HER2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을 겨냥한 표적항암제 YH42946은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23년 제이인츠바이오로부터 기술을 도입했으며, 지난해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1/2상 승인을 획득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첫 환자 등록을 마치며 본격적인 임상에 돌입했다. 경쟁 제품인 엔허투(다이이찌산쿄)와 Zongertinib(아스트라제네카) 등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지만, YH42946은 뇌전이 효과가 뛰어나 차별화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면역항암제 분야에서는 YH32364가 주목된다. YH32364는 EGFR(표피 성장인자 수용체)을 표적하는 동시에 4-1BB 경로를 활성화하는 이중항체로, 기존 치료제 대비 간 독성을 낮추면서 항암 효과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8년 에이비엘바이오로부터 해당 기술을 도입했으며, 올 4월 임상 1/2상 승인을 획득했다. 지난 6월에는 첫 환자 등록을 완료해 임상 진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 EGFR 과발현 고형암 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경쟁이 치열한 영역이지만, 독창적인 기전이 검증될 경우 글로벌 기술수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 다른 핵심 후보물질인 YH35324(레시게르셉트)는 만성자발성두드러기 등 IgE(면역글로불린 E) 매개 알레르기 질환을 타깃으로 한다. 지아이이노베이션에서 기술을 도입했으며 IgE에 대한 높은 결합력을 바탕으로, 기존 치료제보다 우수한 효과와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설계됐다. 임상 1a·1b상을 마친 상태로, 국제학회를 통해 주요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현재 임상 2상 준비에 들어가며 상업화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유한양행 매출액 비중 [자료=2025년 유한양행 반기보고서]이처럼 유한양행의 파이프라인은 항암제와 면역치료제, 면역질환 치료제로 다각화 되어 있다. 단일 신약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적응증을 겨냥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다. 특히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은 자체 연구 역량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신약 후보를 빠르게 임상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제2, 제3의 ‘렉라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 환원 철학과 독립 경영…100년 지속성장의 토대
유한양행이 단기 실적보다 장기 전략을 우선할 수 있는 배경에는 유일한 박사의 철학과 독특한 지배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사 가운데 유일하게 가족 경영 체제를 벗어나, 전문경영인 중심의 운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최대주주가 창업자의 가족이 아니라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지분 15.77%)’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유한재단은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전 재산을 기증하며 설립된 비영리 재단으로, 지배구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구조 덕분에 유한양행은 단기 배당이나 경영권 승계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경영인이 중심이 되어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제약산업처럼 장기 투자가 필수적인 업종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이어진다.
유한양행 최근 3년 연구개발비용 비중 추이 [자료=2024년 유한양행 사업보고서]실제로 유한양행은 매년 꾸준히 R&D 비중을 확대해왔다. 지난 2023년 매출액 대비 R&D 비용은 10.5%에서 지난해 13%로 확대, 올 상반기는 벌써 10%를 기록했다. 이는 렉라자 개발 과정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렉라자가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장하기까지, 장기간의 투자와 실패 가능성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지배구조 덕분이었다는 평가다.
조욱제 대표는 지난해 8월 “제2·3의 렉라자 탄생을 위해 바이오 기업 및 학계 등과 더 긴밀하게 협업하겠다”고 밝히며 후속 파이프라인 개발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조는 후속 파이프라인 개발과 글로벌 전략에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더불어 기업 가치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 5월 253억원 규모의 자사주(24만627주) 소각을 결정했다. 오는 2027년까지 보유 또는 매입한 자사주 1%를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다. 유한양행이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매입한 자사주 총 200억원 규모(17만5154주) 역시 상황에 따라 소각될 예정이다.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매출 2조원을 돌파하며 외형 성장을 입증하고, 차세대 파이프라인에 과감히 투자하며 글로벌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하의 신규 파이프라인을 통해 ‘제2의 렉라자’를 향한 도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창립 100주년을 앞둔 유한양행은 장기적인 비전을 바라보는 독특한 지배구조와 창업 철학을 강점으로 삼아 글로벌 빅파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신약 파이프라인의 성과와 글로벌 파트너십 확장에 따라 100주년 비전 실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