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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탐구] 52.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고령화, 저금리 극복 나선 '생보 맏형'

- 저출산 고령화, 저금리로 생보업 위기... 지주사 전환 해법 나서

  • 기사등록 2024-03-23 21: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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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의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분석하는 '대기업집단 탐구'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재계순위'로도 불리는 공정위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심층 분석해 한국 경제와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더밸류뉴스=정희민 기자]

1900년대 초, 미국인들의 이동 수단이 우마차에서 자동차로 급격히 이동하자 말 채찍 생산 업자들은 일거에 소멸됐다. 말 채찍 생산업자들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채찍에 구슬을 삽입하는 혁신을 시도했지만 '말 채찍 산업'이 붕괴되는 현실을 이겨낼 수 없었다.  

 

기업 운명에 '산업(industry)'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말 채찍 말고도 카메라 필름(코닥), 피처폰(노키아), 비디오 게임(닌텐도), 종이 사전(브리태니커), 브라운관 TV(소니) 등 셀 수 없이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는 더욱 그렇다. 


이같은 산업의 위기를 겪고 있는 곳이 한국의 생명보험(life insurance)이다. 


한국의 생명보험사(생보사)는 저출산 고령화, 저금리, IFRS17이라는 3대 변수를 대면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미래의 시체이며 결국은 죽는다(생명보험의 탄생 배경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이전에 비해 더 오래 살다가 죽는다. 생보사 입장에서는 당초 예상보다 보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보험금 지급액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다 저출산으로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또, 저금리 시대가 고착화되면서 생보사가 보유한 채권 이자가 감소하고 있고 - 생보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부분을 채권으로 운용한다 - IFRS17 도입으로 재무 구조와 경영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국내 유일의 생명보험 기반의 대기업집단으로 꼽히는 교보생명그룹(회장 신창재)은 3대 변수에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FRS17에 취약한 저축성 보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응해 교보생명그룹이 최근 지주사 전환, 디지털 전환, 사업 다변화 등을 가시화하면서 향후 어떤 결과를 맺을 것인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21위→53위...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가격 하락하며 전년비 21계단↓


  • 교보생명그룹은 지난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일명 대기업집단) 53위를 기록했다. 전년비 21계단이나 하락했다. 

  • 매출액 26조4460억원, 영업이익 6032억원으로 전년비 매출액은 24.50%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7.24% 감소했다. 계열사는 유일한 상장사인 교보증권을 비롯해 교보생명, 교보악사자산운용,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교보문고 등 15개로 전년비 1개 증가했다.

[대기업집단 탐구] 52.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고령화, 저금리 극복 나선 \ 생보 맏형\  교보생명그룹의 지배구조와 현황. 단위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 교보생명그룹은 그룹 전체 매출액의 절대액이 교보생명에서 나오며 '교보생명그룹=교보생명보험'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 2022년 기준 교보생명그룹 주요 계열사의 영업수익(매출액)을 살펴보면 교보생명보험 26조1952억원, 교보증권 4조659억원, 교보문고 8323억원,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2944억원, 교보악사(AXA)자산운용 415억원 순이다. 


  • 그러므로 교보생명그룹의 2023년 대기업집단 순위가 53위로 전년비 12단계나 하락한 이유를 찾으려면 교보생명보험을 살펴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뭘까.

[대기업집단 탐구] 52.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고령화, 저금리 극복 나선 \ 생보 맏형\  교보생명그룹 주요 계열사 영업수익(매출액). 2022 K-IFRS 연결. 단위 억원.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표면적인 이유는 금리 상승으로 교보생명이 보유한 매도가능금융자산(채권이 대부분이다) 평가금액이 감소했기 때문이다(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 교보생명의 2022년 매도가능금융자산은 33조655억원으로 전년비 45.63% 감소했다. 가상 자산이 공정자산의 대부분인 두나무의 대기업집단 순위가 44위에서 61위로 17단계 하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 ◆IFRS17 시행되며 부채↑·수익성↓... '빅3' 위협 받아

얼핏 평가액이 달라져 순위가 하락했고 실체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별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교보생명그룹 안팎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우선 지난해 1월 1일 시행된 IFRS17(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17) 효과가 다음달 말 발표 예정인 공정위 대기업집단 순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IFRS17은 새 국제보험회계기준으로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공정가치로 변경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다시 말해 보험사는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할 보험금 일부를 적립금으로 쌓아야 하는데, IFRS17은 재무제표 작성시점의 금리를 기준으로 적립금을 계산한다. 이전까지는 계약 시점이었다. 새 회계 기준 시행으로 저축성 보험 비중이 높은 보험사는 불리할 수 밖에 없는데 교보생명의 일반계정에서 차지하는 저축성 보험 비중은 52.5%로 한화생명(31.3%), 신한라이프(14.8%) 보다 월등히 높다.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IFRS17 이슈 이전부터 교보생명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보생명보험의 수익성은 IFRS17 시행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영업이익률을 살펴보면 2017년 6.2%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5.5%(2018), 5.8%(2019), 3.7%(2020), 3.6%(2021)에 이어 2021년 2%대로 하락했다(2.2%). 앞서 언급한 저출산 고령화, 저금리로 실적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집단 탐구] 52.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고령화, 저금리 극복 나선 \ 생보 맏형\  최근 10년 교보생명보험의 실적과 연혁.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교보생명은 그간 삼성생명, 한화생명과 더불어 '생보 빅3'로 불렸지만 신한라이프가 ING생명, 오렌지 라이프를 인수하며 바짝 따라 붙고 있다. 

  • ◆지주사 전환, 디지털 전환으로 위기 돌파 나서

  • 교보생명그룹은 워렌 버핏이 말하는 해자(economic moat)를 가진 기업인 것도 사실이다. 해자란 성벽을 둘러싼 연못을 말하며 외부 공격을 방어하는 핵심 경쟁력(core competency) 정도로 번역된다. 고(故) 신용호(1917~2003) 창업회장은 교육을 보험에 넣은 '교육보험'을 국내 최초로 내놓아 업계 정상에 올랐고 신창재 회장은 2000년 무렵 만성 적자와 조(兆) 단위 자산 손실로 회사가 빈사 상태에 빠졌으나 경영 혁신으로 회사를 턴어라운드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로부터 ‘A+(안정적·Stable)’ 신용등급을 받고 있고,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기도 하다(2023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선정 생명보험부문).  


현재 위기에 대응하는 교보생명그룹의 전략은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통한 기업공개(IPO), 디지털 전환으로 요약된다. 


  • 교보생명은 지난해 2월 지주사 설립을 공식 발표하고 이를 통해 사업포트폴리오 다변화, 신성장 동력 발굴, 관계사간 시너지 창출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교보생명그룹이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 컨소시엄 동의가 필수다.


[대기업집단 탐구] 52.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고령화, 저금리 극복 나선 \ 생보 맏형\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 [자료=공정거래위원회]

  • 지난 2012년 어피니티컨소시엄은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 상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풋옵션(특정 가격에 되팔 권리)을 행사한다는 조건하에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했다. 행사기간인 2015년이 지난 2018년까지 교보생명은 IPO에 실패했고,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그해 9월 2조원대 규모(1주당 40만9912원)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그러나 신창재 회장은 행사가가 높다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법적공방을 시작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주사 전환의 첫 순서인 인적분할을 위해서는 주주총회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데, 신 회장의 지분 33.78%와 특수관계자 지분 5.12%, 코세어캐피탈 지분 9.79%를 모두 합해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물밑 소통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디지털 전환 의지도 밝히고 있다. 교보생명이 2022년 내놓은 통합앱을 이용하면 보험은 물론 공연 정보와 퇴직연금, 대출, 신탁 등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올해 초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시행해 그간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가입자가 일일이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할 필요없이 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교보생명이 지주사 전환의 큰 가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앞날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창재 회장, 경영난 겪던 교보생명 혁신 통해 턴어라운드 


신창재 회장은 신용호 창업주 장남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교수(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다 부친 권유로 1996년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참여했다. 2000년 5월부터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가업을 물려 받을 당시 교보생명이 경영난에 처해 있었지만 회생시켰다. 부인 박지영은 조각가 박영옥 딸이다. 


슬하에 장남 신중하와 차남 신중현을 두었다. 장남 신중하는 교보생명 자회사인 교보정보통신의 디지털혁신 신사업추진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 뉴욕대를 졸업하고 크레디스위스 서울지점에 근무했다. 부인 임효재는 고(故) 임현철 한불화장품 부회장 장녀다. 차남 신중현은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디지털혁신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대기업집단 탐구] 52.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고령화, 저금리 극복 나선 \ 생보 맏형\  교보생명그룹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교보생명은 신용호 창업주가 1958년 동업자 7명과 함께 '태양생명보험'이라는 명칭으로 발기인 대회를 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중에 어떤 보험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를 탐색하다가 한국의 부모들이 돈이 없어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보고 생로병사(生老病死) 가운데 유일하게 보험에 빠져있는 '생(生)' 부문에 교육 보험을 넣어 상품을 내놓았다. 집안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독서를 즐기던 인연으로 국내 최대 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를 열었다.  


taemm071@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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