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대기업집단 탐구] ㊿삼표그룹, '시장 축소' 내수 건자재 사업에도 몸집 쑥쑥 첫 재계 등판

- 대기업집단 80위 첫 등판... 친환경 계열사 에스피네이처 성장 주도

- 정대현 부회장, 에스피네이처 최대주주(66.08%)로 사실상 경영 총괄

  • 기사등록 2024-03-14 22:40:55
기사수정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경영 현황, 비즈니스 전략 등을 분석하는 '대기업집단 탐구'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재계순위'로도 불리는 공정위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심층 분석해 한국 경제와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더밸류뉴스=박지수 기자]

삼표그룹(회장 정도원)이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이하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80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삼표'하면 '레미콘'을 떠올릴 정도로 삼표그룹은 건자재 사업에 특화돼 있는 데 레미콘은 전망이 밝지 않다. 전형적인 내수 산업인 데다 전방 산업(건설업)은 호황과 불황을 주기적으로 오간다. 국내의 대다수 건자재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같은 비우호적 산업에서 삼표그룹은 사이즈를 빠르게 키우며 재계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삼표그룹은 재계에서 사이즈를 키우는 방식으로 흔히 사용되는 M&A(인수합병)도 최근 10년 동안 1~2건에 불과하다. 삼표그룹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 걸까. 


◆대기업집단 첫 진입(80위), 유진그룹 이어 두 번째 '레미콘 대기업집단' 


삼표그룹은 지난해 초 공정위 발표 공시대상기업집단 80위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그룹 전체 매출액 3조880억원, 당기순이익 770억원을 기록했다(이하 K-IFRS 연결). 주요 계열사로는 유일한 상장사인 삼표시멘트(옛 동양시멘트)를 비롯해 에스피네이처, 삼표산업, 삼표피앤씨, 삼표해운, 삼표자원개발 등 50개이다. 


삼표그룹의 지배구조와 현황.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이로써 삼표그룹은 유진그룹(회장 유경선)에 이어 건자재를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는 두 번째 대기업집단이 됐다. 


삼표그룹은 레미콘(Ready Mixed Concrete) 사업을 놓고 유진그룹과 라이벌 관계이다. 레미콘은 건설 공사의 필수 원재료로 시멘트(54.6%), 모래(24.3%), 자갈(20.2%)을 트럭 믹서에서 섞은 것인데, 레미콘 트럭이 90분 이내에 공사현장에 도달해야 굳지 않고 사용 가능하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보니 국내 주요 레미콘 회사의 사업장 소재지를 살펴보면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진기업은 서울과 수도권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삼표그룹은 충청권의 대전, 아산, 당진과 경기 여주 등에 레미콘 공장을 두고 있다. 


유진그룹과 삼표그룹의 레미콘 공장 현황. 

삼표그룹은  아직은 매출액이나 자산규모에서 유진그룹보다 아래에 있다. 유진그룹은 대기업집단 78위로 삼표그룹(80위)보다 두 단계 위에 있고 매출액(4조650억원)도 1조원 가량 많다. 


그렇지만 성장 속도를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유진그룹은 2018년 대기업집단 59위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62위(2020년), 63위(2021년), 69위(2022년)에 이어 지난해 78위를 기록했다. 2018년에 비해 19단계 하락한 것이다.  반면 삼표그룹은 사이즈를 빠르게 키우며 이번에 재계에 첫 진입했다.


삼표그룹의 성장 비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열사 에스피네이처(대표이사 이병훈 장영재)를 주목해야 한다. 


◆에스피네이처, 50개 계열사 가운데 매출액 1위 


에스피네이처는 삼표그룹의 계열사 50곳을 통틀어 매출액 1위(8441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 삼표시멘트(7211억원), 삼표산업(6804억원), 삼표피앤씨(1740억원), 삼표해운(700억원), 삼표자원개발(631억원), 삼표레미콘(513억원) 순이다. '삼표'하면 삼표시멘트나 삼표산업을 떠올리지만 실은 일반에 다소 낯선 에스피네이처가 최대 계열사인 셈이다.  


삼표그룹 주요 계열사 매출액. 2022 K-IFRS 연결. 단위 억원.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에스피네이처의 매출액 증가세는 눈부시다. 에스피네이처의 매출액은 2013년만 해도 292억원에 불과했지만 약 10년만에 조(兆) 단위를 바라볼 정도로 사이즈가 커졌다. 이번에 삼표그룹이 대기업집단에 편입된 것도 에스피네이처의 실적과 자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에스피네이처의 실적과 연혁.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에스피네이처는 무슨 사업을 하는 걸까. 


에스피네이처의 주력 사업은 레미콘과 골재 제조업이며 수도권 일대를 주요 사업권으로 갖고 있다. 삼표그룹의 주력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에스피네이처는 철스크랩(scrap)도 생산하고 있다. 철스크랩이란 쉽게 말해 '고철'(古鐵)을 말하며 에스피네이처는 국내 철스크랩 시장점유율 1위이며 연 70만톤의 철스크랩을 생산해 국내 제강사에 공급하고 있다. 철스크랩 운송에 필요한 항만 하역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경북 포항신항 8부두에 3만톤급 2선석, 1만톤급 1선석 규모의 인프라와 자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선석(船席∙berth)이란 선박을 붙잡아 매어 놓을 수 있는 설비가 돼 있는 접안 장소이다. 수직으로 구축된 벽과 그 부속물로 이뤄져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신사업이다.  


에스피네이처는 지난 2021년 친환경 아스팔트 도로 채움재 '네비실'을 선보였다. 네비실은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산업 부산물을 재활용한 것으로 국내 포장 도로의 포트홀(pothole)을 방지해준다. 기존 제품보다 수분 저항성을 대폭 개선해 호평받고 있다. 포트홀은 아스팔트 도로에 물이 침투하면서 골재와의 결합력이 약해지며 발생하며 차량 통행에 불편을 주고 운전자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또, 지난해 에스피네이처는 실시간으로 최적 노선을 찾아내 화주와 차주를 연결해주고 정산까지 해주는 운송앱 '배차장'을 선보였다. 영세한 차주들이 불합리한 중개 수수료로 빈 차로 돌아오는 '공차' 문제를 해결해주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기능으로는 근거리 배차 정보 공유, 투명한 운임 공개, 실시간 배차 모니터링 등이 있다. 


본업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사업에 진출하며 실적을 개선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에스피네이처의 매출액 비중은 레미콘∙골재(40%), 철스크랩(30%), 항만∙하역(15%), 기타(15%)로 추정되고 있다. 본사는 경북 포항에 있다


◆정대현 부회장, 에스피네이처 최대주주(66%)로 그룹 경영 총괄


이처럼 에스피네이처는 삼표그룹의 '미래'이지만 삼표그룹의 사실상 지주사라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에스피네이처 최대주주(66.08%)는 정대현(47) 삼표그룹 부회장이다. 정대한 부회장은 정도원(77) 회장 장남으로 삼표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현 부회장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2005년 삼표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삼표기초소재, 삼표이앤씨 등 계열사들을 거쳐 2015년 삼표시메트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맡았다. 2019년 사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부회장에 올랐다. 


삼표그룹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정대현 부회장은 에스피네이처 지분 외에도 에스피에스테이트(25.00%), 홍명산업(30.91%), 삼표시멘트(1.31%), DHC인베스트먼트(100%), 에스피앤모빌리티(60.00%)를 갖고 있다. 부친 정도원 회장으로부터 지분 승계가 사실상 완성된 셈이다. 


정대현 부회장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이다. 업무 처리에 합리적이고 추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삼표그룹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도원 회장, 동양시멘트 인수로 수직계열화 이뤄


삼표그룹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1998년), 삼표그룹(당시 그룹명 강원산업그룹)은 공정위 발표 대기업집단 26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때의 삼표그룹은 지금의 삼표그룹과 다르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삼표그룹의 출발은 황해도 재령군 출신 정인욱(1912~1999) 창업주가 1952년 40세에 강원도 태백시에 세운 강원탄광(강원산업)이다. 강원탄광은 국내 최대인 연간 70만톤 생산능력을 갖췄고 1963년에는 자체 생산한 무연탄을 가공해 '삼표연탄 신화'를 창조했다. 1970년대에는 철강 사업에 본격 진출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340만톤 규모의 철강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정인욱 창업주를 이은 장남 정문원 회장은 강원산업그룹을 철강 중심의 중공업 그룹으로 키웠다. 그렇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00년에 강원산업, 삼표제작소 등이 현대그룹에 매각되면서 강원산업그룹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정문원 회장도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이때 정도원 당시 부회장이 삼표산업을 중심으로 삼표정보시스템을 설립하며 독자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에 나서고 삼표산업이 경영혁신에 성공하며 2002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2004년에 모든 계열사 이름을 '삼표'로 통일했다. 정도원 회장이 삼표그룹의 사실상 창업주로 불리는 배경이다.  


2016년 옛 동양그룹 계열사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를 인수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외부 기업 M&A(인수합병)로 남아있다. 당시 비싸게(8260억원) 인수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레미콘∙시멘트 수직계열화의 기반이 됐다. 슬하에 정대현 부회장을 포함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정지선 남편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차녀 정지윤 남편은 박성빈 에스피케이 대표로 고(故) 박태준(1927~2011) 포스코 전 회장 장남이다. 


parkjisu09@thevaluenews.co.kr

[저작권 ⓒ 더밸류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4-03-14 22:40:5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삼성SDS
버핏연구소 텔레그램
기획·시리즈더보기
재무분석더보기
제약·바이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